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10개월 정도 되었을 때 동네소아과의원에서피부과예약을잡아주어 큰 병원을방문하게되었다.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왼쪽 갈비뼈 부분 피부에 큰 갈색점이있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복점이라 나는대수롭지않게 여겼었는데 막상 의원에서피부과로 트랜스퍼한다니 살짝 걱정이 되었다.
스위스 아이들은동네소아과의원에서정기검진과예방접종등을하고, 의원에서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부모의 동의를 거쳐 전문병원으로 가게 된다. 의원에서병원을 정해주니개인적으로병원을알아보지않아도 되어 간편했고, 무엇보다아이의상태나검진기록들이 공유되니 같은 검사를 반복하지 않는 점이 좋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했던 말을 여기저기서 또 하지 않아도 되니 안 그래도 독일어가 서툰 나는 무척 감사했다.
먼저 스위스의 병원 시스템을 한국과 비교하는 것은 상당히 불공평하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양 국가 간의 의료보험과 진료비 차이는 어마어마하니까. 인심도 곳간에서 나 듯이 스위스 의사들의 친절과 철저한 환자중심의 병원 시스템도 그들이 가진 넉넉한 주머니 덕분인 것을 고려하기 바란다.
스위스의 의료보험은 사보험의 형태이다. 별로 골골거리지 않는 우리 가족은 가장 기본 의료보험에 가입하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세 식구의 월 보험비는 백만 원을 훌쩍 넘는다. 나와 남편은 치아 치료도 한국에서 받기 때문에 치과 관련 보험비가 제외된 금액임에도 저 정도이다. 남편의 할머님이 생전에 쇄골뼈가 부러지셔서 재활 겸 집 근처 보통 요양원에 몇 달 계셨었다. 스위스의 요양원은 1인실이 기본이고 식당 겸 로비는 어느 호텔에 견주어도 나쁘지 않은 정도의 시설이었다. 제공되는 음식과 식기도 일반 레스토랑과 별반 다르지 않고 직원들도 무척 여유롭고 친절했다. 요양원 비용은 한 달에 2000만 원이었다.
임신과 출산으로 병원을 정기적으로 방문했던 나는 항상 로비에서 내 담당 의사를 기다렸고 로비에서 그 의사의 배웅을 받으며 병원을 떠났다. 모든 비용은 나중에 우편으로 청구되며 우리는 그 청구서를 보험회사로 다시 보내면 된다. 병원에서 지갑이 필요한 경우는 매점에서 간식을 사 먹을 때 정도이다. 모든 진료는 시간단위로 비용이 청구되기 때문에 의사들은 급하지 않다. 아이의 기본 진료는 15분으로 이 기본 진료시간이 초과되면 비용은 5분 단위로 30프랑씩 청구된다. 5세 이하와 60세 이상의 환자에게는 공이 더 드니 당연히 추가 비용이 청구된다. 아이의 정기검진마다 만나는 주치의도 진료 전후로 아이랑 아주 오래 놀아준다. 아이로서는 의사 선생님이 친절하고 재밌으니 병원에 대한 공포도 없고 주사도 덜 아프게 느껴지겠지만, 청구서를 생각하는 나는 의사 선생님의 느린 말투에도 애가 탄다.
어쨌든 우리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서 지정해 준 피부과를 찾았다. 좁은계단을올라가니리셉션에서우리를 환하게 반긴다. 나이든한아주머니가 로비에서 진료가 끝난 환자의 다음 진료예약을 도와주며 복용할 약에 대한 설명도 해주고 있었다.우리 차례가되자그아주머니가우리를진료실로안내했고 아주머니는안쪽의자에 앉았다. 이 나이 든 아주머니가 담당 의사였다. 의사는 의원에서 상황을 전달받았으며 먼저 아이의 점을 보자고 했다. 아이를 만지기 전 의사는 10개월 된 아기에게 자기가 지금 무엇을 왜 어떻게 할 예정인지 자세하고 애정 넘치게 설명했다. 의원에서 점의 위치까지 정확히 전달받은 듯 의사는 능숙하게 10개월 된 아이를 어르며 옆구리의 점을 살펴보았다.
의사의 소견은 이러했다. 아이의 점이 현재까지는 보통 점으로 보이며 아이가 자랄수록 점도 커질 것이며, 집에서는 점의 크기보다 점의 모양과 색을 정기적으로 잘 관찰하고 변화가 발견되면 바로 병원으로 연락을 달라고 당부하였다. 의사는 점의 모양을 사진으로 상세히 찍는다. 오늘의 점 사진은 병원 DB에 장기 보관될 것이고 혹시 변화가 시작되면 이 사진을 토대로 진단이 내려질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우리 부부에게 전한 의사의 말은 인상적이었다.
"지금부터 10년 후의 의술로는 또 모르겠지만, 현재의 의술로는 저 점을 흉 없이 깨끗하게 없앨 수가 없습니다. 나중에 아이가 커서 외모에 관심을 갖고 이 점을 없애고 싶어 할 수도 있을 텐데, 기술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아이가 슬퍼하겠죠. 아이에게 이 점이 아이의 또 다른 개성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모님이 지속적으로 알려주셨으면 좋겠네요."
그녀는 정말 좋은 의사였다.
아이가 말귀를 알아들을 즈음이 되었다. 자신이 엄마 뱃속에서 헤엄을 치며 지냈다는 사실을 특별히 자랑스러워하는 아이는 자기가 어떻게 물에서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는지 물었다. 나는 이때다 싶었다.
"기억 안 나? 네가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 물고기 친구 한 마리도 같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수영하는 법도 알려줬지. 네가 세상으로 나올 때 같이 밖으로 나오겠다 그래서 지금 그렇게 네 옆구리에 같이 있는 거야."
아이는 그렇게 자신의 물고기모양 점이 엄마 뱃속에서 자기와 함께 헤엄치던 물고기라고 알게 되었다.엄마는 물고기점이 왜 없냐는 아이의 질문에 엄마 물고기는 아직도 할머니 배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할머니가 엄마 없이 혼자 계실 때를 대비해 엄마 대신 두고 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