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언젠가는

선생님, 학창 시절, 진리

by 태현

요즘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는 드라마가 대세다.

드라마는 물론 그 OST, ‘슬기로운 ~’ 시리즈에 각종 패러디까지 계속 나오고 있다. 몇 년 전에는 ‘응답하라 ○○○○’ 시리즈가 동시대를 살았던 국민들의 말라버린 감성을 자극했었는데 ‘슬생’(‘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준말)은 새로운 트렌드로 사람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 주었다.


사실 난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좋다고 하면 괜스레 꺼려하는 좋지 못한 성격이 있다. 영화, 드라마, 노래, 연예인, 액세서리 등 장르나 가격과도 상관없다. 딱히 뭐라고 그 이유를 내놓기는 쉽지 않다. 그냥 싫다. 대충 떠오르는 걸 말하자면, 도매 값으로 같이 팔려 가는 것 같아 싫고, 나는 그렇게 쉬운 사람이 아니라고 보여주고 싶은 성깔이 있는 듯하다.


그러함에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슬생을 나 또한 좋아하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슬생이 연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인터넷 가십에도 떠올라, 어느 날 큰맘 먹고 1편을 보게 되었다. 잠깐 보다가 어느 장면에서 그만 포기하였다. 생명의 고귀함과 삶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한 것이지만 눈물로 얼룩진 장면을 극복할 수 없었다. 난 눈물이 싫다. 원래도 싫은데 그것을 찾아서까지 보는 건 더더욱 싫었다. 그렇게 슬생은 나와 인연이 끝나는가 싶었다.


얼마의 시일이 지나고 운전 중에 라디오에서 우연히 어떤 노래를 들었는데 제법 좋았고 여운이 계속 남았다. 원곡은 아닌 것 같고 누가 리메이크한 것일까 궁금했는데 그 노래가 슬생 OST에 수록된 곡이란다. 더욱 관심을 가지게 한건 드라마에서 배우들이 밴드를 만들어 불렀다는 것이다. 갑자기 궁금증이 폭발했다.


집에 와서 슬생에 대해 속성(速成)으로 알아보았다. 뉴스 검색을 하고 유튜브로 드라마 리뷰도 보았다. 내 관심분야는 단연 OST였는데 시즌1, 2가 있었고 많은 노래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그때부터 출․퇴근 시간은 물론이고 가족과 쇼핑이나 여행을 갈 때에도 늘 내차에선 슬생 노래가 흘러나왔다. 어느 곡 하나 빠지지 않고 모두 내 감생(甘生)을 불러일으켰다.

처음에는 미도와 파라솔이 직접 부른 곡이 많은 <시즌2>를 주로 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시즌1> 노래도 조금씩 듣게 되었다. <시즌1> 노래들은 듣다 말다 하느라 어떤 노래가 있는지 다 알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누군가를 떠오르게 하는 노래가 나오는데 마음이 무거워졌다. 큰 바위에 내 몸을 칭칭 묶어 깊고 깊은 물속 바닥으로 가라앉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 노래는 바로 ‘사노라면’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난 반장을 했고 공부도 제법 했다. .담임 선생님은 미혼에 젊은 여성분이었다. 솔직히 대단한 미인은 아니셨지만 올곧음과 강직함이 언행에서 묻어 나와서인지 나는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수업 진행이나 학급 운영 면에서도 학생들에게 자율을 허락하셨고 반장인 내게도 사제관계이지만 ‘동반자’(同伴者)와 같은 인격적 대우를 해주셨다.


점점 더워지는 6월쯤의 어느 날, 선생님은 수업이 끝나고 나를 따로 부르셨다. 내게 선물로 책받침을 하나 주셨는데, 앞면에는 노란색 바탕의 어떤 그림과 글이 적혀 있었고 뒷면에는 모눈종이처럼 선이 그어져 있었다.


당시 유행하던 책받침. '소피마르소'는 여신이었다!

선생님은 책받침을 주시면서 나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 주셨다. 그러나 어린 마음에, 그런 얘기를 듣는 내가 초라하다고 느껴졌다.


사실 선생님도 나 때문에 알게 모르게 힘들었을 것이다. 반장이면 학급을 위해 여러 가지 지원도 하고 학교 행사에도 부모가 적극 참여해야 하는데 우리 집 사정상 전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니 선생님도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그럼에도 나에겐 그런 내색을 한 번도 하지 않으셨다.


책받침에 적힌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그 당시 난 그게 ‘노래 가사’인 줄 몰랐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정말 웃기지도 않았다. ‘뭐가 젊다는 게 한 밑천인가. 가슴을 쫙 펴면 세상이 달라지나. 내일 해가 뜬다고 내 생활이 바뀔까?’ 허무맹랑한 소리였다. 세상의 고통을 잊기 위해 마약을 찾으라는 식이었다.


2절은 더 가관이다.‘비가 새는 작은 방에 새우잠을 잔대도, 고운님 함께라면 즐거웁지 않더냐~.’고운님이 진짜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사람과 함께라면 정말 비가 내는 곳에서 새우잠을 자도 즐거워할까?


3절은‘한숨이랑 쉬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이제는 숨도 마음껏 쉬지 말고 그냥 시키는 대로 즐거운 마음으로 지내라고 강요한다. ‘왜! 나는 한숨도 쉬면 안 되냐, 밑바닥 인생은 숨마저도 눈치 보며 살아야 하는가!’ 꼬일 대로 배배 꼬인 내 마음은 세상을 향해 괜한 화풀이를 끊임없이 내뱉었다.


선생님이 특별히 나를 생각해서 사 오신 책받침이라 감사하다고 말은 했지만 그리 감사하지 않았다. 오히려 책받침을 주신 선생님의 마음을 잘 알기에 서글펐다.


선생님은 그해 결혼하셨고 신혼생활 집을 학교랑 가까운 곳에 마련하셨는데 마침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와도 가까워 나는 가끔 선생님 댁에 찾아갔다.


세상이 내 맘처럼 움직여 주지 않고, 내 부족함으로 발생하는 내적 갈등으로 힘들 때면 선생님을 떠올렸다. 거의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상대의 마음을 다 빨아들일 것 같은 공허한 눈매가 난 무척 편했고, 내가 말하지 않더라도 다 알 것 같은 그런 존재라고 믿었고 또 그러기를 바랐다.


그렇게 가끔 함께 했던 선생님과는 군대 가기 전까지는 연락을 했던 것 같은데 그 이후엔 내가 연락을 하지 않았다. 아마 내 모습이 너무 비참했기에 좀 더 좋은 모습이 될 때까지 미루자고 속 좁은 생각을 했다.


그런 사이 선생님과 나는 서로의 인생에서 차츰 잊혀 갔다. 시간이 많이 흘러 내가 정신을 차리고 그분을 떠올렸을 땐 너무 늦어버렸다. 얼마 전 어느 교육청 홈페이지에 있는 ‘스승찾기’ 를 이용하여 선생님의 연락처를 접하고 싶었으나 실패했다. 그 홈페이지에는 이런 <안내사항>이 적혀 있었다.

개인정보보호법에 의거 스승의 재직정보(재직교, 연락처 등)는 제공이 불가능하며 전화요청을 해도 답변이 불가함을 양해해 주기 바람. 스승에게 제자 연락처를 전달했는지 여부는 별도로 제자에게 안내해드리지 않음. 신청일로부터 5일이 경과된 후에도 연락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스승에게 연락을 할 수 없는 경우(정보 부존재, 퇴직, 전출, 휴직, 방학기간 등)이거나 스승이 연락을 희망하지 않는 경우임.


퇴직하신 걸까, 그럴 수도 있다. 그 정도 연배는 되실 테니까. 그런데 솔직히 내 맘 속에서 솜방망이 치는 건 선생님이 나와의 연락을 희망하지 않아서 거부하는 게 아닐까 하는 나의 쓸데없는 죄의식이었다. 40대 중반이 되어서야 이제 조금 숨 쉴 여유가 생겨 선생님을 떠올렸는데 너무 늦은 모양이다.




동양의 성인(聖人)인 《공자》께서는 40세를 ‘불혹(不惑)’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라고 하셨다.

2,500여 년 전 말씀이시니, 실시간으로 지구 반대편과 만날 수 있는 5G 시대인 지금과는 잘 맞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뜻하시는 바가 적지 않다.


누구나 40대쯤 되면 가정과 직장, 각종 사회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 노력하지 않을까. 누구는 그것을 잡았다고 생각해서 안도의 숨을 내쉬고, 누구는 아직 못 찾아 안달을 내고 있거나 포기할까 고민 중이고, 어떤 이는 잡았던 것을 놓쳐 절망감에 빠져 있을 수도 있다.


천태만상(千態萬象)의 사람들이지만 나름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 나이쯤 되면 자신의 위치를 되돌아보고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공자의 말씀과 일맥상통하다. 다음 40년을 기약하기 위해 지난 40년을 복기(復棋) 해 보는 건 어떨까. 쉽지 않겠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다행히 사람들의 눈에 그리 안쓰럽지 않을 정도의 경력과 사회적 위치를 얻었다. 언제, 어떻게 이 많은 것들이 나에게 주어졌는지 그저 황공할 따름이다.


이런 나와는 달리 오히려 주변에서 자꾸 바람을 넣는다.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나에게 더 노력하라고, 성공하라고 충동질이다. 하지만 난 지족(知足)을 깨달아가며 자유의 생활을 느낀다. 조금만 내려놓으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얼마 전부터 깨닫기 시작했다. 난 바람이고 싶다. 어디든 갈 수 있는 바람. 그러기 위해선 더욱 가벼워져야 한다. 욕심을 줄여야 한다.


30년 전, 중3인 내가 터무니없다고 코웃음 쳤던 노래 <사노라면>은 청춘들에게 지금의 어려움을 참고 이겨내라고 하는 「열정페이」만을 부르짖었던 건 아니었을 거다.


‘뭐가 젊다는 게 한 밑천인가. 가슴을 쫙 펴면 세상이 달라지나? 내일 해가 뜬다고 내 생활이 바뀔까?’ 하면서 세상에 소리치기보다는, 오히려 이렇게 부족한 나에게도, 나보다 더 나은 이들과 똑같이, 내일의 해가 허락된다는 진리에 감사하라는 뜻이었으리라.


‘비가 새는 작은 방에 새우잠을 잔대도, 고운님 함께라면 즐거웁지 않더냐~.’에서 고운님의 의미를 깨닫고 내 운명의 그님을 찾는 데 집중하라는 의미지 않았을까?




이 세상에는 우리가 ‘세계’라고 부르는 그 무언가가 있다. 혹은 ‘우주’, 혹은 ‘신’, 혹은 ‘진리’, 혹은 ‘전부’, 혹은 ‘하나’인 존재 말이다. 나는 그것을 진리라고 부르겠다. 진리는 잔혹하지만 공정하다. 게다가 인생에 짐도 되지 않고, 오히려 살아가기 위한 힘을 이끌어 내 준다.


젊었을 때 난 어리석게도 허울 좋은 ‘체면’이라는 허상에 모든 것을 바치면 그리 될 거라는 자기 최면에 사로잡혀 맹목적으로 추종했다. 그러나 그건 진리에 대한 모욕이었다.


진리는 자만하지 못하도록 올바른 절망을 준다. 무언가에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보다 자신의 발로 앞으로 나아가 살아가는 것의 중요함을 일깨워 준다.


인생의 중반에 와서야 조금 깨닫기 시작했지만, 정확한 깨달음을 찾기 위해선 조금 더 인생의 시간이 필요한 가 보다. 아픔과 시련의 시간들이..

아라카와 히로무’의 <강철의 연금술사> 마지막 장면을 인용하고자 한다. 나를 한참이나 울컥하게 만들었던 소중한 문장이다.



아픔이 없는 교훈엔 의미가 없다.

사람은 무언가의 희생 없인 아무것도 얻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그것을 뛰어 넘어 자기 것으로 만들었을 때 사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강철같은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그래 강철 같은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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