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모포트란?
정맥을 통해 심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중심 정맥까지 삽입하는 관으로 이를 통해 약물을 주입한다.
항암 치료 시 약해진 혈관을 통해 항암 투여가 불가능할 것을 대비해 미리 항암 시작 전 삽입한다.
가방을 크로스로 멜 때마다 쇄골에 삽입한 캐모 포트에 가방 줄이 닿았다. 강한 눌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가방 줄이 포트를 건드릴 때마다 거슬리며 욱신거렸다. 반대방향으로 멜 수도 없다. 반대편은 수술한 팔이므로 되도록 림프 순환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최선으로 포트가 닿지 않도록 가방 줄을 바짝 당겨 위치를 조정했다. 하지만 몇 걸음 걷다 보면 줄이 다시 포트에 닿아 일상 중에 짜증이 났다. 은근히 불편함을 겪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샤워를 하기 위해 탈의를 하고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 툭 튀어나온 퍼런 동그라미가 끔찍했던 항암의 악몽을 떠올리게 했다. 모양은 마치 단춧구멍같이 생겨가지고는 그곳에 언제든 주사를 놓을 수도 있다는 압박이 나를 짓눌러 어깨를 무겁게 했다. 이 대목에서 짜증과 두려움을 키우는 캐모 포트는 제거해야 하는 대상임에 틀림없었다.
개중에 캐모 포트를 몇 년 지닌 채로 살겠다는 환우도 있다. 그것은 혹시 모를 재발이나 전이가 될 상황이 닥치면 다시 캐모 포트를 심지 않으려는 방지책이다. 캐모 포트 삽입은 수술이 아닌 시술에 해당하지만 나는 그 시술의 느낌마저 공포 그 자체였다. 그렇게만 놓고 보면 나도 포트 제거를 최대한 미뤄야 했다. 제거 또한 시술이고 공포를 피하려면 지니고 있는 게 나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공포감을 또 느끼더라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왜냐고?
난 혹시 모를 재발과 전이가 생길 것을 염두하기 싫다.
그리고 난 운명에 맡기련다!
생각한 까닭이다.
곧장 항암 했던 병원으로 가 진료를 본 뒤 제거할 날짜를 예약했다. 참고로 나는 선 항암을 한 병원과 수술 및 방사선, 후 항암을 한 병원이 다르다. 캐모 포트 제거는 처음에 삽입했던 병원으로 가야 하기에 오랜만에 선 항암을 했던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요즘 몸의 컨디션이 어떠냐 물었다. 타 병원에서 후 항암 중이며, 항암약은 '젤로다'를 복용 중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의사는 항암 복용이 끝나면 제거하자고 했다. 그때는 의사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진료실을 나왔다. 결정 내렸던 마음과 달리 제거 날짜를 미뤘다.
부쩍 포트를 심은 부위가 이따금 찌릿하게 아팠다. 하기야 그럴 수밖에 없다. 선 항암이 끝난 뒤로 더 이상 주사로 맞는 항암은 없어 캐모 포트는 방치되고 있었다.
포트를 깨끗하게 청소해주는 것도 아닌데 정맥에 딱 붙어버리면 몸속에서 뭔 일이 벌어지는지 당장은 알 수 없지 않은가.
불현듯 다시 제거해야겠다는 생각이 파도처럼 휘몰아치며 결정을 바꿨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 했다.
다음 날 병원에 전화해 날짜를 앞당겨 변경했다. 지체 없이 바로 그 주에 제거를 하기로 했다.
시술 당일, 의사는 시술 전 주의사항에 대해 고지하고 나는 그것에 동의 서명했다. 젤로다 약을 복용하며 겪는 부작용 중 하나는 혈액의 산소를 운반하는 혈색소의 수치가 현저히 낮아진 점이다. 그로 인해 한 번씩 몸이 무리했다 싶을 때면 산소가 부족해 머리가 아프고 호흡이 어려웠다. 핑 하고 쓰러질 것 같았다. 또다시 내면에서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문제로 시술하다가 잘못되는 건 아니겠지... 어쨌든 마취를 하고 칼로 째야 하는데...
한편 나 외에도 포트를 제거하는 분이 한 명 더 있었다. 서로 말없이 함께 1층에 있는 수술실로 내려갔다. 그 안에는 진초록 가운을 입은 간호사 세 명이 있었는데 그중 두 명이 선임에게 업무를 배우는 중이었다.
'하필 초보 간호사야? 실수하진 않겠지?'
그녀들이 업무를 배우는 장면은 내 마음속에서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키기에 충분했다.
다른 한 분이 먼저 호명되어 들어갔다. 30분 정도 소요되는 시간, 떨림을 내려놓고 의자 옆 작은 책장에 꽂혀있는 책 하나를 골라 읽어 내려갔다. 편지글 형식의 책으로 술술 읽었다. 덕분에 대기 시간이 짧게 느껴지며 어느새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내 마음과 몸은 통했다. 한여름 오들오들 추웠다. 나는 긴 티를 입고 오지 않은 것에 후회했다. 수술방은 더 춥게 느껴졌다. 양말도 벗은 채 누워있으니 발가락 끝부터 순환되지 않았다.
띠-띠-띠 (심장박동 소리)
기계는 계속해서 내 심장박동수를 체크했다.
이어 파란 천으로 전신을 덮고 제거할 위치의 속살만 드러낸다. 얼굴까지 덮은 파란 천이 조명 빛에 투과되었다. 그 순간 내 눈에는 파랑과 투명의 조합이 에메랄드 빛 바다 색깔로 반짝이듯 보였다.
'그래, 이번에는 바다가 날 지켜줄 거야. 바다 네가 날 좀 지켜줘.'
깊게 호흡했다. 국소 마취가 진행되었다. 의사는 말했다.
'마취가 좀 많이 아파요.'
거짓말이 아니었다. 많이 아팠다. 몇 번을 겪고도 적응되지 않는 의사와 나 사이 보이지 않는 긴장감.
이 또한 지나가리... 이 믿음 하나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의사는 마취를 한 부위에 손가락으로 누르며 물었다.
'여기, 통증 느껴져요?'
안 느껴져야 하는데... 젠장... 통증이 느껴진다.
국소마취를 더 한다고 했다. 한 번 더 아픔을 참아내며 마취가 되었고 더 이상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석션으로 포트를 빼는 느낌이 났는데 흡사 유리병뚜껑을 옆으로 돌려 뽕! 하며 따는 것과 비슷했다. 마취로 인해 아프지는 않았다.
그러나 의사가 흘기는 말들이 자꾸 귀에 맴돌았다. 내가 들으라고 한 소리는 아니었지만 조용한 수술방에서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아. 피가 잘 안 멈추네.'
말은 못 하며 속으로 나는
'피가 안 멈춘다고?
응고가 안되면 피가 막 솟구치는 거 아닌가.'
심장박동수가 크게 뛰는 것 같았지만
기계음은 여전히 띠. 띠. 띠 일정한 간격의 소리를 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제거는 끝이 나는 듯했다.
의사는 말했다.
'제거는 잘했고요. 다만 피가 좀 흘러내려서 본드 마무리는 못했네요. 대신 실밥으로 꿰맸습니다. 실밥 빼러 다음 주에 한 번 더 진료 오세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끝났으니 내려오라는 소리에 굳은 몸을 느릿하게 피며 수술대를 내려왔다. 나의 발이 제일 먼저 보였다.
항암제로 인해 발이 엉망진창이다. 거무죽죽하고, 발톱은 빠져있으며, 물집과 쩍쩍 갈라진 형편없는 발.
그 꼬락서니에 잠시 초라함이 스쳐 지나갔지만 이번에도 날 지켰다. 중간중간 일렁이는 파도가 찾아왔지만 너른 마음씨를 가진 바다가 나를 감싸며 지켜준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