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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il Jan 17. 2024

이런 전래동화 같은 일 이라니...

스위스 우체국에서는 이렇게 일하기도 합니다.

2016년 남편의 여동생이 결혼을 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2012년 남편의 식구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였다. 그녀는 무척 쑥스러워하며 내게 악수를 청했다. 그녀의 쑥스러움은 무척 오래갔고 서로 간에 별 대화는 오고 가지 않았지만 우리는 자주 만났다. 그 당시 그녀는 영어로 이야기하는걸 무척이나 어색해했고, 난 독일어라는 언어 자체가 어색할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같이 산책을 나가자며 찾아오고, 같이 차를 마시자며 찾아왔다. 그녀는 저녁으로 콜드디너(빵, 살라미, 계란, 치즈 등 특별한 조리가 필요하지 않은 음식들로 먹는 저녁식사.)를 먹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큰오빠가 긴 출장을 떠난 날은 나와 함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우린 정말 가족처럼 별 다른 대화 없이 조용히 밥을 먹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서로 배시시 웃고 다시 조용히 밥을 먹었다.


그렇게 우리는 침묵이 더 길었던 시간들을 함께 쌓아갔고 그녀는 몇 년 후 오랜 남자친구와 결혼하였다. 나와 남편은 여행 바우처를 결혼선물로 전달했다. 그 바우처로 여행을 떠난 그들이 여행지에서 엽서를 보내왔다.




남편이 내가 가져온 우편물 속에서 엽서를 발견하고는 뒷면 주소를 보더니 깔깔대고 웃는다. 정확한 주소를 몰랐던 그들주소 대신 '뷜러가의 원형 교차로에 있는 전통가옥'라고 적었고, 엽서 무사히 도착하기까지 한 것이다. 

아... 이거 너무 정겹잖아.


다행히 그 교차로에는 스위스 전통가옥 샬레(Chalet)가 딱 우리 집 한채 밖에 없었다.


혼자 정겨워하며 요리조리 엽서를 돌려보던 내게 남편이 예전 이야기를 해주었다. 남편도 어릴 적 정확한 주소를 모르면 ㅇㅇ동 개 세 마리와 연못이 있는 집 등 그 집의 특징으로 주소를 적어 보내기도 했다는 것이다. 대부분 우체부들이 오래 일 한 사람들이라 편지나 엽서는 별문제 없이 도착다고 한다.


아이가 태어나고 큰 도시로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의 이름으로 온 우편물을 자세히 보니 한 번 반송되었던 편지 봉투에 사돈댁의  메모가 적혀 우리에게로 다시 배송되었다. 시 우체국 반송우편 처리부에서 일하는 사돈댁이었다. 아이가 두 살이라 아직 우편함에 아이의 이름을 추가하지 않아서 아이의 이름을 찾지 못한 우체부가 다시 들고 간 것이다. 마침 사돈댁이 그 우편물을 보게 되었고 우리 주소와 아이 이름을 알고 있던 그가 남편이름을 추가로 적어 발송인에게 반송하지 않고 다시 보낸 것이다.


여기는 건물 당 딸랑 하나의 주소가 부여되고 그 건물에 몇 세대가 살던 모두 이름을 찾아 우편물을 배달하는 믿을 수 없는 방법을 사용한다. 저 때 우리 아파트 건물에는 30세대 정도가 살고 있었는데 우체부는 그 30세대의 우편물을 숫자가 아닌 이름으로 분류해 배달했다. 그 정겨운 우편 시스템이 실은 변화하고 있는 대도시의 공동 주거문화에는 전혀 부합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우리는 저 대도시를 떠나 다시 작은 마을에 정착하였다. 정겨운 우편 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는 크기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이다. 우리는 16번지에 산다. 12번지에 사는 비슷한 성을 가진 아저씨네 우편물이 가끔 우리 집으로 오면 나는 우체부가 새로 왔음을 알아채고, 아저씨네 우편함으로 다시 편지를 배달해 드린다. 이 주 정도만 이렇게 하다 보면 일이 익숙해진 우체부는 정신을 차려 다시 숫자 12와 16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어찌 보면 불편한 일이라고도 하겠지만 나는 이런 소소한 에피소드들로 채워지는 시골의 일상이 좋다.


바닥에 부서져 없어지는 볕이 아까워 나는 그 살레에서 부지런히 식물들을 키워냈다.
그러다 나도 볕이 필요하겠다 싶었다. 식물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내가 차지해버렸던 자리.
아이가 없는 집이란 저런 것 이었지...
복도 난간의 손잡이는 여전히 샬레의 그것이었다.
바깥에서 보면 영락없이 샬레였지만 내부는 무척 모던모던했다. 서까래가 있긴 하지만 스위스에서 저 정도면 모던한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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