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스모킹(about smoking)

담배. 가족. 행복.

by 태현

난 비흡연자이다. 요즘 세상에 흡연자는 ‘기피자’(忌避者) 라고 해야 할까. 이렇게 말하면 흡연자들께서는 무척이나 분개하실 것이고 나 역시 충분히 공감한다. 흡연을 꺼리는 권리가 있다면 흡연을 원하는 권리 또한 헌법상 ‘행복추구권’으로 보장된다.


다만 우리 헌법재판소가 전자를 더 중한 권리라고 판단했기에 후자는 ‘꿔다 논 보리자루’ 마냥 음습하고 어둡고 좁은 구역으로 밀려나 버렸다.

내가 막 입사한 때(약 20여 년 전)만 해도 직장 막내로서 아침에 출근하면 재떨이 비우는 것부터 업무를 시작했고, 상급자들의 담화는 언제나 담배와 동행이었다. 관리자의 담배 성향을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었다.


그러다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아주 작은 것부터였을 것이다. 우리나라 폐암 발생률이 비교 국가에 비해 너무 높고, 담배 연기가 태아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실내에서는 흡연을 삼가기로 캠페인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그래도 처음에는 그리 쉽게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몰래 사무실에서, 베란다에서, 화장실에서 담배연기가 올라왔다.


그러나 세월에 장사 없다고 실내에서 밀려난 흡연자는 이젠 실외에서도 점점 설 곳을 잃고 있다. 공원, 버스정류장, 기타 다중이 이용하는 장소는 실외라도 흡연이 불가하고 위반 시 과태료 대상이다. 영화나 TV에서도 흡연 장면은 나오지 않게 되었고, 규정상이지만 성인이 아니면 담배를 살 수 없다.


내가 비흡연자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담배를 전혀 피우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일생 동안 세 번 정도 피었을까? 그 첫 번째 흡연 경험은 다섯, 여섯 살 때로 많이(?)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나도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형들에게 얘기해도 황당하다는 표정만 지을 뿐 전혀 몰랐다고 한다.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었으며 그날 일을 기억할 만한 인물은 오직 4명뿐이다.


그 한 사람이자 주인공은 당연히 “나”다. 모든 것을 설계했고 추진했고 그 대가를 혹독히 치루어야 했던 불운한 캐릭터이다.


또 다른 인물은 얼굴은 기억나지 않고 이름만 가물가물한, 나와 같이 이 사건을 실행한 "친구".


다음은 이 사건이 파국으로 치닫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당시 우리 집 상황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우리 집 앞 “슈퍼마켓 주인아줌마”.


끝으로 ‘마지막은 항상 조용필’이라는 말이 있듯이, 최종 보스로 등장하여 모든 사건을 해결하고 종결시키는, 내 기억 속에 마치 문신을 새기듯 깊게 박혀 있는 최고의 ‘빌런’이었던 우리 “엄마”.


자, 등장인물이 모두 소개되었으니 이제 사건을 살펴보기로 하자.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에 막내 삼촌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그때 막내 삼촌은 나에게 ‘판도라의 상자’를 건네셨다. 물론 본인은 그 파급효과를 예측 못했겠지만...


아버지는 술은 좀 드셨지만 담배는 일절 피우지 않으셨다. 그래서 나는 그때까지 담배가 뭔지 잘 몰랐다. 그런 아버지와는 달리 막내 삼촌은 담배를 피웠다.


시골에서 담배 농사를 지으니 담배야말로 지천으로 널려 있는 공기와 같이 무감각한 물질이었고, 자연히 담배를 배웠을 것이다. 우리 집에 왔을 때도 엄마의 눈치를 피해 나를 놀이터로 데려가면서 담배 한 대를 피웠다. 난 그걸 보았고 호기심이 생겼다.


삼촌이 조그만 종이 주머니에서 ‘몽당연필’ 같은 뭔가를 꺼내서 성냥불을 붙였다. 매캐하지만 유혹적인 연기가 나는데 그걸 쭈욱 빨아 삼키다가 다시 후우 불면서 입 밖으로 내보냈다. 하얀 연기를 동그랗게 만들기도 하는 삼촌의 재주는 대단히 멋져 보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막내 삼촌은 그때 나에게 얼마의 용돈을 몰래 주었다. 최소한 200원 이상인 것은 확실하다. 왜냐고? 바로 담배 ‘청자’가 당시 200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다음 기억은 바로 사건의 실행이었고 철로가 끊긴 종착역을 향해 전속력으로 폭주하는 증기기관차처럼 들이닥쳤다. 나는 언제인지 모를 날에 집 근처에 하나뿐인 슈퍼마켓에 갔다.


“청자 담배 하나 주세요.”

“누가 사 오라고 했는데?”

“아빠가 사 오래요.”

“그래?......”


아줌마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돈을 받고 담배를 주셨다. 내 생각대로 착착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다음엔 친구와 우리 집 지하실(창고)에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컴컴했지만 전등을 켜지는 않았다. 스위치가 밖에 있었기 때문에 전등을 켜면 안에 사람이 있다고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난 성냥을 그었고, 미리 꺼내 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런데 담배가 삼촌이 한 것처럼 쉽게 불이 붙지 않았다. 종이로 되어 있는데 왜 타지 않을까? 고민 중에 삼촌이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던 게 생각났다. 나도 입에 물었는데 무슨 가루 같은 것이 입속으로 들어왔다. 쓴 가루를 뱉어내고 다시 자세히 보았다.


다른 쪽 끝은 뭔가 부드러운 게 있는 걸 보니 그쪽을 입에 넣는 것 같았다. 나는 방향을 바꿔 입에 물고 성냥을 그어 붙였다. 아까보다는 좀 타지만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러다가 본능적으로, 전생에 해 본 적이 있는 듯, 입에 물고 있는 것을 통해 공기를 쭈욱 빨아 당겼다.


순간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콜록콜록 기침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빛이 들어오면서 덜컹 지하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들이 왔다. 슈퍼 아줌마와 엄마가.


“보세요, 내 말이 맞죠? 얘가 글쎄...”

“설마 했는데 너 정말...”


아줌마는 처음부터 내 말을 믿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아버지가 비흡연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다섯 살 꼬마 아이가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하는 걸 보면서 범죄의 향기를 맡았으리라. 마치 셜록 홈스가 사건 의뢰인을 한 순간 보자마자 그가 언제, 어디서, 왜 왔는지 파악했던 것처럼.


나는 어두운 지하실에서 갖은 고문에 시달리면서 범죄사실을 자백해야 했다. 잔인한 고문 도구는 따로 필요 없었다. 그냥 지하실에서 엄마가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닥치는 대로 나에게 돌진했다.


옆에 있던 친구는 빈틈을 노려 솜씨 좋게 도망을 쳤고, 아줌마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자신의 일터인 슈퍼마켓으로 돌아갔다. 결국 나는 무릎 꿇고 두 손을 싹싹 빌면서 다시는 나쁜 짓 안 하겠다고 눈물 콧물 흘리며 목숨을 구걸해야 했다.


담배에 관한 한 무척이나 조숙한 나였기에, 허름한 공터에서 담배 꼬나물고 폼 잡는 동네 건달 형, 누나들을 보면 난 그냥 속으로 비웃었다. 내가 다섯 살 때 치렀던 그걸 이제야 하면서 자신이 마치 영화 <비트>의 주인공 ‘정우성’인 양 착각하는 같잖은 청춘들이 귀여워 보였다.




시간은 훌쩍 흘러, 내 인생 두 번째 흡연은 그로부터 한참 후인 이십 대 초반에 이루어졌다. 당시 나는 강원도 어느 사단 훈련소에서 신병교육으로 6주간 ‘뺑이를 치고’ 있었는데 마침 12월이라 옷을 겹겹이 껴입어도 너무 추웠다.


신병교육 5주 차쯤에 전투준비태세 훈련(비상대기 후 가상의 전장으로 출동하는 훈련)을 받게 되었다.


오전 6시가 되자 비상 사이렌이 울리고 조교가 막사 문을 박차고 들어와 고함을 치면서 군장을 싸라고 명령했다. 교육시간에 군장 싸는 연습을 하긴 했지만 교육은 교육이고 실전은 실전이었다. 누구에게 물어볼 새도 없이 다들 자신의 생존을 위해 바삐 움직일 뿐이었다.


그 와중에 난 갑자기 새벽 근무 때 추위에 떨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따뜻하게 입어야 한다고 ‘안전 세포’가 소리쳤다. 나는 각종 방한복을 챙겼다. 장갑, 귀마개, 목 마스크, 그중에서도 최고는 역시 ‘깔깔이’였다. 훈련 전날 조교는 행군할 때 깔깔이를 입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지만 무조건이라고 강조하지는 않았다.


다른 훈련병들은 다들 깔깔이를 군장에 넣는데 나는 몰래 입었다. 입자마자 따뜻함이 온몸을 감싸는데 든든한 호위무사를 대동하고 전쟁터에 나가는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그리곤 어리바리 닥치는 대로 군장에 때려 넣고 소총을 받아 연병장에 도열하였다.


옆에 훈련병들은 벌써부터 덜덜 떨고 있었지만 난 괜찮았다. 마음속으로 역시 깔깔이를 입고 오길 잘했다며 나의 현실 적응력을 칭찬했다.


처음에는 군장이 그리 부담되지 않았지만 눈길을 두어 시간 걷자 어깨가 뻐근해지고 옷이 땀으로 젖기 시작했다. 어디로, 얼마나 가는지도 모른 채 그저 앞사람 군홧발만 보며 걷다가 멈췄다가 하기를 몇 시간째였다.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프고 무엇보다도 발바닥에 물집이 생겨 걸을 때마다 쓰라려서 군화를 힘차게 내딛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목적지는 어느 전차부대였다. 여기서 점심을 먹었고 잠깐의 휴식과 따뜻한 햇볕을 취하러 밖으로 나왔다.


갑자기 한기가 몰려왔다. 깔깔이를 입고 행군했기에 내 상의는 속옷까지 다 젖어 있었는데 아까는 그나마 군장이 보호해 주었지만 이제는 차가운 겨울 광풍과 직접 만나 급속히 얼어붙고 있었다. 조교가 입고 가지 말라고 했던 이유를 그제야 깨달으며 내 어리석음을 저주해야만 했다.


너무 추웠던 나는 일부러 옆 훈련병에게 등을 의지했다. 그때 그에게서 빨갛게 달아 오른 담배의 따스함이 전해졌다. 그 구수한 담배 향은 또 어찌나 매혹적인지. 그날의 향기는 마치 ‘엑스타시’처럼 날 유혹했다.


순간 난 모든 자제력을 잃고 비굴하게 담배 한 개비를 빌렸다. 그리고 첫 키스를 하듯 촉촉이 필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여 조심스럽게 숨을 들이쉬었다. 이내 따뜻함이 내 목을 타고 온 몸으로 퍼져 들어왔다.


잠깐의 황홀경은 기뻤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불현듯 어렸을 때 읽었던 ‘한스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가 생각났다.


새해를 하루 앞둔 밤, 한 굶주린 성냥팔이 소녀가 추운 거리를 걷고 있다. 성냥을 팔지 못하면 집에 돌아갈 수도 없는 소녀는 꽁꽁 언 손을 녹이기 위해 성냥 한 개비를 긋는다. 그러자 빨갛게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온갖 환상이 소녀 앞에 나타난다. (중략)

추운 밤이 지나고 날이 밝자 소녀는 미소를 띤 채 죽어 있었다. 그러나 소녀가 어떤 아름다운 것을 보았는지, 얼마나 축복을 받으며 할머니와 함께 즐거운 새해를 맞이하였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지막 세 번째 흡연은 육칠 년 전쯤이었다. 그때 난 회사에서 능력에 버거운 업무로 하루하루가 힘겨웠고 무엇보다 ‘승진’이라는 목줄에 내 목이 걸려 있어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누구나 거쳐야 하는 그 시기지만 누구나처럼 서글펐다.


아빠의 퇴근을 기다리는 4살 딸이 저녁마다 영상통화로 구애하는데 아무리 목석(木石)이라도 가슴이 찢어지지 않겠는가. 주말에도 제대로 맘 편히 지내본 적이 없었다.


업무로 인해 불안, 초조, 걱정을 친구처럼 달고 살았다. 아무리 피곤하고 두통이 심해도 새벽 세 시나 네 시쯤 수시로 깨어서 잠을 설치곤 했다. 그렇게 충혈된 눈으로 겨우 출근하면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일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발버둥 칠수록 더 옭아매는 덫에 걸린 심정이었다. 가끔은 운전하면서 ‘일부러 차 사고를 내고 병원에 입원하면 매일 딸아이와 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날처럼 야근을 위해 회사 직원들과 저녁을 먹고 있었다. 다들 담배 피우러 나가는데 나만 남으니 어느 직원이 같이 나가자고 내 팔을 잡아끌었다. 그날따라 왜 그랬는지 나도 선뜻 따라나섰다. 그들이 담배 피우는데 갑자기 나도 한 대 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일탈을 하고 싶었는데, 고작 한다는 일탈이 흡연이라니. 아무튼 그 누구한테 담배 한 개비를 받아 불을 붙였다. 갑갑한 연기가 들어오는데 예전 담배 피웠던 두 번의 일이 생각나 혼자 웃었다. 왜 웃냐고 누가 물었는데 난 대답하지 않고 혼자 깔깔 더 크게 웃었다.


‘그래, 그때도 잘 버텨 왔는데. 더 힘들 때도 살아남았는데 고작 이런 걸로 힘들어해서는 안 되지.’


갑자기 딸아이가 보고 싶어졌다. 난 먼저 간다고 하면서 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왔다. 하필 그날따라 우리 딸은 일찍 꿈나라로 놀러 가버렸다. 평소에는 그렇게 잠이 안 온다고 하면서 피곤에 쩐 아빠를 끌고 와 책을 읽어 달라던 아이였는데......


난 갑자기 너무 서러워 울었다. 아내가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난 창피하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해서 답하지 않았다. 그냥 소리 내어 마냥 울었다. 난 왜 이리 무능할까. 이런 일도 하나 제대로 처리 못해서 아내에게 내 우는 모습을 들켜 버리는 걸까. 내 삶이 싫어졌다.




어느덧 지금은 그런 시간들을 지나 승진을 하고 팀장이 되어 직원들이 힘들게 만든 서류를 손쉽게 결재를 하고 산다. 그렇다면 지금은 살만한가.


아니다. 전혀 아니다. 또 다른 세상이, 미처 몰랐던 세상이 날 덮쳐 왔다. 몇 년 전 그날 밤, 그렇게 울면서 원했던 그 삶은 여전히 오지 않았다. 아니 앞으로도 영원히 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인생의 희로애락은 존재의 차원이 아니라 생각의 문제이었거늘, 어리석은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굳이 카르페디엠(Carpe diem,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을 말하지 않더라도, 파랑새는 결국 바로 우리 집에 있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깨달을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인가!

행복으로 가는 길은 일상의 사소한 기쁨과 낭만 속에 있는 그 무엇을 찾는 것이지 않을까? 무엇이 생겨서, 무엇을 이루어서가 아니라 무엇이 나에게 발생하지 않았음을 감사할 수 있다면 아무리 일상이 바쁘고 정신없더라도 행복한 삶은 얼마든지 지금도 가능하다. 논리적 비약 같지만 그래서 난 아직도 비흡연자로 살고 있다.


그러나 내게 네 번째 흡연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보다 더 어려운 일이 생겼다는 뜻이겠지. 그렇다고 힘든 상황이 올 때마다 담배를 찾는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그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나는 나만의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얼마 전부터 난 내 삶의 의미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직 전체적인 그림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 그림에는 가족, 친구, 동료, 그리고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곧 만나게 될 그 사람들도 함께 있을 것이다. 그들과 함께 할 내 삶이 기대된다. 그리고 잘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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