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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시 Jan 24. 2023

위로의 단어가 필요한 순간에


기쁜 일을 열거하며 살 줄만 알았지, 위로를 받기 위해 또는 위로를 하기 위해 사는 건 생각해보지 못했다. 삶이란 게 가슴 흐뭇한 일들로 가득 채워지면 좋겠는데 그래서 비극의 결말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도 그런 일만큼은 벌어지지 않길 바라는 실낱같은 희망이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러나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하지 않았던가. 찰리 채플린의 뼈 때리는 명언처럼 때마다 우울한 일들은 샘물처럼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옆 사람들을 위로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런데 위로는 어렵다. 위로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위로란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주거나 슬픔을 달래 줌‘으로 정의된다. 따뜻한 말과 행동이라...



그렇다면 위로를 해야 하는 상황과 위로를 받아야 하는 상황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어느 쪽이 더 쉬울까? 팽팽하게 대립각을 세우지만 결론짓자면 위로를 받는 쪽이 좀 더 쉽다고 이제와 말한다.

위로를 하는 게 더 어려운 이유는 왜일까? 차근차근 실타래를 풀어보니 모든 건 마음의 여유에서 비롯되었다.



마지막까지 치료 중에 몸이 버티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출산 후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하는 상상을 했다. 부모님, 남편, 아이의 존재를 두고 먼저 가는 두려움. 남은 사람들이 나의 부재에 대해 느낄 그리움. 그것들은 괴로움이 되었고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사람을 녹여 줄 따스한 말이 존재하긴 한 걸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글까지 쓰니까 그 정도로 절망적이진 않은가 보다, 암에 걸려도 그렇게 아프진 않은가 보다, 하는 속마음을 지닌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유방암 3기부터는 생존율이 급격하게 뚝 떨어진다. 비극의 결말이 내게 찾아온다면 생존율이 아닌 사망률에 포함될 수도 있다는 소리다. 그러니 저런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지인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싶지 않았지만 출산도 하나의 사건이므로 여기저기 축하메시지가 날아왔다. 나의 상황을 전혀 모르기에 사람들에게 감사하다고 대답했다.

밀려드는 괴리감 때문에 차마 기쁜 척은 하지 못했다. 무표정과 함께 건조하게 답장을 보냈지만 마음과는 달리 사람들은 천편일률적인 질문으로 다시 답장이 왔다.

’자연분만 했어?‘

어쩔 수 없이 제왕절개를 택한 나의 처지에 그 질문은 속상하기 짝이 없었다. 몇몇의 카톡엔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암을 진단받고 며칠이 지나서 친한 지인들에겐 소식을 하나둘 알렸다. 솔직히 마음이 헛헛했다. 혼자 있고 싶으면서도 같이 나누고 싶은 마음이 두쪽으로 나뉘어 위로를 받고 싶었다. 때론 위로가 동정이 되기도 했다.



위로와 얽힌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며칠을 고민하고 장문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이 있고 아무 말 없이 죽 쿠폰 세장만 보낸 사람도 있다. 또 가족 중에 유방암에 걸린 분이 있지만 그 예후에 대해 말해주며 안심시키는 사람이 있고 그냥 평소대로 대할 거라며 농담과 일상을 던지는 사람이 있다.

사실 어떠한 말도 괜찮지 않았다. 괜찮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무엇을 기대했길래 위로를 바라고 위로를 거부하고 위로에 상처받았을까. 위로의 말은 친한 사이일수록 더 어렵고 서먹하게 다가왔다. 친하다고 생각한 모두한테서 더 진한 진심을 전달받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신에 상처가 되는 말엔 멍자국만 더 진해졌다.

생각해 본다. 스스로 위로하는 일도 쉽지 않은데 상대가 내게 마음을 전하는 일이 얼마나 얼마나 어려웠을지를.

치료를 끝내고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조금씩 생겨나니 아픈 사람은 많았다. 그 입장을 겪고도 나조차 위로를 건네는 일이 쉽지 않았다.







한편 엄마는 내가 아픈 이후로 친하게 지냈던 동네 아줌마 두 명과 관계를 완전히 끊었다. 그중 한 명은 30년을 알고 지낸 분이기도 했다. 낯선 광경이었다. 평소 나와 다른 성향을 가진 엄마는 여러 사람들과 트러블 없이 두루두루 잘 지냈다. 그런 엄마가 단칼에 그 두 명의 아줌마를 카톡에서 차단하기까지 했으니 내게 있어 엄마의 낯선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엄마가 자세히 이야기해 주지는 않았지만, 상처를 입은 건 분명해 보였다. 엄마는 딸의 아픔을 지인들에게 일부 털어놓았으나 돌아오는 말은 엄마의 가슴에 멍자국을 남겼다.  '괜찮아~ 요즘 암은 암도 아니래.' 

엄마는 울면서 말했다.

'어떻게 괜찮아? 본인들도 자식이 있는데!!!

본인 자식이 아파도 그렇게 말할 수 있어? 어떻게 사람들이 그래!! 안 보면 그만인 사람들이야. 이제 나도 그걸 알겠어.'



게다가 좋은 게 좋다고 가족들에게 큰 소리 한번 낸 적 없던 엄마가 외가 식구들에게도 울부짖었다. ‘너희들은 어떻게 조카가 아픈데 안부 소식을 묻지 않느냐고’ 말이다.

엄마는 감정을 토하며 다시 한번 울었다.

처음 겪는 일. 그것도 자신이 아닌 자식이 아픈 일.

그동안 감정을 숨기고 억누르는 것에만 익숙했던 엄마가 나이 육십에 성장통을 겪고 감정에 충실하기 시작했다.






누구 하나 들어올 공간 하나 없이 슬픔으로 빽빽이 채워져 있을 땐, 위로의 말은 모두 쓸모없었고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가시이기만 했다. 하지만 1년 동안 유방암 표준 치료를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에서야 마음의 곳간이 넉넉해지니 위로를 받는 쪽이 더 쉬웠음을 느낀다. 상대의 안위는 제쳐두고 나의 힘듦만 토로하면 됐었으니까. 세상 누구보다 내가 제일 힘들다고 느꼈으니까.



상대의 속사정을 들은 사람들은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차라리 침묵을 지키는 게 나을지, 조언을 해줘야 할지...

고뇌해야한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가까운 사람들도 충분히 고뇌했을 거라는 걸 안다. 혹은 내 일 아닌 것처럼 가볍게 보는 이들에게서 받아들이는 사람은 쉽게 던진 말로 입력해 불통도 생기곤 한다.

이처럼 고뇌를 한 사람도 하지 않은 사람도 위로를 건네는 편이 이토록 더 어려운 이유는 자신의 평온이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일과 중에 어려움을 겪는 누군가를 위한 여유를 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 여유가 잠깐일지라도 그 순간 타인에게 온 마음 공감하며 소중한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래놓고도 좋은 소리 듣지 못할 수도 있는 게 위로인 것 같다. 사연을 들어주는 라디오 DJ는 그 사연을 읽어주는 일이 업이라 그에 맞는 말을 연마라도 하지, 일반 우리는 일상적인 대화도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느끼니 위로는 대화에 있어 상위 1%나 진배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소통이란 본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소통이라는 단어는 아마도 불통의 수많은 경험을 통해 우리가 희구하게 된 희망 사항인지도 모릅니다.

책 <사랑을 말하기에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162p






아픈 일을 겪고도 굳이 입 밖으로 얘기하지 않으며 속으로 삼키는 우리 모두는 외롭다. 위로가 동정이 되어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는 것이 싫어 숨기도 하고 위로의 말에 상처를 입고 사람이 미워지기도 하여 점점 나 홀로의 삶을 택한다. 그래서 예전의 나도 그러했듯 난 전혀 외롭지 않다고 외치는 사람도 있겠지만 현미경으로 미세하게 살펴보면 외로움이 저변에 깔려있을지 모른다. 영겁의 세월, 우리는 외로움을 지니며 살아가는 동시에 끊임없이 소통을 갈구한다.

이쯤 되면 위로는 불통이 되고 불가능한 것쯤 되는 건 아닐까?



아니, 가능하다. 가장 위대했던 위로는 다름 아닌 말없이 상대를 안아주기. ‘포옹’이었다. 

첫 항암을 시작하기 하루 전날밤에 산후 마사지 1회를 받았다. 출산 후 외출하지 못한 채 2주 넘게 병원 입원으로 지겨운 날들을 마사지로 풀고 싶었다. 나의 사연을 알고 있는 마사지 원장님은 뜻하지 않게 마사지가 끝나고 나를 꼭 끌어안았다. 순간의 포옹은 사전적 의미대로 괴로움을 덜어주거나 슬픔을 달래줄 수 있었다. 친한 사이가 아니더라도 포옹은 위로가 가능했다.

나라는 사람으로 한정되어 말할 수밖에 없지만 포옹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진심이 담겨있었고 따뜻했다. 포옹이 어렵다면 또 하나의 위로는 기도였다. 무교임에도 충실한 종교가 있는 지인이 나를 위해 항상 기도하고 있다고, 그러니 너는 무조건 이겨낼 거라고, 날 대신한 지인이 신에게 기도를 청하여 믿음을 줄 때 왠지 모르게 신이 나까지 지켜주실 것 같은 믿음 덕분에 희한하게도 치유가 되곤 했다.



위로의 단어가 필요한 순간들은 수시로 찾아온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사건만 위로가 필요한 건 아니다.

당장 내 곁에 있는 배우자, 부모, 자녀, 친구, 동료가 마음 쓰린 상태일 수 있다. 그래서 위로의 단어가 필요한 그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저 안아주며 기도해주라고 조심스럽지만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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