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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이슬 May 28. 2024

행복은 용가리 치킨 너겟 같은 것

아이를 통해 보는 행복의 시각


  4월과 5월 꽃이 피고 녹음이 우거지는 이 아름다운 시기, 나는 이 계절을 만끽하지 못한 채 다사다난하게 흘려보냈다. 뇌로 전이된 암이 말썽을 부렸기 때문. 4월 내내 잦은 통증에 시달리다 결국 응급실에 실려갔고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진통제, 항생제, 스테로이드제 온갖 약들을 투입했다. 덕분에 그간의 통증은 가라앉았지만 수술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 뇌가 부어 생긴 뇌부종을 가라앉히기 위한 개두술을 진행했다. 살다 살다 이마 전체도 절개를 하며 살게 될 줄이야. 제왕절개, 유방암 수술, 개두술까지 연이은 3번째 수술이다. 그럼에도 의료 파업이라는 여의치 않은 상황 속에서 나를 위해 신속히 치료를 진행하는 의료진들에게 감사했다. 비록 죽겠다고 소리를 꽥꽥 지르다가 수술이 끝나 며칠이 지나고 차츰 회복해서야 의료진들이 보이긴 했지만, 그 감사함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개두술이 끝나고 나서 일주일 뒤, 여전히 남아있는 암세포를 제거하기 위한 조치도 필요하다고 했는데 감마나이프 수술을 한번 더 진행하기로 했다. 이건 절개 수술 방식이 아닌 다량의 방사선을 단시간에 머리에 조사를 하는 방식이다. 감마나이프 수술은 24년 1월에도 이미 한차례 겪었고 2개월 만에 뇌부종이 오고 다른 위치로 암이 옮겨져 두 번째 감마나이프 수술을 하는 것이다. 그 과정을 아니까 하기 싫은 마음이 활화산처럼 타올랐다. 그러나 꼭 해야 하는 과정. 이럴 때마다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게 된다. 견뎌내기 위해 이번에도 꾹 참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면역력은 이때부터 바닥을 치기 시작해 감기균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었다. 폐에서 색색 거리는 소리가 심해 엑스레이를 찍었다. 폐렴 직전 상황이었다. 근 한 달간 기침, 가래, 콧물을 달고 살며 미각과 후각까지 상실했고 수술부터 감기까지 의욕 없는 두 달을 보냈다.




  그새 아이는 몰라보게 컸다. 병원 생활을 연이어 하다 보니 아이 볼 시간이 줄어들었다. 못 보는 날이 더 많았다. 아이가 내 감기에 같이 걸릴까 봐 보러 가고 싶어도 참는 날이 더러 있었다. 그러다 감기가 최근에서야 사그라져서 아이랑 놀러 가고 싶은 마음이 물씬 찾아왔다. 삶은 그렇다. 죽네 사네 해도 몸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정신이 차려진다. 정신이 들면 마음의 평수를 차츰 넓히고 행복을 기대한다. 어디를 가볼까? 고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었다. 늘 비행기를 타고 저 먼 타국을 거닐어야 행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예전과 달리 이제는 안다. 집 앞 공원을 거닐기만 해도 크나큰 여행이 된다는 것을. 물론 먼 곳을 가는 일이 어렵게 된 몸인지라 합리화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수수한 행복을 누리고 싶어 집 주변에 행사라도 하는 곳이 있는지 검색했다. 그러다 집에서 차로 10분도 안 되는 거리에 반고흐 전시회를 발견했다. 아 여기 가고 싶다! 쓰다 보니 마치 전부터 전시회를 자주 다녔던 사람 같지만 예체능에 문외한이다. 미술 작품에 대해 모르며 보고 또 봐도 모른다. 영감이란 것을 당최 찾을 수 없는 인간 유형에 속하나 한 명의 화가를 고르라면 무조건 반고흐를 외친다. 예전에 반고흐 책을 읽었던 일이 인상 깊었던 까닭이다. 정신병을 앓으며 어두운 면이 많았던 반고흐, 동생 테오를 무척 아꼈던 반고흐, 여러 곳을 여행하며 자연을 사랑한 반고흐, 그러나 결국 자신의 가슴에 총을 겨누어 자살로 37살에 생을 마친 반고흐. 살아생전 그의 모습에 마음이 닿았던 나는 반고흐 전시관을 보자마자 예약을 했다. 그리고 지난 주말 남편과 아이랑 함께 다녀왔다.


  아직 집중을 할 개월수가 아니기에 아이가 잘 볼 거라는 큰 기대는 하지 않고 데려갔다. 전시회를 들어서자마자 반고흐 얼굴 조각상이 있었다. 이게 웬걸. 그 조각상을 본 아이의 첫마디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방구(반고흐 발음이 아직 안됨) 아저씨 멋있다.”


  아이랑 같이 가면 미술 작품을 제대로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영유아들도 흥미를 끌 수 있게 입체적이고 몰입적인 구도로 전시회를 꾸민 덕분에 아이가 연신 “방구 아저씨 방구 아저씨”라 말하며 그의 그림을 감상했다. 그 덕에 나 또한 기분 좋게 작품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슬펐던 생애에 대해서도 아이가 알아듣기 쉽도록 말해주기도 했다.


“반고흐 아저씨는 마음의 병이 있어서 병원에 입원했었어. 소복이 네가 서있는 그 자리가 바로 병원 현관이야.. “

얼마만에 가발과 원피스와 구두의 조합이란 말인가...


  내가 항상 아픈 모습을 한 엄마여서 일까. 아이는 “왜 방구 아저씨가 병원에 갔는지, 왜 아픈 건지 “ 같은 질문을 어림 잡아 족히 열 번은 던졌다. 반고흐 그림에 색칠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다른 그림들도 많은데 반고흐 자화상 그림만 가지고 와 색칠을 하며 아이가 말했다. “나 방구 아저씨 알록달록하게 색칠해 줄 거야. 그럼 좋아하겠지? “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소복이는 카시트에서 잠이 들었다. 낮잠을 자고 나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남편이 용가리 치킨 너겟도 몇 개 구웠는데 포크로 하나를 콕 집어 한입 먹더니 “아 행복해.”를 외친 아이. 우린 그 순간 웃음이 빵 터졌고 너 지금 뭐가 그리 행복하냐고 물으니 용가리 치킨 너겟을 가리키며 “이거”라고 한다.



  행복이란 것이 정말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여전히 헷갈린다. 나이가 들수록 행복보다 고난의 비율이 더 많은 것 같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20대 시절의 행복 비율이 높았던 것도 아니다. 행복이 다가오는 찰나에도 행복을 빼앗길까 봐 알 수 없는 불안에 휩싸이며 두렵기도 했으니까.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사는데 늘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그 행복이란 게 과연 무엇일까. 늘 묻는 것 같다.






  우린 결과에만 치중한다. 어느 지역에 사는지, 차는 무얼 끌고 다니는지, 몸무게는 몇 킬로그램인지, 직업은 무엇인지, 무슨 브랜드를 걸치는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전부 돈과 연결된 결과물이다. 목표 지향적인 삶과 부의 축적은 삶의 질과 연관되어 있으므로 중요치 않다고 볼 수는 없지만 행복이 물질로 평가받는 게 진짜 행복이라 치부할 수 없다.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자들이 마약을 하고 더 가지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 것을 매체를 통해 종종 보다 보면 아이러니하니까. 그런 우리는 늘 가보지 못한 저 먼 타국처럼 그들의 삶을 쫓아가기 바쁜 것도 아이러니하니까.



  수술을 마치고 살았다는 안도감에 숨을 쉬었을 때, 내가 3년째 느리고 뒤쳐진 삶을 살고 있는 이 상황이 행복했다. 이 또한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며 펑펑 울면서 병원으로 내가 먹을 음식을 손수 해온 남편, 자린고비인 줄로만 알았는데 생활비에 보태 쓰라고 돈을 쥐어주고 흑염소를 사방팔방으로 알아본 친정 아빠, 긴 입원으로 간병인이 필요해 처음으로 친정 엄마랑 2주간 단둘이 함께한 병원 생활에서 떨던 수다들, 그 사이에 시엄마가 일을 제쳐두고 소복이를 돌본 사랑. 이 모든 것들에서 복을 누린다. 3년 동안 무수히 스친 감정들을 모으고 비우면서 진짜 행복을 내 나름 정의할 수 있었다. 행복은 용가리치킨 너겟 같은 거라는 걸.



  행복이 오면 그저 그 순간이 단 3초밖에 되지 않을지라도 온전히 느끼면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행복이 왔을 때 불안하다는 건 꽉 쥐고 놓아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 행복이 영원하길 염원하는 마음. 한 글자 차이지만 너무 큰 바람이다. 행복은 고운 모래알이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과 같다. 그러니 빛이 나는 행복한 그 순간 두려워하지 않고 그저 흡수하면 될 일. 어느 모양이던 각자만의 삶에 역경은 찾아온다. 그 어떤 역경이 계속해서 온다 해도 진짜 행복을 흡수한다면 그 역경을 받아들일 용기는 점점 더 커지지 않을까.



  행복과 불안 균형대에 오를 때면 세차게 흔들려 떨어질 때도 있다. 불안의 크기가 행복을 잡아먹을 때도 있다. 그러나 지금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을 느낄 줄 알기에 누구나 한 번은 맞이한다는 죽음 앞에서 나는 이때를 추억하며 웃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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