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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Jul 15. 2022

그대 잘가라

 요절가수. 인생과 노래

  


  얼마 전 갑자기 어떤 노래가 떠올랐는데 노래 제목도, 가수도, 가사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요즘 자주 그런다. 그 뭔지는 알겠는데 표현할 수 없을 때의 무력감이란 너무 가혹하다. 


  하는 수 없이 수수께끼 찾듯 이런저런 것들로 검색해 봤지만 막연했다. 처음에는 ‘아련한 노래’로 검색했는데 나오지 않았다. 슬픈? 보고 싶은? 계속했지만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뭔가 스치듯 떠올랐다. 그것으로 검색을 했더니 마침내 나왔다. 검색어는 바로 ‘요절(夭折)가수’였다. 거기서 가수 ‘유재하’를 알아냈고, 듣고 싶었던 노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를 들을 수 있었다.

붙들 수 없는 꿈의 조각들은 하나 둘 사라져 가고
쳇바퀴 돌 듯 끝이 없는 방황에
오늘도 매달려가네
거짓인 줄 알면서도 겉으론 감추며
한숨 섞인 말 한 마디에 나만의 진실 담겨 있는 듯

이제와 뒤늦게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그만인 것을
못 그린 내 빈 곳 무엇으로 채워지려나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려가리(후렴구)


  유재하의 노래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은 대부분 ‘사랑하기 때문에’라고 말하지만 내 개인적 감성은 이 노래에 더 끌린다. 내 심연의 바다를 대신 불러주는 아련한 친구 같다.


  특히,‘거짓인 줄 알면서도 겉으론 감추며 한숨 섞인 말 한 마디에 나만의 진실 담겨 있는 듯’이라는 표현이 무척 마음에 와닿았다. 조직에서, 회사에서, 사회에서 내가 살아가는 모습 같았다.


  기계 안에서, 쓰다 고장 나면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는 절박함에 몸서리치면서 살아남으려 안간힘을 쓰는 조그마한 부속품.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말하는 ‘노동의 인간소외’는 얼마나 탁월한 표현인가!


  ‘요절 가수’ 검색어에는 의외로 내가 몰랐던 분도 많이 있었다. 연배가 나보다 훨씬 많으신 분들이 눈에 띄었다.


  윤심덕 - 시의 찬미(1926년 27세 사망)

  차중락 –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1968년 29세 사망)

  배호   – 0시의 이별(1971년 29세 사망)

  하수영 –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1982년 34세 사망)

  김정호 – 하얀 나비(1985년 33세 사망)


  그다음에 나오는 가수가 ‘유재하’였다. 그는 1987년 26세로 사망했다. 그를 기리고자, 1989년 ‘유재하 음악 장학재단’(유족이 설립)이 재능 있는 신인 음악인들을 발굴하기 위해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를 만들었다.  




  이후부터 나오는 요절 가수들은 나에게도 친숙했던 분들이다.


  김인순 – 여고졸업반(1988년 35세 사망)

  최병걸 – 난 정말 몰랐었네(1988년 38세 사망)

  김현식 – 내사랑 내곁에(1990년 30세 사망)

  장덕 & 장현 –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 & 꼬마인형(1990년에 각각 28세, 35세 사망)

  김재기(부활) - 사랑할수록(1993년 25세 사망)

  김성재(듀스) - 여름 안에서(1995년 23세 사망)

  서지원 – 내 눈물 모아(1996년 20세 사망)

  김광석 – 그녀가 처음 울던 날(1996년 32세 사망)

  이원진 – 시작하는 연인들을 위해(1997년 25세 사망)  


  * 요절가수들은 저자와 많은 연배 차이가 있는 분들이라 생략함.


  최근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주인공 조정석이 불렀던 ‘내 눈물 모아’를 들으면서 내 기억 저편에 묻혀 있었던 가수 ‘서지원’을 불러일으켜 세웠다. 솔직히 노래는 조정석이 원곡보다 더 잘 불렀다고 느껴졌다(지극히 주관적인 관점).



  그러나 서지원의 목소리가 갑자기 듣고 싶어 져서 바로 원곡을 들었다. 자신의 앞날을 예고하는 듯한 그의 목소리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너무 예민하고 연약해 보이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나를 떠올렸다.


창밖으로 하나둘씩
불빛이 꺼질 때쯤이면
하늘에 편지를 써
날 떠나 다른 사람에게 갔던
너를 잊을 수 없으니
내 눈물 모아서 하늘에

- ‘내 눈물 모아’ 중에서 -




  뭐니 뭐니 해도 요절한 가수들 중 사회적으로 가장 큰 충격을 주었던 사람은 「가객 김광석」 이었다.

그 죽음에 대한 여러 가지 음모론들이 여전한 데다 아직까지도 그의 노래가 많은 팬들에게 들려지고 불려지며 많은 후배 가수들이 그의 노래를 리메이크하는, 호소력 있는 목소리의 그 사람.


  여기서 그의 죽음에 관련한 얘기는 꺼내고 싶지 않다. 그저 그의 노래, 그의 노래 부르는 모습, 우수에 찬 그 얼굴, 노영심의 파리(곤충) 이야기를 멋쩍게 하던 그의 쓴웃음에 대해 말하고 싶을 뿐이다.


  내가 처음으로 들었던 그의 노래는 무엇일까? 정말 많이, 자주 들어서 어느 것인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다. 노래 발표 시기로 보자면 ‘사랑했지만’ 일 것도 같지만 ‘거리에서’ 일지도 모르겠다. 좋다, 확실히 알 수 없다고 치자. 그러면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무엇일까? 단언컨대 그건 더더욱 알 수 없다. 그의 수많은 주옥같은 노래들은 그 자체로 인생이다. 오죽하면 그를 ‘노래하는 철학자’라고 칭했을까.


  10대일 때는 ‘사랑했지만’과 ‘사랑이라는 이유로’, ‘거리에서’ 등을 많이 듣고 불렀던 것 같다. 사춘기와 첫사랑의 고민, 외로움, 그리움, 서글픔으로 김광석의 노래를 들었던 것 같다.


때론 눈물도 흐르겠지 그리움으로
때론 가슴도 저리겠지 외로움으로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그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뿐 다가설 수 없어
지친 그대 곁에 머물고 싶지만 떠날 수밖에
그대를 사랑했지만

   - ‘사랑했지만’ 중에서 -



  그러다가 대학 가고 C.C.(캠퍼스 커플)이 되면서 진정한 연애를 했다. 곧 군대를 가야 하기 때문일까, ‘이등병의 편지’,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등을 노래방에서 많이 불렀던 것 같다. 정말 지극정성이었던 그 여자 친구는 상병 휴가 때 갑자기 돌변하면서 우린 헤어졌다. 솔직히 지금도 왜 그런 결과가 초래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휴가 후 그 당시 정황과 심정을 적었던 노트를 얼마 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조금 보다가 덮었다.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한가 보다.


짧게 잘린 내 머리가 처음에는 우습다가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굳어진다 마음까지
뒷동산에 올라서면 우리 마을 보일런지
나팔소리 고요하게 밤하늘에 퍼지면
이등병에 편지 한장 고이 접어 보내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 ‘이등병의 편지’ 중에서 -


  제대하고 한동안은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많이 들었다. 그녀를 이해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지나간 시간은 추억 속에
묻히면 그만인 것을
나는 왜 이렇게 긴, 긴 밤을
또 잊지 못해 새울까
창 틈에 기다리던 새벽이 오면
어제 보다 커진 내 방 안에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중에서 -



  20대 후반에는 사회라는 거대한 조각에 맞는 부속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각종 부조리를 받아들이고 웃어넘길 수 있는 위트와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다가 서른이 되었다.


  집에서도 막내, 회사에서도 신입직원, 언제나 어리고 잘 몰라도 되었던 나였는데 갑자기 서른이라니. 덜컥 겁이 났다. 나보다 어린 직원들이 회사에 들어오고 동기가 승진을 한다고 하는데 나는 과연 잘하고 있는 걸까?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런 고민을 하며 그때까지 하던 그 일(?)을 계속해야 할지 심각한 갈등의 시간을 보냈다.


  당시 난 다니던 회사에 전념하지 못하고 다른 곳을 꿈꾸고 있었다. 원하는 대학도, 직장도 갖지 못했지만 새로운 희망을 품고 지금까지의 모든 헛발질을 보상받을 수 있을 나의 마지막 카드를 준비하고 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틈틈이 공부를 했다. 그래서 소위 회사의 좋은 부서가 아니라 시간이 많이 생기는 부서만 겉돌고 있었는데 서른이 되면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무슨 신세타령하듯 기회만 있으면 ‘서른 즈음에’(2007년, 음악 평론가들로부터 최고의 노랫말로 선정되었음)를 불러댔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 ‘서른 즈음에’ 중에서 -




  계속된 좌절에 결국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배운 건 도둑 질 뿐이라, 다른 회사 시험을 또 준비했다. 지난 십여 년을 공부했지만 여전히 공부는 어렵고 힘들었다. 더군다나 안정된 생활에 젖어 있던 사람이 갑자기 미래에 대한 불안을 온몸으로 느끼며 무언가를 준비한다는 것은 쉬운 게 아니었다.


  다행히 이번 시험은 결과가 좋았다. 그해 시험에 붙었고 다시 직장을 다니게 되었다. 원하는 바를 모두 얻지는 못했지만 이 만큼이라도 내게 허락된 은혜에 감사하였다. 이듬해에는 아내와 결혼도 했다. 하늘에 계신 분의 그 큰 그림은 지금 내가 가는 길로 인도하려는 계획이었을까?(불현듯 이게 생각난다. 영화 ‘기생충’에서, 송강호가 아들에게 한 말 “넌 다 계획이 있었구나.”)


 결혼을 하면서 부부가 되고 아이가 태어나 가족이 늘어났다. 딸아이가 커가면서 어린이집에 가고 이젠 비록 초등학교지만 학교도 간다. 가족끼리 여행도 제법 다녔고 요즘은 아이의 교육을 위해 이사를 가야 하나 고민도 하고 있다.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주던 때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로 시작되는 김광석의 노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는 나에겐 현재 진행형이다. 다행히 아직은 노래의 초입에 해당되지만 어차피 신께서 허락하신 인생이란 게 누구에게나 공평해서 결국은 노래 마지막까지 갈 것이다.


세월이 흘러감에 흰머리가 늘어가네
모두 다 떠난다고 여보 내손을 꼭 잡았소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 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중에서 -


  노래의 마지막인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 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를 내가 차마 하고 싶지 않기에 농담 삼아 이렇게 말하면 아내는 진담 삼아 응수한다.


  “내가 먼저 하늘나라에 갈 테니 잘 살아”

  “무슨 소리, 내가 먼저 갈 테니까 새로 장가갈 수 있어서 좋겠네.”


  누가 뒤에 남아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남은 사람은 많이 힘들지 않을까. 어쩌면 나의 착각일 수도 있다. 화장실 가서 혼자 웃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박찬욱 감독의 2000년작인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OST로도 사용되었던 김광석의 노래 ‘부치지 않은 편지’는 영화로 인해 인지도가 크게 올라갔다고 한다.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은 피긴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강 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가라

   - ‘부치지 않은 편지’ 중에서 -


  특히 후반부에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않았던 병사들의 우정이 비극으로 끝나고, 이어지는 남․북한군의 총격전 장면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올 때는 한국인으로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느껴진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당시 서울역의 분향소에서 추모곡으로도 사용되었다.


  '정호승'의 에세이집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에서 작가는 이 노래를 두고 이렇게 쓰고 있다.


김광석의 노래는 이제 시대를 초월한 영원성을 지닌다. 인간의 삶이 비록 본질적으로 비극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그것을 아름다운 진실의 서정성을 바탕으로 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글을 쓰다 보니 노래는 인생과 동행하는 것이고, 노래 제목에 아예 삶의 나이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0대 - 낭랑 18세(1949년, 백난아)

  20대 - 스물다섯, 스물하나(2013년, 자우림)

  30대 - 서른 즈음에(2014년, 김광석)

  40대 - 내 나이 마흔 살에는(1995년, 양희은)

  50대 - 내 나이 50이라니(2018년, 전은영)

  60대 -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2006년, 김광석)

  전 세대 - 내 나이가 어때서(2012년, 오승근)


  특히, ‘내 나이가 어때서’는, 1960년대쯤 가수 ‘윤복희’가 미니스커트를 국내에 소개하면서 핵폭탄 급 충격을 일으켰던 사건만큼이나, 중년 이상의 국민들 마음에 불을 지폈다. 이 불길은 중년 세대에서 전 세대로 퍼져 굳이 이 노래가 아니더라도 각자의 나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생활방식을 자신 있게 추구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고 평가한다.

 

  비록 가수는 떠났지만, 그들이 남긴 노래들은 세월을 넘어 대중의 마음속에 꾸준히 울려 퍼지고 있다. 그들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이 사람들의 맘속에 여전히 큰 상실감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노래는 아직도 여전히 우리 추억에 남아 듣고 부르며 리메이크되면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그대들이여, 잘 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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