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나폴리 소매물도 등대섬

사사소소 여행기

by 무우
소매물도 등대섬 등대


우리나라 3대 등대섬의 하나인 소매물도 등대라! 야간근무 마지막 날 아침, 피곤한 몸을 화목정에 뉘었다. 감은 눈 머릿속에 사진으로만 보았던 소매물도 풍경이 아른거리고 실없는 사람처럼 자꾸 웃음이 났다.


통영(충무)의 부둣가는 파장 무렵의 아침장이었다. 길 옆에 차를 세우고 예약해 둔 식당에 들어섰다. 유소년 축구 국가대표 선수의 집이라는 글과 사진이 걸려있었다. 아들자랑이 한창인 주인아줌마의 인심이 넉넉해 보였다. 밑반찬으로 나온 음식들이 나의 입맛을 돋웠다.


"맑은 봄 도다리 쑥국"

"막걸리 한잔 합시다"


나의 입안이 온통 봄으로 가득 찼다. 스테인리스 냉면그릇에 담긴 맑은 국물... 나의 숟가락은 쉴 틈이 없었다. 앞에 앉은 선배의 그릇은 벌써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붉어진 얼굴에서 봄기운이 차고 넘쳐흘렀다.


부지런도 하지, 어디서 온 사람들일까. 참 많은 사람들이 소매물도행 배에 올랐다. 12시 20분. 여객선은 선착장을 벗어나 바다로 나갔다. 통영항이 점점 멀어지고 배는 더 먼바다로 나아갔다. 선실에서 나와 미래소년 코난이 인더스트리를 찾아가는 모습처럼 고개를 선수 쪽으로 돌려 바닷바람을 받고 섰다. 사방에 펼쳐진 푸른 바다, 그 바다에 알알이 박혀있는 크고 작은 섬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는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동남아시아나 남태평양의 어느 섬이 아니라 우리나라 한려해상의 섬이 아닐까 생각했다. 통영 바다는 어린 시절 아지랑이 속에 감춰진 철길의 끝처럼 궁금했다.


우리를 태운 배는 한산섬을 비켜서 앞으로 나아갔다. 장팔사모 한 자루를 손에 들고 몰려드는 100만 조조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장판교 위의 장비처럼 이순신 장군이 왜구들을 물리치기 위해 앞바다를 내려다보던 제승당이 나무들에게 가려있었다. 의연한 기상이 느껴졌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 이순신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戍樓)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笳)는 남의 애를 끊나니


멀리 보이는 섬이 비진도라고 했다. 섬의 모래가 햇빛에 반사되어 황금처럼 빛났다. 옆에 앉은 선배가 연애담을 들려주었다. 형수와의 인연이 시작되었고 경상도 사나이의 박력에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었다고 했다.


통영항에서 동남방향으로 26㎞, 1시간 30여분 뱃길을 달려서 소매물도 선착장에 닿았다. 하늘인지 바다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경사지에 지어진 현대식 펜션 뒤로 가파른 언덕에 앉은 도롱이(짚으로 만든 우의) 모양의 민가가 눈에 들어왔다. 배에서 내려서는 내 볼에 남쪽의 미풍이 훑고 지나갔다.


우리를 실어왔던 엔젤-3호는 담아 온 사람들을 선착장에 토해냈다. 산중턱에 자리 잡은 천년살이 동백나무와 흰 개가 우리를 반겼다. 약 20 가구가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고 하나 지금은 거의 없어지고 낡고 빛바랜 붉은 도단(함석) 지붕이 백일홍처럼 7~8채가 피어 있었다. 펜션으로 가는 길 옆 갯바위는 파도를 계속 부셔대고 있었고 조사님들의 손놀림이 바빠 보였다.


여객선을 기다리는 상근이


선착장 왼쪽 위로 웅장하게 지어진 소매물도 펜션에 우리는 여장을 풀었다. 예전에 텔레비전에 출연했던 흰 개가 대문간에 누워 봄 햇살을 받고 있었다. 해안선의 전체 길이가 약 3㎞로 섬을 한 바퀴 둘러보는 데 2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등대섬을 다녀오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예전에 와 본 적이 있는 선배의 말에 섬의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민가 사이로 나있는 계단 오솔길을 부지런히 올랐다. 소매물도 산중턱 가장 넓은 분지에 자리 잡은 소매물도 초등학교 분교가 131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1996년에 폐교되었다는 표지석이 나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울긋불긋 수백 명 아줌마 여행객들과 멀리 인천에서 혼자 왔다는 아가씨, 분교 앞 억새에 누워 한낮 햇볕을 받던 여인들 모두 섬이 처음이 아닌 듯했다.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오솔길 오름에서 다들 여유로웠다. 선홍의 동백꽃이 시선을 끌었다. 40세 이후는 모든 것에 미혹되지 않는다는 공자의 말씀을 실천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자꾸 되돌아 섰다.


7.jpg 등대섬 가는 오솔길


오솔길 정상을 지나자 희뿌연 해무 사이로 솟은 기암괴석의 바위가 보였다. 소매물도를 지키는 기립 무사처럼 보였지만 움켜쥐면 부서질 것 같은 뼈대만 앙상한 모습이었다. 불쌍하게 보였는지 파도도 비켜서고 있었다.


12.jpg 촛대바위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대미를 장식하는 섬. 소매물도는 해안암벽이 절경이었다. 연신 온몸을 부딪치는 파도가 뿜어대는 하얀 포말 물보라는 가히 남해제일의 비경으로 촛대바위, 매 바위, 오륙도는 짙은 바다 빛과 함께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 푸르른 바다에 크고 작은 섬들이 점점이 수를 놓고 있었다. 바다와 섬을 배경으로 그림을 그린들 이만한 그림이 나올 수 없을 것 같았다.


20.jpg 소매물도 기암괴석


벅찬 숨을 토하게 하는 곳 등대섬. 영화 ‘박하사탕’에서 20년 전 첫사랑의 여인 순임과 함께 소풍을 왔던 곳에서 "나 다시 돌아갈래!" 라며 세월을 돌려달라 외쳐대던 영호(설경규)의 절규만큼이나 과거로의 여행이 필요한 대도시의 찌든 현대인이 꿈꾸는 파라다이스가 있다면 소매물도 하얀 등대섬, 바로 이곳인 것만 같았다.


8.jpg 망태봉에서 바라본 등대섬


160년 전 서양의 바다 풍경화가 클로드 모네가 소매물도 등대섬을 찾지 않은 것이 아쉬울 뿐이다. 노르망디나 지중해 연안을 여행하며 풍경을 그렸다고 하니... 그가 소매물도 등대섬을 그렸었다면 프랑스 루브르 미술관 한쪽을 밝히는 등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코발트 바다에 떠있는 등대섬 초원 위에는 하얀 등대가 서 있었다. 짙은 코발트 하늘을 찔러 금방이라도 파란 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등대섬 주변의 기묘한 갯바위들이 아름다움을 절정에 달하게 했다. 섬과 섬을 연결하는 80m의 몽돌밭 길은 '모세의 바닷길'로 하루 두 번 길을 열어준다고 했다. 인간 군상들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는 신의 계시로 여겨졌다.


등대섬을 에워싼 쪽빛 바다와 어우러진 하얀 등대는 이국적 풍경을 보는 듯했다. 섬을 오르는 나무계단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하늘과 하얀 등대가 어우러진 모습의 장관에 말문을 닫았다. 높이 16m의 고풍스러운 하얀색 원형 등탑의 자태는 아름다웠다.


10.jpg 등대섬 오르는 계단


등대섬의 본래 이름은 해금도(海金島)지만 등대와 어우러진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등대섬으로 불리게 됐단다. 등대섬의 등대는 1917년 일제강점기 때 무인등대로 건립됐으나 1940년 유인등대로 전환되고 48km 거리까지 불빛을 비추어 긴 여정을 가는 지친 선박들과 고기잡이 배들의 이정표가 된다고 했다.


소매물도와 등대섬을 잇는 몽돌밭 열 목은 물이 많이 나서 제법 넓은 몽돌길을 만들었다. 소매물도에서 등대섬을 목전에 두고 내려가는 나무계단이 나의 조급함을 눌렀다. 저곳 등대섬에 닿고 싶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몽돌길을 건너고 나무계단을 오르내렸을지. 두 섬을 잇는 몽돌길은 서로를 잇대고 있었다.


등대섬, 영화 '왕의 남자'에서 극 중 인물인 공길과 장생이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그리워하던 것처럼 등대섬의 품에 안기고 싶어 나는 몽돌길을 서둘러 건넜다. 푸른 하늘과 한가로운 구름과 등대섬으로 향하는 계단은 분명 천국행이었다.


9.jpg 등대섬으로 가는 계단


통영항에서 준비한 김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등대섬을 방문한 기념촬영을 마치고 하얀 등대 위에 올랐다.

그리고 등대지기가 되었다. 국민학교 시절 불렀던 동요의 흥얼거림을 푸른 하늘로 날려 보냈다. 멀리 대 매물도의 풍경이 공룡바위와 함께 어우러져 먼 옛날 중생대 공룡시대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하였다.


11.jpg 등대섬에서 바라보는 매물도 풍경


등대섬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 소매물도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망태봉(152m)에 올랐다. 소매물도의 망태봉은 등대섬을 비롯하여 수많은 통영의 섬들과 거제 해금강, 그리고 한려해상의 크고 작은 섬들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하는 천연 전망대였다.


망태봉 정상을 내려오면서 겨우내 날카로운 해풍을 견디고 피어난 동백 한송이를 카메라에 담았다. 그림 같은 등대섬의 절경을 가슴에 담고 오솔길 계단을 내려왔다. 여유로움으로 걸어가는 길가의 남새밭(텃밭)은 봄기운을 한껏 피어올리고 있었다.


15.jpg 남새밭 유채꽃


높은 바위 위로 보름달이 떴다. 낚시하는 일행을 찾아 나섰다. 낚시는 별 취미가 없던 터라 꾼들의 캐스팅 장면이나 한 컷 찍을 요량으로 갯바위를 찾았다. 섬 전체가 천혜의 갯바위 낚시터로 서툰 조사들에게 풍요로움을 제공하고 있었다. 소주 안주거리가 될 만큼 넉넉하게 배품을 받았다.


추위와 배고픔 때문에 서둘러 갯바위를 벗어났다. 돼지고기 목살의 굽는 향기는 배고픈 이들의 발길을 끌었다. 언제 옆에 왔는지 흰 개 상근이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숯불 위 고깃점에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준비해 간 소주와 안주는 순식간에 동이 났다. 새빨간 숯불만 제 주인을 못 찾고 밤바다 추위를 보듬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소매물도 망태봉을 다시 올랐다. 민가 골목길 돌담사이에 빼꼼히 손 내밀고 앉은 야생초와 처마 위의 빨간 동백이 매우 고귀해 보였다. 귀한 아름다움의 선사에 감사하였다.


14.jpg 동백꽃


소 매물도와 등대섬의 열 목은 잠겨 있었다. 크고 작은 몽돌이 훤히 보이는 열 목은 마음 급한 여행객의 건넘을 유혹하는 것만 같았다. 당장이라도 가파른 나무계단 내려가 새하얀 등대섬에 안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미풍에 실려 오는 짭조름함이 폐부 깊숙이 박혔다. 망태봉을 내려왔다.

19.jpg 몽돌밭 열목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섬의 여기저기를 둘러봤다. 물이 없어서 그런지 이곳엔 밭이 없었다. 작은 집에서 할머니가 돌미역을 팔았다. 섬 파수꾼 백구들도 임무에 열중이었다. 흙이 귀한 섬은 돌과 황토로 지은 집이 눈에 많이 띄었다. 반가운 육지 소식을 기다리는지 통영 쪽 창문이 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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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jpg 순찰하는 상근이들

선착장 주변에는 해녀들이 멍게와 소라, 해삼, 굴 등 각종 해산물을 파는 좌판을 펼쳐놓았다. 돌아가는 길 운전만 아니면 좋은 술안주가 되어 줄 터인데 아쉬웠다. 낮 12시 20분 배를 기다렸다. 통영에서 오는 배는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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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은 어제와는 다르게 봄 햇살이 부드러웠다. 선착장 옆 갯바위는 섬 갈매기들이 도란도란 앉아 섬을 떠나는 여행객들을 배웅했다. 배가 도착할 시간이 되자 선착장은 몇 명의 여행객들만 모였다. 어제는 무척 여행객이 많았었는데 당일치기로 섬을 나간 모양이었다. 배를 기다리는 동안 일행이 낚싯대를 펼쳤다. 볼락 낚는 손맛이 꽤 쏠쏠했던지 여객선이 도착할 때까지 낚싯대를 거두지 않았다.


등대섬을 떠나며 / 문우용


소 매물도 언덕너머 몽돌길 건너

내 널 찾으마 아쉬워 마라

서방님 맞이하는 댓돌 위의 새색시 흰 고무신처럼

호롱불 아래 살포시 돌아앉아 님 기다리며

흰 무명실 한 땀 한 땀 밤을 새우소서



하얀 포말 뒤로 멀어지는 소매물도는 그렇게 나와 일별(一別)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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