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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시 Sep 16. 2022

못 먹어도 Go

며칠 동안 남편과 이야기하며 같은 질문을 반복해 물었다.

'여보... 나 임상연구 참여해 말어?'

대화를 끝내고 또 고민되면 도돌이표가 되었다.

'어렵다. 나 참여해 말아...? 답 좀 내려줘..'



사실 그 물음에 나 스스로는 해야만 하는 이유를 계속 찾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상대의 의중을 확인하고 싶을 뿐, 선택에 대한 답안은 내가 가지고 있었다. 임상 연구를 참여하지 않겠다는 이유보다 참여하겠다는 이유가 더 많은 까닭은 바꿔 말해 하고 싶다는 것.

마음은 점점 참여하는 것으로 각도가 기울며 나아가 실험군(약물 투여 집단)으로 배정되었으면 하고 바라기까지 했다.



남편도 해봐야 안다고, 상의 끝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통일했다. 그 이유야 당연 둘 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때문에. 대상자 선정부터 중도 탈락되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내가 짠 시나리오로 인해 겁부터 먹어 거절한다면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아 그때 해볼걸...'하고. 그렇다면 못 먹어도 Go다!






참여 의사를 밝히고 동의서를 쓰기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 연구 간호사와 첫 대면이었다.



우리의 첫 번째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수술 후 떼어낸 암 조직을 슬라이드로 제작해서 해외로 보내기 위한 동의서 작성을 했다. 결과는 대략 일주일 정도 소요된다고 했다. 15점 이상이 나올 시 1차가 통과된다.



잊고 지내다 일주일이란 시간이 금방 흘렀다.



첫 번째 관문은 쉽게 열렸다. 나의 점수는 60점.

마음이 또다시 싱숭생숭했다. 연구 대상에는 한 발짝 가까워졌지만 점수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암의 악성도가 강한 녀석이었다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점수가 높아 불안을 내비쳤더니 연구 간호사는 15점 이상 나온 숫자에 너무 마음 쓰지 말라고 했다. 그저 대상 여부를 가리기 위한 과정일 뿐이라고 했다. 그래도 마냥 기쁠 수는 없었다.

점수로 구분하는 것이야말로 연구에 있어 쉽게 판단하는 지표가 되겠지만, 내 입장에서 점수는 곧 내 암의 성격을 떡하니 공표한 것 같아 찝찝했다. 학교나 사회나 나에 대한 평가가 점수로 매겨지는 게 늘 불편했는데.. 결국 가장 쉬운 방법은 이것밖엔 없는 것인가.






두 번째 만남을 기약한 지 얼마나 지나지 않아 본(本) 동의서를 작성하기 위해 연구 간호사를 다시 만났다. 참여 전 내 몸 상태를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했다. 수술로 암을 떼어냈지만 다시 한번 전이가 없는지 2차 관문이었다. 그 때문에 CT 촬영에 동의하겠다는 서명을 했다. 안 그래도 5월쯤 개인 비용으로 몸 전체 검사가 예정되어있었다. 연구 참여 덕분에 더 빨리 검사할 수 있었다. 한 달이나 앞당겨 결과를 들을 수 있으니 한시름 놓는 기회였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금세 날짜가 돌아와 CT 촬영을 했다. 뼈 검사, 흉부 및 복부 CT 촬영을 마쳤다. 또한 피검사, 소변검사까지 했다. 여러 수치들이 평균 범위보다 비정상적으로 나오면 안 된다. 아쉽게도 백혈구와 호중구, 혈색소(혈액 속에서 산소의 운반 역할) 수치가 마지막 확인 시점으로부터 더 낮아져 있었다.

그러나 참여가 불가능한 수치는 아니라고 했다. 혈색소 수치가 낮아 아슬아슬하다고 했지만 문제가 되진 않았다. 아마도 젤로다 항암제의 부작용 중 하나로 예상했다.







CT 촬영 전이 여부 결과를 기다리는 그 시간은 떨림의 연속이다. 혹시나 잘못되었을까 봐. 그래도 나의 몸은 좋아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제 나를 굳건히 믿기 때문이다. 암이라는 소식에 아무것도 몰랐던 그때는 검사 전날 잠 못 이루며 근심에 휩싸여 심장이 벌렁벌렁거렸다.

이번 검사는 그 정도까지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안이해졌냐고? 네버! 안이해질 수 없다. 다만 벌어지지 않은 상상 속에 갇혀 나를 옥죄는 일은 너무 힘이 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과도한 걱정을 멈춘 것뿐이다. 나에 대한 믿음만 남겨두기로 했다.



이 결과만 나오면 이제 연구 참여는 확정이다. 실험군과 대조군 그 둘 중 무엇이 될지 그것은 운에 맡기리라.






이상 없을 거라고 편하게 마음을 먹으며 일상을 이어갔다. 전보다 의연한 태도로 일상을 마주하는 와중에도 한 번씩 불안과 공포감이 불쑥 찾아왔다. 벼랑 끝으로 몰린 나의 모습을 떠올리고 그 장면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을 때면 고개를 절래 절래 세차게 흔들었다. ‘그만’을 외친다. 세드 엔딩 시나리오 작가가 되는 것을 멈춘다.



그 과정은 연습이 필요하다. 몇 번의 세공을 거치고 나니 내가 만들어 놓은 상상의 나래에서 금방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럼에도 결과가 빨리 나왔으면 하고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며칠 째 남편 또한 결과를 기다리는 일이 참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여보. 연락 왔어?'


 

뼈 검사와 복부 ct 결과는 이상 없음이라는 소견을 들었으나 흉부 ct는 판독 교수가 사정상 일주일 휴가라고 했다. 판독 나오는 대로 연락 주겠다며 조금 더 기다려달라는 연구 간호사의 말을 결국 참지 못했다. 남편의 걱정 어린 재촉에 내 마음도 급해져 문자를 남겼다.

'연구 간호사님. 흉부 ct 결과 아직 안 나왔을까요?'


 

답장이 없었다. 정말 만에 하나 이상이 있어서 연락을 취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는지. 답장을 빨리 읽고 싶은 마음에 진동에서 벨소리로 바꾼 것은 나의 초조함이 적나라게 드러난 행동이었다. 남편도 답장이 오기만을 기다리다 말했다.

'여보. 오늘은 그냥 연락을 한번 해봐.'


 

그래서 전화도 걸었는데 연결되지 않았다. 방사선 후유증이 너무 심한 상태였다. 이 때문에 방사선과 진료를 보러 갔다. 진료 중에 벨소리가 울렸다. 발신인은 내내 기다린 반가운 전화, ‘임상 연구’라고 저장한 번호였다. 방사선 전문의가 설명하는 도중에 양해를 구하며 전화부터 받았다.



연구 간호사의 목소리가 밝았다.

'안녕하세요. 너다움 나다움님. 안 그래도 오늘 중 연락드리려고 했는데요.'


나는 말했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긴장이 돼서 참지 못하고 너무 연락했죠?'


연구간호사는 내가 원했던 대답을 들려주었다.

'흉부 ct 결과 나왔어요. 이상 없습니다.'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전화기에 대고 감사합니다를 몇 번이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사실 너무 떨고 있었거든요. 결과가 지연되어서 혹시 무슨 일 있는 건가 싶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서 저도 연락 얼른 드리고 싶었어요. 이제 모든 과정은 통과했으니 다음 주 무작위를 돌려 어느 군으로 선정될지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3개월 단위로 검사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결과를 들으러 가야 한다. 하지만 수술 후 3개월 첫 발걸음이 좋다. 무사통과! 암 진단 이후 처음으로 마음 놓은 하루였다. 3개월 단위가 모여 1년이 되고 3년이 되고 10년, 20년이 될 테고 그 사이 임상 연구는 나를 추적하겠지. 나와 비슷한 사례를 가진 미래 삼중 음성 유방암 환자에게 희망을 선물하고 싶다.  


'겁부터 먹을 필요 없다고. 3기 말 환자가 이겨냈다고. 그러니 우리 이겨내자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어느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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