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막을 걷어라 나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더 보자 창문을 열어라 춤추는 산들바람을 한 번 또 느껴보자 가벼운 풀밭 위로 나를 걷게 해주세 봄과 새들의 소리 듣고 싶소 울고 웃고 싶소 내 마음을 만져줘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
- 한대수 작사, 작곡, 노래 -
* 광복 70주년을 맞아 평화와 자유 그리고 진정한 행복과 밝은 희망을 주기 위해 ‘1945 해방둥이 합창단’과 가수 이선희가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불러, 온 국민에게 기분 좋고 행복한 노래를 선물했다.
회춘(回春), 다시 젊어지다!
40대 중후 반인 나에게 이런 단어를 쓰는 게 가당키나 한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지인들로부터 듣고 있다. 그럼 얼마(젊어지기) 전에는 내 얼굴이 어땠다는 것일까?(칭찬이 아닐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회사 복도에서나 엘리베이터에서 오랜만에 보는 직원들이, 특히 연배가 나보다 높은 선배들이 주로 말씀을 하신다.
“아이, 왜 그러세요.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서 그렇게 보이나 봐요, 하하하.”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온갖 겸양을 떨면서 손사래를 치지만 맘속으로는 얼마나 자신감 뿜뿜인지 아무도 모를 거다. 늦장가를 간 것도, 늦둥이를 본 것도 아닌데 무슨 조화로 이런 호강을 누리게 되었을까? 나도 전생에 나라를 구하는데 일조를 했던 것일까? 이런 행복한 고민은 바로 30여 년간 썼던 안경을 눈에서 걷어낸 용기 덕분이었다.
내가 안경을 언제부터 썼을까?
부모님은 평생 안경을 쓰지 않으셨다. 그래서 유전적으로는 눈이 괜찮은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우선 중학교 졸업장을 보면 난 안경을 쓰지 않았다(아무 특징도 없는 멍한 얼굴). 고등학교 1학년 봄 소풍 사진에도 안경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찍은 사진에는 안경이 등장한다. 아마 고등학교 2학년쯤이 아닐까 추측한다.
그와 관련한 웃픈 기억 하나가 내 머릿속에 있다. 고등학교 2학년 중간고사(?)를 망치고 기분도 울적해하고 있던 차에,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그 주 토요일 수업 끝나고 같은 반 친구 집에서 야구중계를 같이 보기로 했다. 우리는 서로 응원하는 팀이 달랐지만 공교롭게도 그날은 그 두 팀이 맞붙어 경기를 했었다.
친구네 TV는 제법 화면이 컸기에 현장에 있는 듯했고, 둘은 소파에 나란히 않아 야구중계 아나운서와 해설가 역할을 하면서 이런저런 만담(漫談)을 이어갔다.
초반은 팽팽하게 진행되었다. 투수전이 되면서 긴장감이 흘렀다. 그러다 중반에 친구가 응원하는 팀이 기세를 올려 치고 나갔다. 상한 맘이 겉으로 표현되면 더 속상할 것 같아 무덤덤하게 텔레비전 화면만 웅크리고 바라보았다.
다년간의 경험상 ‘공은 둥글고 기회는 반드시 온다’라는 믿음으로 나는 차분히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나 7회나 8회쯤 되었을까, 상대팀 중간 계투의 실수로 점수가 나기 시작했고 마침내 역전 주자가 주루에 나가 있는 상태에서 우리 팀의 4번 타자가 나왔다.
마음속으로 간절히 한 방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거짓말처럼 정말 홈런이 나왔다. 나는 기뻐 미친 듯이 날뛰었다. 친구는 화가 나는지 시끄럽다고 그만 앉으라고 소리쳤지만 나는 안들리는 척하고 계속 환호했다.
그렇게 홈런 친 선수처럼 거실을 빙빙 돌며 환호하고 있는데 갑자기 정전기 같은 뭔가가 내 뇌의 후두엽을 강타하면서 머리털을 바짝 곤두서게 만들었다. 내가 뛰어다녔던 흔적 속에서 뭔가 잘못된 것이 있음을 직감했다. 싸늘한 느낌이 저며 오는 것을 느끼면서 확인해 보니 역시나 방석 밑에 있는 내 뿔테 안경이 오지게 밟혀 안경다리가 두 동강이 나 있었다.
근데 니가,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사랑을 믿었었는데 발등을 찍혔네. 그래 너, 그래 너야 너.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정말 묻고 싶었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왜 안경을 벗고 있었는지, 안경은 왜 하필 그 방석 밑에 들어가 있었는지 미스터리할 뿐이다. 야구 경기도 결국 졌다. 불을 꺼야 할 우리 팀 마무리 투수가 오히려 불에 기름을 끼얹어 버리고 내려왔다.
그날은 정말 최악의 날이었다. 중간고사도 망쳐서 걱정이 태산인데 무슨 청승이 뻗쳐서 평소에 그렇게 친하지도 않던 친구와 노느라고 공부할 시간만 허비했다.
무엇보다도 곤란한 건 부러진 안경 대신 새 안경을 사 달라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가정형편이 여유롭지 않기도 했지만 부러진 이유를 사실대로 말했다간 내 다리가 진짜 부러질 거라 생각했다.
집에 오는 버스에서 안경을 끼지 않아 잘 보이지도 않은 창밖을 바라보며 착잡한 마음을 달랬다. 그리곤 그날은 아무도 모르게 그냥 넘겼다.
문제는 다음날(일요일)이었다. 월요일 등교해서 혹시라도 ‘칠판이 안 보여 공부를 제대로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 하고 노심초사했으나 안경 사달라는 말은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시간은 계속 흘렀고 어느덧 날도 저물었다. 내 마음만큼이나 어두운 밤이 내려오면서 이제는 답답함에 숨이 막혀 왔다. 내일 학교를 가지 말까? 그러다가 문득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 당시 내 안경은 검은색 뿔테 안경이었다. 혹시 접착제로 붙이면 되지 않을까? 다행히 예전에 쓰던 접착제가 남아 있었다. 세상에나 어쩜 이렇게 잘 붙는지, 비록 자세히 보면 접착제로 붙인 표시가 나서 창피했지만 그 상황에서 이런 생각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렇게 나는 살아났다. 세상은 아직 나를 필요로 했나 보다.
안경은 여러모로 불편하다.
인간은 눈을 통한 시각으로 정보의 80%를 습득한다. 그런 감각기관인 눈이 내 몸이 아닌 인공적인 물체에 의지한다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럽다
땀이 나면 콧등에서 흘러내리기에 연신 치켜올려 세워야 했고, 기온이나 습기에도 취약해서 갑자기 한증막 같은 곳에 들어가면 안경에 습기가 차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출처: 카페 '주식회사 한국인-생활'
향기로운 차를 앞에 두고 그 향을 맡고자 찻잔을 가까이 가져다 대어도 안경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특히나 겨울은 ‘안경잡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추운 곳에 머물다 조금만 따뜻한 데 가더라도 안경은 금세 ‘안대’로 변했다.
안경은 수영 같은 운동을 하는데도 장애물이었다. 물속에서야 수경(水鏡)을 쓴다지만 물 밖 세상은 어떻게 식별해야 하는가(난시가 심하면 안경을 벗었을 때 두통까지 동반한다). 유명 물놀이장에 가서도 안경을 손에 들고 다녀야 하는 현실은 즐거운 피크닉 기분을 반감시켰다.
몇 년 전 가족여행으로 ‘괌’을 간 적이 있었다. 호텔 앞 잔잔한 해변을 멋지게 수영하는(비록 오리발을 착용했지만) 버킷리스트 하나를 완성했지만 수영 중 안경을 잃어버려 집에 올 때까지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군대 생활에서 안경은 정말 ‘쥐약’이었다. 안경은 교육이나 훈련 중에 반드시 써야 하는 철 모를 철저히 증오했다. 사격을 할 때에도 총탄의 반동에 의한 반작용으로 총의 가늠쇠와 안경은 자주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최악은 화생방 교육이었다.
화생방 교육은 적의 생화학전에 대비하기 위해 실제 생화학가스와는 비교도 안 되게 순화시킨(?) CS탄이라는 가스를 재료로 사방이 꽉 막힌 실습실에서 진행되었다. 미리 방독면을 쓰고 대기하고 있다가 차례가 되면 가스 실습실로 들어간다.
제대로 오열(伍列)을 맞춘 상태에서 조교의 지시에 따라 방독면의 정화통을 제거하면 그때부터 진짜 죽음의 맛을 보게 되었다. 가스에 조금이라도 노출되는 순간 방독면 안은 눈물, 콧물, 구토로 올려진 침 등 각종 액체들로 범벅이 되고, 호흡곤란과 복통으로 몸부림을 치고 있는데 조교는 그 특유의 억양 하나 바꾸지 않고 군가까지 부르라고 명령한다.
마치 시간이 멈춰진 듯, 순간 또 순간이 영원같이 느껴지면서 내면 한 곳에서는 차라리 죽여 달라고 눈물로 호소하게 된다.
여기에 안경잡이들은 한 가지 더 고통을 겪었다. 방독면을 쓰려면 안경을 벗어야 하는데, 가스실로 들어가기 전부터 내 시야에 들어오는 세상은 탁한 플라스틱 덮개로 인해 괴기스럽게 변해 있었다. 그리곤 깜깜한, 통제된 가스실로 끌려 들어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흑암의 공포까지 엄습해 왔다. 이때쯤 되면 내 몸에서 생명의 징후는 거의 찾을 수 없다. 그런 죽음 같은 체험을 세 번이나 한 후에야 난 무사히 제대할 수 있었다.
안경을 쓰면 멋 내기도 쉽지 않다.
내 얼굴은 별 특징 없는 그저 그런 모습인 데다 왜소해 보인다. 누구처럼 숯덩이 눈썹도 아니고 쌍꺼풀도 하나 없다. 눈은 작은 데다가 눈꼬리도 아래로 처져 관상학적으로도 좋지 않다. 이런 내가 오목렌즈를 끼운 근시 안경을 쓰니 눈이 더 작게 보이게 된다.
게다가 하필이면 인생 첫 안경테가 손바닥만 한 검은색 뿔테 안경이었으니, 내 얼굴은 흡사 어릴 적 재미있게 보았던 만화 <영심이>의 꺼벙하고 약간 멍청해 보이는 ‘왕경태’처럼 보였을 것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특히나 나는 선글라스를 진심으로 좋아한다. 선글라스를 볼 때마다 언제나 떠오르는 영상이 하나 있는데, 내게 선글라스의 환상을 심어준 영화 <탑건>이었다.
톰 크루즈가 주연(매버릭 대위 역)을 맡은 영화로, 그가 선글라스를 쓰고 해안도로와 비행장을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모습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멋있었다. 그 장면은 블랙홀처럼 나를 빨아들여 마치 그 속의 한 장면이 되어 있는 듯한 감각을 느끼게 해 준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것도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시력이 안 좋아 안경을 쓴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같은 종류인 선글라스를 사용하는 데 많은 장애를 초래했다. 선글라스는 일반 안경보다 렌즈가 더 큰데 이에 시력을 반영한 도수(度數) 있는 두꺼운 렌즈를 사용하면 너무 무거워져서 자꾸 흘러내렸다. 가격이 훨씬 비싸지는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시력이 자꾸 변하는데 거기에 맞는 선글라스 렌즈를 그때마다 바꾼다는 것은 배보다 배꼽이 더 커졌다. 지금도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는 도수 있는 여러 선글라스들은 비록 잡을 수 없지만 뻗은 손을 접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의 결정체들이었다.
안경은 모자(帽子)와도 그리 어울리지 못한다. 일반적인 캡 모자의 앞부분에 달린 챙과 안경테는 얼굴의 이마에서 귀까지를 둘러싼 일정 영역을 서로 차지하고자 치열하게 다툰다. 멋지게 모자를 쓰려면 안경이 눌려 콧잔등이 아프고 안경을 편히 쓰려면 모자가 볼품없이 걸쳐진다. 당연히 안경 없이 모자를 쓰는 모습보다 못나 보였다. 그래서 난 모자를 좋아할 수 없었다.
그렇게 30여 년의 인생 동안 안경을 썼다. 여러 가지로 불편하고 지루했지만 그냥 받아들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숙명으로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그러다 중차대한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놈을 벗어보자. 나도 새 삶을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