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곳 스위스에 와서 나는 사람들에게 요상한 질문을 하고 다녔다.
"밥은 먹었어?"
"식사는 하셨어요?"
그러면 사람들은 예아니오의 대답 후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나도 그런 그들이 무슨 할 말이 있는 건가 상대방을 말똥말똥 응시하며 침묵의 시간은 흐르고 그 어색함에 난 내 엄지발가락만 꼬무락거렸다. 나는 다만 인사를 건네었을 뿐인데, 그들은 나의 이 특별한 질문 후 이어질 이렇다 할 추가 질문이나 어떤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살다 보니 여기서는 "별일 없어?( Alles guet?)"가 일반적인 인사였다. 난 하루에도 두세 번씩 이렇게 묻는 남편에게 "별일 없지 근데 왜? (Alle guet aber wieso?)"라고 대답했다. 남편의 대답은 항상 "그냥.(Einfach so.)"였다. 옆집 아줌마도 시부모님도 시누이도 다들 내가 이곳에 온 지 얼마 안돼 그렇게 묻나 보다고 나름 생각하고 지냈는데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이 질문은 계속 반복됐다. 어느 날 나는 내 남편에게 이게 무슨 질문이냐고 묻고서야 그냥 '하와유? 파인땡큐앤유?'류의 질문임을 알게 되었다. 나나 그들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여하튼 이곳에서의 끼니는 서로 끄집어내어 안부를 물을 수 없을 만큼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다.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서로 상대방의 끼니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즉, 혼자 짬을 내 각자 알아서 처리하는 용변에 비유하자면 더럽지만 딱 그러하다. (위 사진이 보이는 막대기에 돌돌 말린 황토색의 반죽은 똥이 아닌 불에 구워 먹는 빵 Schlangebrot이다. 통밀을 넣어 반죽해 색상이 저 모양이다.) 처음에는 이 타인에 의해서는 챙겨지지 않는 내 끼니를 여러 번 건너뛰며 혼자서 씩씩거렸다. 점심이나 저녁시간이 걸려있으면 나는 나를 초대한 상대방 측에서 식사를, 아니면 간단한 다과라도 준비하는 줄 알았다. 한국에서도 나를 가장 힘 빠지게 하는 말은 '우리 그냥 간단하게 먹자.'라는 말이었다. 나 사는 동안 정해진 내 소중한 끼니를 도둑질하겠다는 제안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난 되도록이면 정색하고 그럴 수 없다고 대답했었다.
나에게는 식당을 오래 하신 부모님과 자처해 취사병이 될 만큼 요리에 관심이 많은 남동생이 있다. 군대 면회를 가면 다들 총기, 군장이나 내무반 등 뭔가 군대스러운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취사병이었던 동생의 첫 면회 자리에서 당장 볶아야 할 애호박이 들어왔는데 추가로 지급되지 않는 새우젓에 대해 함께 안타까워했었다. 음식은 우리 식구들의 가장 큰 관심사였고, 그런 우리 식구가 한국에서는 뭐 그리 특별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끼니에 대한 나의 충실함이 이곳에서는 유별난 집착으로 비춰졌고 가끔은 참 없어 보이기도 했다. 나 혼자 지켜내는 끼니들에 나는 이곳에서 자주 서러웠다.
스위스에서 끼니를 대하는 모습들을 보자.
1. 정오가 조금 넘어 벨이 울렸다. 근처 초등학교 교사이신 시어머니가 점심식사 시간에 짬을 내 잠시 아이를 보러 오셨다. 점심으로 뭘 대접해야 하나 순간 머리로 냉장고를 스캔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물 한잔을 부탁하시며 가방에서 샌드위치 하나를 꺼내신다. 본인의 점심은 본인이 챙겨 오셨다. 난 맨날 시댁 가서 거하게 얻어먹는데 내심 죄송했다.
2. 아이는 리듬체조를 배우고 있다. 취미반이 아니라 훈련은 강도가 높다. 3시간 동안 쉬는 시간 없이 훈련이 이어지는데 토요일 훈련은 11시부터 2시까지이다. 점심은? 알아서 먼저 먹거나 나중에 먹거나 하는 거다. 이번 학기 초 새로 온 외국인 엄마가 단체방에 간식시간이나 점심에 대해 물었다. 선생님은 중간 휴식은 일정에 없으며 아이의 배를 채우는 일은 각자 알아서 하라고 답했다.
3. 가끔 회의를 아이가 없는 오전시간에 집에서 하기도 한다. 아침 8시 반에 시작하는 회의의 첫날 각자 자신이 먹을 샌드위치를 싸 오는 사람들을 보고 역시나 했다. 몇 년 전이었다면 빵이며 치즈며 이래저래 준비했겠지만 난 이미 여기 10년 차, 내가 접대하겠다고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각자의 끼니는 각자가 챙기는 거다.
4. 부모님이 우리 집을 방문하셨을 때 시동생 부부가 잠시 인사차 들렀었다. 오후 5시 50분이었다. 시동생 부부는 차 한잔만 마시고 6시 20분에 돌아갔다. 아빠엄마는 식사 시간에 들러 식사도 못하고 돌아간 시동생 부부를 어찌하지 못하고 계셨다. 어차피 식사를 권했어도 돌아갔을 거고 권할 여분의 음식도 없었다. 이곳의 음식은 우리처럼 밑반찬 조금 더 꺼내 수저만 턱 놓으면 한두 입 더 먹일 수 있는 요리가 아닌 것이다. 아빠엄마는 나의 이러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그러는 거 아니다."라는 말씀을 그다음 날까지 하셨다.
5. 이곳에서 바베큐를 할 때는 보통 각자 먹을 고기나 소시지는 가져간다. 집주인이 식사를 준비해서 몸만 가는 (감사한) 자리라도 고기를 구울 때는 집주인이 누가 어떤 고기를 먹을지 묻고 굽는다. 우리처럼 "일단 다 구워, 구워놓으면 다 먹어."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곳 사람들보다 몸뚱이는 작으면서 2배는 더 먹는 나는 항상 체면과 허기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제 불편한 식사자리는 눈치껏 집에서 미리 뭘 좀 먹고 간다. 남의 나라에서 참 애쓰며 산다.
스위스는 등산로나 공원 심지어 놀이터에도 다 그릴이 준비되어 있다. 관할 지역에서는 그릴 장소 옆에 튼실한 땔감도 준비해 놓는다. 아니면 대충 근방에 굴러다니는 나무로 피운다.
아름다운 그릴장소이지만 먹거리는 언제나 소박하다. 우린 세 식구니까 고기 세 덩어리. 그나마 고기만 빵과 먹자니 목에 메어서 야채도 구워 목을 축인다. 여기 사람들은 야채 따윈..
스위스의 일반적인 바베큐는 이러하다. 9인분의 고기와 소시지 그리고 주키니 반토막과 옥수수 4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