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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il Jan 30. 2024

아이는 자라 학생이 되었고
난 늙어 학부모가 되었다.

이건 학부모 상담이라기보다 학생상담의 방청에 가까웠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첫 학부모 상담을 다녀왔다. 학교생활이 원만해 보이고 쪽지시험 성적도 나쁘지 않아 별 걱정은 없었다. (걱정이라면 나의 미천한 독일어 실력이 상담에 걸림돌이 될까 은근 심장이 두근거렸다.) 담임 선생님은 상담 2달 전부터 아이의 생활 전반에 대한 평가 설문지를 보내오셨고, 연말 지인의 식구들과 한 집에서 복작복작 정신없이 지내던 사이 설문지가 사라져 버려 선생님께 다시 요청하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아이의 학교 생활은 원만하고 학업 성취도 나쁘지 않다이다. 다만 경쟁에서 지기 싫어하고 자신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태도가 따로 언급되었다.  2년의 유치원 생활동안 2번의 학부모상담이 있었는데 지기 싫어하고 선생님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 한다는 지적이 늘 있었던 터라 이번 선생님의 피드백이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다. 

 

덤벙거리며 문제를 안 풀고 지나가기도 한다. Bravissimo는 영어 아닌가? 이거 독일어 시험인데.


아이가 처음으로 만점을 받아 온 쪽지시험. 뭔가 대견함이 밀려드는 반면 나의 부모님은 느껴보지 못하셨을 기분이었겠구나 라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나에게 이 상담은 상담의 내용보다는 그 구도가 더 신선했다. 내 경험에 의한 학부모 상담이라 하면 학생 본인을 제외한 학부모와 선생님이 마주 앉아 그 학생에 대해 이야기한 후, 학생은 학부모의 입을 통해 자신의 학교생활에 대한 선생님의 평가를 전해 듣게 되는 수순이 일반적이었다. (과묵한 부모를 두었던 우리 세대 학생들의 대부분은 부모님의 설명보다는 그날 귀가한 부모님의 기분으로 자신의 학교생활에 대한 평가를 적절하게 유추해야 했었지만...) 이런 고대 그리스 신탁과도 같은 학부모 상담을 경험해 온 나에게 학부모 상담에 아이가 함께 참석해야 한다는 통지는 당연히 낯설었다. 남편에게 아이가 함께 참석하는 상담에 대해 물으니, 아이가 부모와 함께 들을 수 없는 내용의 상담이라면 추후 다시 상담 요청이 있을 거라는 뭔가 내 질문의 의도가 도달하지 못한 것 같은 대답을 해왔다. 


아리송해하는 엄마와 달리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선생님과 아빠엄마가 함께 모여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상황에 무척 들떠있었다. 상담을 10분 앞두고 학교에 도착하니 아이는 자신이 어디서 간식을 먹고 어떤 친구가 어느 교실에서 생활하는지 등을 설명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전 상담이 아직 끝나지 않아 우리는 아이의 교실 앞에서 대기했다. 옆의 빈 교실을 들여다보니 나도 몇 번 본 적 있는 아이의 같은 반 친구 N이 빈 교실에서 혼자 놀고 있었다. N의 부모님만 선생님과 상담 중인 모양이었다. 상담이 길어지겠구나 싶었다. N은 인사성이 밝고 웃는 얼굴로 묻는 말에 대답도 잘하는 아이이다. 하지만 항상 수업준비가 부족하고 등하굣길 어딘가에 종종 가방을 두고와 친언니가 가방을 찾으러 다닌다고 들었다. 정말인가 싶던 어느 날 나는 N을 길에서 만났다. 그날도 N은 정신없이 내게 인사를 한 후 갑자기 길 한가운데 가방을 내려놓더니 나중에 가져가겠다며 어딘가로 달려갔다. 나는 달음질쳐 나가는 아이를 붙잡아 가방을 다시 손에 쥐어주고 우리 집 대문 안쪽 구석에 잘 두었다가 해가 지기 전에 꼭 찾아가라 당부했다. N의 엄마가 상담을 마치고 교실에서 나왔다. 선생님은 엄마에게 아이의 실내화를 주문했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하는 듯했다. 학교가 시작되고 5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선생님은 길어진 전 상담을 사과하며 우리에게 교실로 들어올 것을 권하셨다. 그리고 아이에게 자신이 어디 앉고 싶은 지와 부모님이 어디 앉으셨으면 좋겠는지에 대해 물었다. 아이는 교실 가운데 두 번째 줄 자기 자리에 그대로 앉기를 원했고 엄마는 오른쪽 아빠는 왼쪽에 앉았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선생님은 좌부우모의 위치를 선택한 아이의 바로 앞에 앉으셔서 구름모양 카드 4장을 아이 앞에 나란히 늘어놓으셨다. 4장의 카드는 [내가 학교에서 가장 잘하는 것], [내가 학교에서 하기 힘든 것], [내가 학교에서 하고 싶은 주제], [학교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카드였다. 상담은 아이가 그간의 학교생활을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아이는 그냥 학교가 너무 좋다고 하였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내 딸은 방학 첫날부터 개학일까지 며칠이 남았는지 세는 아이였다. 


선생님은 아이 앞에 놓인 카드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시고 첫 카드에 있는 가장 잘하는 것에 대해 질문하셨다. 아이는 자신이 셈과 쓰기를 잘한다고 하였고 힘든 것은 전혀 없다고 하였다. 그럴 리가 없었다. 선생님은 놀이에서 지는 것이나 무언가 틀리는 것이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다. 동의하는 아이에게 선생님은 자신도 여전히 매일 틀리면서 배우고 있다고, 무언가를 틀리는 일은 사는 동안 항상 함께 할 일이니 친구처럼 받아들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아마도 딸아이에게 오늘 처음 하신 말씀이 아니겠지만 아이는 짐짓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또한 읽기가 더딘 아이에게 읽는 것이 조금 지루하겠지만 연습을 더 한다면 금방 늘 것이라고 격려의 말도 보태주셨다. 


이 외에도 친구들과 있었던 일, 체육시간에 대한 이야기, 수업 중에 있었던 일에 대해 아이와 꼼꼼하게 대화를 이어 나가셨다. 아이에게는 주 담임 선생님 외에도 금요일 수업을 담당하시는 보조 담임 선생님, 언어선생님, 음악선생님 그리고 공예 선생님이 따로 계신다. 담임 선생님은 이 다른 분 선생님들이 적어주신 평가 또한 아이에게 자세히 읽어 주시고 아이에게 어려울 듯한 단어는 다시 아이의 언어로 설명해 주셨다. 


아이와 선생님의 대화를 가만히 앉아 듣고 있으니 아이도 함께 참석해야 한다는 이 학부모 상담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상담의 주체는 전적으로 학생이었다. 선생님과 아이는 지난 5개월 간의 학교 생활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고 있었고, 부모는 이 자리에서 오가는 대화를 그 곁에서 들으며 아이의 학교 생활에 대해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되는 것이었다. 아이의 학교 생활의 당사자는 부모가 아닌 것이다. 반 시간 가깝게 상담이 이어졌고 선생님은 수업에 적극적이고 항상 남을 도우려는 아이의 학교 생활을 칭찬하셨다. 다만 수업 중 친구들과의 수다는 자제해 줄 것을 다음과 같이 요청하셨다. 



선생님: ㅇㅇ, 난 네가 주어진 과제를 마치고 아직 과제를 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말을 거는 행동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 친구들과 떠들면 안 될까?


아이: 제가 과제가 끝나지 않는 친구들에게 말을 시키면 친구들이 집중을 할 수 없어요.


선생님: 그래 맞아. 친구들에게도 과제를 마칠 시간을 주어야 해. 네게 주어진 과제를 일찍 마쳐서 심심하다면 선생님에게 말을 해 줘. 그러면 네가 흥미로워할 만한 과제들을 내가 더 찾아볼게. 나도 네가 수업 시간에 지루하게 앉아 있기를 바라지는 않는단다. 어때?


아이: 네. 저도 좋아요. 



부모가 함께 한 자리였지만 아이의 문제행동에 대해 부모가 죄송스러워해야 한다거나 집에서 아이에게 추가로 훈육이 필요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상담이 마무리될 즈음 선생님은 다음 학기에 아이가 다루고 싶은 테마가 있는지와 다음 학기에 같이 앉고 싶은 친구에 대해 질문하셨다. 아이는 동물을 주제로 한 수업을 요청하였고 선생님은 아이의 이런저런 피드백을 꼼꼼하게 서류에 기입하셨다. 그 서류는 아이가 유치원을 졸업하면서 유치원에서 학교로 전달된 서류였다. 서류에는 유치원 시절부터의 아이에 대한 관찰과 평가가 모두 기록되어 있다. (스위스인의 기록 강박은 다음 기회에 또 다루기로 한다. 현재 사는 이 600년 된 집을 구입하며 받은 두툼한 서류철에는 집의 초기 설계도와 그 중간중간 모든 변경 설계도, 그리고 이 집에 관련된 모든 수리 내용이 기입된 서류가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아! 600년 간의 집주인 이름들도 당연히 포함 기입되어 있었다.)  


잔뜩 긴장하고 갔던 나는 몇 마디 할 필요도 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거리며 아이와 선생님을 번갈아 보며 그 30분을 보냈다. 다만 집에서 자주 허락을 요구하는 아이가 혹시 학교에서도 그런지 여쭤보았으나 내 질문의 요지를 잘 파악하지 못하신 혹은, 내 독일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신 선생님은 다른 대답을 하셨다. 그냥 네 그렇군요 하고 난 지나갔다. 그렇게 중요했던 질문도 아니고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 오기 민망해 던진 질문이었으니 난 괜찮다. 아이의 교육에 관심이 지대한 남편의 이런저런 질문에 선생님이 열심히 답해 주셨으니 난 괜찮다. 하하...


어느덧 선생님의 마지막 말씀이 이어졌다. 



선생님: 지난 5개월 00이 학교 생활을 즐겁게 잘해주어 고맙구나. 선생님이랑 다른 선생님들도 너와 함께 일하는 게(의역하자면 '생활하는'이 맞겠지만 선생님은 이 '일하다 arbeite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다.) 만족스러웠고 앞으로 너와 함께 하게 될 일들이 기대된단다. 



선생님들에게 칭찬과 기대를 받게 된 아이의 눈은 굳은 의지로 빛나고 있었다. 선생님과 아이 간의 상담을 경청하고 나니 아이의 학교 생활에 대한 나의 기대 또한 높아졌다. 평가는 학생들 서로 간의 관계와 더불어 학생과 여러 선생님들과의 관계도 여러 각도로 조명하고 있었다. 학교의 평가 기준은 학업보다는 아이가 이제 막 시작한 첫 사회생활과 그 생활에 임하는 태도에 초점이 가 있었다. 또한 아이의 대한 평가가 담임 한 사람의 의견에 전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여러 선생님들의 의견을 같은 무게로 수렴하는 과정을 보며 한 학생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위한 학교 측의 노고 또한 보였다. 


난 '학교'나 '공교육'이라는 사회 시스템에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으로 다만 스스로 그 대안을 찾지 못해 현 시스템 안에 아이를 던져놓은 부모이다. 공교육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한 인간을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교육해 결국 또 한 명의 건실한 납세자를 길러내는 목적으로 탄생했다고 나는 믿고 있다. 개인보다 사회의 공익이 우선하는 교육에는 분명 그 한계가 있겠지만, 오늘의 학부모 상담처럼 그 학생 개인을 면밀히 알아가기 위한 교육자들의 노력이 함께한다면 아이가 성인이 되어 사회의 부속품으로 소비되고 마는 안타까운 일은 줄어드리라 생각된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는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저녁을 준비하느라 정신없어 갑자기 왜 불을 피웠는지는 묻지 못했다. 뭔가를 활활 태우고 싶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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