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은 일을 토대로 전지적 작가 시점 글을 시도해 봅니다
산에 올랐다. 등산객이 간헐적으로 등장한다. 옷깃 스친 사람의 수를 셀 수 있을 만큼 등산객이 적었다. 주말 아이 돌봄에 체력을 소진해 힘들었던 흰이슬은 늘 오르는 거리까지만 가야겠노라 마음먹었다. 정자가 있는 거리, 딱 거기까지만 오르고 벤치에 앉으려던 찰나 새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보였다.
맞은편 벤치에 앉아있던 고양이는 사람 인기척에 흠칫 놀라 그를 빤히 쳐다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 혼자 잘 놀고 있었는데 방해꾼이 왔네.’)
그런 고양이 생각과는 다르게 그는 반갑다는 듯 고양이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가 평소 고양이에게 남다른 애정이 있느냐고? 그럴 리가!
오히려 싫어함에 가까운 정도다. 사람은 그때그때마다 펼쳐진 분위기나 풍경이 어떠했느냐에 따라 평소 확고했던 신념이 허물어지기도 한다. 그날따라 사위가 적막해 고양이가 유달리 반가웠을 뿐이다. 그 둘은 잠시 동안 서로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고양이는 벤치에서 내려와 고독한 자태를 뽐내며 걸어간다. 그 순간 그는 고양이와 가만 더 있고 싶은 마음에 황급히 외친다.
“고양이야, 어디가!”
그의 애처로운 목소리에 고양이는 가던 길을 멈춰 세우고선 그를 힐끔 본다. 고양이는 마치 당장 너도 자리를 뜨라는 신호를 보내는 눈빛으로 말했다.
(’저 인간 바본가. 왜 안 가고 저러고 있지.
야 인간아, 너도 얼른 가!’)
이내 고양이는 바위 아래로 껑충 내려가며 자취를 감췄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그도 항상 챙기고 다니는 보온병 안에 따듯한 물 한잔을 마신 뒤 하산하려는데
톡톡톡.
툭툭툭.
어디서 소리가 들려온다.
“어라. 비 오네?”
그는 그제야 고양이가 빗방울을 맞고 몸을 숨길 거처를 찾기 위해 빠르고 현명하게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그날은 비가 예고되어 있었다. 그 정보를 그도 모르지 않았다. 다만 비 표시가 없는 틈을 타 얼른 산에 다녀오자고 출발했던 운동길이었다. 금세 잊고 고양이를 멍하니 바라보다 그만 정신이 팔렸다. 그가 비를 맞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말이다.
때로 인간은 바보스러운 구석이 있다. 바꿔 말하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말로 통용되는 것 같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특정 사물들에 이유 없이 빨려 들어갈 때면 목적과 방향을 상실하고 다시 반복하기 때문이다. 눈을 한번 깜빡거리고 의식의 세계로 돌아오면 의문을 품는다.
‘내가 그때 왜 그랬지. 바보 같네.’
왜 그랬는지 생각을 거듭해 봐도 인간은 모른다.
비 맞음에 즉각 반응할 줄 아는 객관적인 고양이만 알 뿐
그는 결국 비를 쫄딱 맞고 감기에 걸렸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다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