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와 달 Sep 06. 2022

흐르지 않는 시간

치매

케르 자비에 루셀, 인생의 계절, 1892-1895, 오르세 미술관


<흐르지 않는 시간>

                                                           

드라마 속 치매 노인의 백지 같은 표정이

거울처럼 어머니의 얼굴을 비춘다:

울컥 치밀어 오는 슬픔

가슴속 어디에 이토록 깊은 골이 있었던가


치매 걸리면 좋았던 순간만 기억한대

그래서 정작 본인은 행복하대

딸아이의 철없는 소리가 나를 위로한다.

정말일까

치밀어 오던 슬픔이 바람으로 가라앉는다


수화기 너머 같은 말이 되풀이된다

“오랜만이다. 다들 잘 있지! 언제 한 번 와라”

“지난 주말에 다녀갔잖아요. 뭐하고 계세요?”

“그냥 있지. 오랜만이다. 다들 잘 있지! 언제 한 번 와라”

긴 한숨에 섞인 나의 속엣말도 되풀이된다

아, 데이지 같던 당신은 마른 꽃이 되려 하시나요


몇 걸음의 거리로 낯설어지는 어머니의 시간은

강물처럼 흐르지 못하고 호수가 되어 머문다

부디 그 호수의 풍경이 아름답기를

마른 꽃이 되어가는 당신

그 호숫가에서 다시 피어나기를

흐르지 않는 시간 속에서 같이 머무를 수 없는

나의 바람이 호숫가를 맴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