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 발맞춰 나란히 걷다가 갑작스레 나 혼자 블랙홀에 빨려 들어갔다. 그러나 암을 진단받고 뇌관이 터질 것 같았던 그 단 하루가 불러온 파장은 컸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어지러운 머릿속을 차분히 정리하고 싶었다. 기록만이 살기 위한 끄나풀이었을 거라 이제와 짐작할 뿐이다. 암 선고를 받은 그날, 그 상황, 그 기분을 기록하는 것만이 내 유일한 방법이었고 그때 술술 써 내려간 내 글엔 진심이 담기지 않을 수 없었다.
펜을 쥐고 수기로 적는 일은 오래 할 자신이 없었다. 나를 잘 알건대 안 봐도 비디오다. 노트 앞 페이지만 몇 자 끄적이고 말 거라는 뻔한 결말이다. 조금 더 오래 쓸 만한 도구로 블로그가 떠올랐다. 만들어놓고 방치한 블로그 하나를 활용해 그날 있었던 일을 적기 시작했다.
며칠 뒤 남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누나... 누나 글 읽고 한참을 울었어. 힘들겠지만 계속 기록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어쩌면 그 말에 힘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항상 글에 대한 자신이 없었는데 남동생이 던진 그 말 한마디는 내게 민들레 홀씨와도 같았다. 누군가 후 하고 불어준 민들레 홀씨가 내게 날아와 지금까지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3개월 정도가 지났을 무렵 어떤 형태로든 글쓰기를 배워보고 싶었다. 그 마음이 일렁인 까닭은 글 쓰는 날이 늘어날수록 쓸 말은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치료는 곧 내 일상이 되었고 그 루틴은 힘들고, 외롭고, 허전한 마음들로 넘쳐흘렀다. 자꾸 비슷한 말만 되풀이했다. 게다가 매일매일 글을 쓰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글 쓰는 것에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며 꾸준히 할 수 있을는지...
의심과 주저 사이를 넘나들며 갈등했다. 글을 계속 쓰고는 싶은데 요행을 바란다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래! 한 달만 배워보자'
항암 중 땅으로 푹 꺼질듯한 기운과는 반대로 무언가 배우고 싶은 의지는 샘솟았다. 항상 생각 속에 머물던 글쓰기 수업을 이참에 들어보자 마음먹었다. 우연히 글쓰기 초보자를 위한 수업을 찾았고 돈을 지불했다. 한 달만 배우고자 했던 다짐은 이내 시작하길 잘했다 생각하며, 무려 세 달동안이나 글쓰기 지도를 받았다. 꼭 만남의 장을 마련하지 않더라도 수업은 가능했다. 글을 써서 메일로 보내면 장문의 편지 형식으로 회신이 왔다. 그것은 지도자의 비판보다 소통에 가까웠다.
그렇게 자칭 '글의 대화'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매일 글쓰기를 이어나갔다. 첫날부터 초콜릿 퐁듀처럼 달콤함에 빠졌다. 늘 누군가와 말로 하는 대화만 해오다 말이 아닌 글로 대화를 하니 신선했던 것과 달리 내용은 묵직했다.
답신이 오는 아침 그 시간대를 몹시 기다렸다. 따듯한 아메리카노 한 잔과 간식 몇 개를 테이블 옆에 두고, 양 손바닥을 비벼 예열하며, 노트북 전원을 띡 누를 때 느껴지는 그 산뜻한 기분! 준비하는 과정마저 기쁨으로 다가왔다.
다양한 말로 답신이 왔다. 비평은 비평대로 배움이 더해지고, 칭찬은 칭찬대로 자신감이 충전되었다. 선생님의 말들에 힘을 얻었다. 고독한 입원실, 글쓰기 수업은 내게 크나큰 낙이었다. 민들레 홀씨가 다시 날아온 느낌이었다.
한편 학창 시절 국어 과목은 항상 난제였다. 그렇기에 수능에서 언어 5등급을 맞았는데, 그런 내가 글을 쓰고 있다. 작가를 할 수 있는 비범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정신이 말짱할 때는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글 쓰는 것이 힘들더니, 아이러니하게 아프니까 글을 쓴다. 사람에게는 알다가도 모를 파워가 존재하긴 하나보다. 항암으로 힘들어서 아무것도 못하겠는 상태에서도 노트북을 켰고, 글을 쓰고 싶었고, 밥 먹을 힘은 없어도 글 쓸 힘은 주셨다.
글쓰기를 계속하게 된 그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누군가 내 글을 읽고 공감했다는 댓글들이 달렸다. 나를 치유하기 위해 시작한 글쓰기에 누군가와 통하기 시작했다. 단 하나의 댓글만으로 도리어 내가 또 힘을 얻었다. 민들레 홀씨는 그렇게 자꾸만 날아와 글을 쓰라고 부추긴다.
여전히 나를 채울 단어나 글감이 떠오르지 않는 날은 갑갑하며 글을 쓰지 않은 날은 이상하게 찝찝함이 자꾸만 주변을 맴돈다. 강박 때문일까?
뭐든 즐겁던 일을 스스로 속박하는 순간 하기 싫다. 그런데 난 글쓰기를 계속하고 싶다. 항상 남들 말에 쉽게 좌지우지되었던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온전히 나를 믿기 시작했다. 내가 보이니까 내 하루가 보였고 하루 속에 미세한 조각들이 보였다. 조각 속에는 분명 알고 있었지만, 놓치고 지나간 깨달음이 있었다.
그거였다! 글쓰기의 원천은 향수였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 향수 말고, 냄새를 품기는 그 향수 말고.
향수 2 (享壽)
[명사] 오래 사는 복을 누림.
나는 글쓰기로 향수[오래 사는 복을 누림]를 누리고 싶은 것이었다. 백발의 할머니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 딸이 결혼한다면 그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바래서 닳고 닳아진 내 글을 훗날 내 딸, 내 손녀가 보았으면 좋겠다.
과거가 희석되어 아름다운 결말을 지으며 말이다.
남편과 나눈 사소한 대화, 치료 과정에서 느꼈던 마음, 부모를 바라보는 시선, 아이의 모습을 적다 보면 단순했던 삶에 윤기가 흐른다. 암은 내게 새 삶을 살도록 하는 것과 동시에 이렇게 '작가'라는 색다른 부캐를 만들어 주었다. 아무래도 좌절은 희망의 숨겨진 이름인 것 같다.
글을 쓰게 된 덕분에 먹구름 사이로 가려졌던 볕이 드리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