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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와 달 Oct 05. 2022

쉐다곤 파고다가 빛나던 밤에

쉼이 있는 여행


<쉐다곤 파고다가 빛나던 밤에>

  

비가 내린다

황금의 사원은 내게

걸음을 멈추라 한다

어느덧 해가 저물

보석을 품은 사원은

별이 빛나는 작은 우주가 된다 

비를 피하려 머문 시간이

뜻밖의 선물을 안겨주는 것.

여행은 한가로움이다


**벌써 3년. 코로나19로 내게 멀어진 것 중 하나는 여행이다.

‘유람을 목적으로 사는 곳을 따나 두루 돌아다님’. 여행의 사전적 의미이다.

이에 따르면, 사는 곳을 어디로 한정하느냐에 따라 같은 곳을 가도 여행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서울 사는 이에게 강원도 속초시에 있는 설악산을 유람하는 것은 분명 여행이겠지만, 서울시 용산구에 있는 남산을 유람하는 것은 좀처럼 여행이라 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는 곳을 서울의 한 동네, 예를 들어 도봉구 도봉동으로 한정하면 남산 타워 전망대에 오르는 일도,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가까운 곳을 여행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코로나로 떠날 수 없었던 여행은 내가 사는 곳의 경계를 우리나라로 넓혔을 때의 여행을 말한다.


둘째 아이가 조금 커서 엄마 아빠의 손을 놓고도 한참을 걸을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아내는 틈나는 대로 여행의 비용 대비 교육적 효과,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공유하게 될 시간과 장소의 어마어마한 가치를 조곤조곤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아내의 열과 성을 다한 말에 설득되었다기보다는 그 말의 파도에 밀려, 어느새 우리 가족은 인천 공항 탑승구에 닿아 있었다.

그리고 이후 오랫동안, 코로나19가 점령군이 되어 공항 탑승구를 통제하기 전까지, 같은 일이 되풀이되었다.

사실 첫 자유여행부터 그 맛을 알게 된 나에게 때마다 반복되는 아내의 여행 예찬은 그냥 여행을 위한 일종의 루틴에 불과한 것이 된 지 오래였다.

더 솔직히 말하면, 아이들보다 나와 아내가 더 신나서 돌아다녔으니 아이들을 위한 여행의 교육적 효과 등등은 다른 사람들에게 여행의 이유를 둘러대기 위한 핑곗거리가 된 지 오래였다.


여하튼 여행의 맛에 이미 중독된 내가 그 좋은 것을 한동안 즐기지 못한 아쉬움으로 지난 여행의 장면들을 들춰 보다가 미얀마 양곤의 쉐다곤 파고다에서의 경험이 요즘 무언가에 쫓기듯 조급해하는 나에게 ‘마음의 여유를 가져라!’하며 다독여 주는 것 같아 그 얘기를 잠깐 해 보고자 한다.


10년 전 가족과 함께 미얀마를 여행하였을 때의 일이다.

황금 불탑으로 유명한 양곤의 쉐다곤 파고다를 찾아가는 길, 갑자기 비가 내렸다. 부슬부슬 내리는 정도가 아니라, 장맛비처럼 굵은 빗줄기가 세차게 내렸다.

그 비를 뚫고 사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그 이후에도 비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다시 비를 맞으며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할 수 없이 우리 가족은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사원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렇게 계획에 없던 여유 시간이 생기고 처마 밑에서 할 일 없이 비를 피하다 보니 어느새 주위는 어둑어둑해졌다.

그때 황금 불탑이 영롱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불탑에 장식된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등의 보석들이 어둠을 밝히기 위하여 점등한 조명을 받아 저마다의 빛을 뽐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황금 불탑은 별이 빛나는 작은 우주가 되었다. 그 아름다운 모습에 투덜대고 칭얼대던 아이들의 입에서 '와!' 하는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모르겠다. 나 또는 아내가 아이들보다 먼저 감탄사를 내뱉었을지도.

만약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그래서 사원의 처마 밑에서 한가로이 쉬지 않았다면, 우리 가족은 영롱하게 빛나는 황금 사원의 진면목을 보지 못한 채 급히 다른 관광지를 찾아 이동했을 것이다.


‘쉼이 있는 여행이 그렇지 않은 여행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느끼게 해 준다.’

아마도 누군가의 여행기에서 읽었던 구절이었을 말이 떠올랐다.

흔히 인생을 여행에 비유한다. 인생도 여행처럼 쉬어갈 때, 참맛을 알게 되고, 결국 더 풍요로워지는 것이 않을까.

바쁠 때일수록 의식적으로 긴 호흡으로 숨도 고르고, 향기를 느끼며 차 한잔 천천히 마셔 보자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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