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 개의 채널에다가 글을 쓴다. 그 하나가 바로 브런치고, 다른 하나는 블로그다. 적지 않는 날이 허다하지만 그래도 매일 쓰기 위해 노력한다. 블로그는 그날의 일을 바로 적는 노트다. 브런치는 블로그에 기록된 것을 토대로 퇴고한다. 비유해 보면 블로그는 식욕 돋우기 위해 먹는 가벼운 애피타이저 같은 것이고, 브런치는 말 그대로 브런치, 아침 겸 점심을 뜻하지만 갖춰진 식사 뭐 그런 셈이다.
블로그를 일기장으로 삼았다. 비록 남들도 볼 수 있도록 허용된 일기장이었지만 그러라고 쓰는 것이기도 했다. 딱한 사연들로 처지가 비슷한 환자 무리에 섞여있으면서도 나는 혼자였다. 외로워 썼고 위로받고 싶었다. 어느 날 한 통의 비공개 댓글이 달렸다. 블로그에 올린 글 중 '임신 중 유방암 판정을 받은 나의 하루'를 읽고 댓글을 남긴다고 했다.
더 자세히는 ‘임신 여성의 암 치료’에 대한 선행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내 이야기를 통해 연구 개발에 도움을 좀 받고자 하는 요청이 담겨있었다. 댓글 작성자는 자신의 신상정보까지 공개했다. 소속처와 이름, 연락처, 메일 주소까지 남기며 회신을 기다린다고 쓰여있었다.
그러나 이 험악한 세상, 댓글 하나만으로 사람을 섣불리 믿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 댓글을 시원하게 무시했다. 댓글에 대한 답글조차 달지 않았다. 그렇게 그 댓글을 잊고 지냈는데 다른 글에 같은 작성자에게서 비공개 댓글이 또다시 달렸다. 반복적으로 댓글이 달릴 것 같아 죄송하지만 거절하겠다는 답변을 남겼다.
거절한다는 답변을 달기가 무섭게 재댓글이 빠르게 달렸다. 당시 내 마음을 설명할 길은 없지만 그 재댓글에서 어딘가 모르게 진심이 닿았다. 그리고 나는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생각해 보고 연락드리겠다고 말을 번복했다. 고민 끝에 문자로 연락을 취했다. 어떤 연구인지, 그 연구를 어떻게 믿을 수가 있는지, 그곳에 소속된 분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지...
정보 요원처럼 의심을 품은 질문들 뿐이었다. 그럴 거면 왜 연락을 했나 싶지만 이미 난 그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나 같은 사연에 무슨 연구를...? 임신 여성의 암이 일반인의 암과 큰 차이도 없는데....?
그래서 더 궁금했다. 그녀는 첨부 파일 3장을 보내왔다. 이 연구의 목적 등이 기재된 요약 파일이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도 사람을 완전히 믿을 순 없었다. 세상은 어쩔 수 없이 강자와 약자로 나뉘어 마음이 약해진 자의 마음을 꿰뚫는 자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대학생 때의 일이었다. 강남역 부근에서 친구와 놀다가 집으로 가는 길에 종교적 회유를 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심적으로 취약했던 그때 마음이 힘들어 보인다며 다가와 자석처럼 이끌리듯 그 사람 손을 잡을 뻔했다. 나중에 미디어를 통해 강남역에 그런 자들이 득실거린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던 그 기억이 갑자기 선명해졌다. 그래서 혹시 종교적으로 설득하려는 건 아닌지까지 물었다. 물론 사이비 종교 설파자였다면 그렇다고 답할 리도 없었겠지만.
어찌 됐건 연구원의 소속처로 역전화해 신분 확인이 되면 남편과 상의 후 참여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다음날 OO 대학교 간호대학 조교실로 전화를 했다. 조교실 담당자는 해당 연구원 개인 정보를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비서실로 연락했다. 비서실에서는 흔쾌히 연구원님의 정보를 확인해 주었다. 진행 중인 연구 논문인지까지 확인 후 알려주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신뢰를 갖고 나서야 면담 참여에 동의했다.
코로나가 한창 심했을 때였고 경구 항암제를 복용 중으로 걸음이 어려울 때였다. 연구원은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카페로 직접 오겠다고 했다. 비대면 시대에 대면이 꼭 필요한 지 물었으나 연구의 특성상 대면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만날 장소와 시간을 약속했다.
약속했던 날짜가 다가오자 낯선 사람을 만나는 약간의 긴장은 은근한 설렘으로 바뀌었다. 남편은 혹시 모를 해코지를 생각해 동행을 자처했다. 대신 멀찍이 떨어져 감시자의 눈으로 연구원을 지켜보겠다고 했다.
든든한 남편을 백으로 삼으며 드디어 서로의 얼굴을 마주했다. 연구원은 간단하게 연구에 대한 소개를 해주었다. 연구 과제명은 ‘임신 여성 암 치료 인식 도구 개발’이라는 것인데 인식 도구 개발이라는 정의가 모호해 그게 정확히 뭔지 물었다.
예컨대 2000년 초반부터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는 이미 임신 여성 암 진단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서 그들을 위한 현실적 지원이 마련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임신 여성의 암 진단에 대한 인식이 전무하나 최근 임신 중 암 진단 여성들의 비율이 날로 높아지고 있어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했다. 실제로 블로그를 하면서 나와 유사한 분들이 생각보다 있었고 최근에 직장 동료 중 한 사람도 임신 중 갑상선암을 진단받았다고 들었다. 한 교수의 궁금증으로 인해 이 연구가 시작 되었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고 하니 아무래도 대상자 모집이 어려웠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환우 카페, 맘 카페를 통해 모집했으나 회답이 온 경우는 단 한 명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블로그에 나처럼 병상일지를 기록하는 분을 발견하면서 하나둘 접촉하고 있었다. 지방도 마다하지 않고 대면 면담을 하러 다니고 있었다. 쉽지 않았지만 벌써 내가 6번째 면담자라고 한다.
자발적 참여 동의서를 작성하고, 당일 면담에 대한 녹음에도 동의했다. 준비된 질문지에 자유롭게 답변했다. 그 과정에서 암 진단을 받았던 그때로 돌아간 듯했지만, 마음이 요동치거나 두렵거나 우울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많이 담담해지고 의젓해졌음에 감사하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어떤 지점에서 울컥하기도 했다. 슬픔의 눈물은 결코 아니었다.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던 연구원은 자신도 아이를 둔 엄마라며 중간중간 눈시울이 붉어졌고, 지금까지 나와 비슷한 사례자들의 이야기도 함께 들려주었다. 신기하게 막혔던 변기를 뚫듯 속이 뻥 뚫리며 마음이 편안했다!
생판 모르던 사이가 그 순간 상담사와 의뢰자 간 만남 같았다. 어쩌면 사람들은 지나가던 행인을 붙잡고 자신의 속마음을 더 쉽게 털어놓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가족들은 내가 걱정되고 나는 가족들에게 미안해서 서로를 너무 생각하다 보니 미처 말할 수 없는 마음을 오늘 처음 본 사람에게 비록 그것이 연구의 사례 때문일지라도, 깨끗하게 비울 수 있었다.
면담의 내용을 토대로 설문지의 기반을 마련하고 그다음은 출산 준비 여성을 위한 의료계 교육용으로 활용된다고 한다. 어떤 영역이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일은 위대하다. 그래서 이런 영역까지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진행해 주어서, 더불어 털어놓지 못했던 나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게 잘 들어주어 감사하다는 말을 끝으로 우리의 만남은 종료되었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드라마 명대사가 떠올랐다.
장님 등불 얘기 알아요?
어두운 밤길에 등불을 들고 걷는 시각 장애인한테 누가 물었어요.
어차피 보이지도 않는데 그걸 왜 들고 걷냐고.
왜 들고 걷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그 등불을 보고 부딪혀 넘어지지 말라고.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길을 밝히는 거예요.
(출처)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3회, 김남길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