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사사소소 여행기

by 무우

담대한 희망


야간근무가 끝난 직원들이 탕 속에 앉았다. 허공을 주시하는 그들의 시선은 허허했다. 때마다 끼니를 때워야 하는 본능에 진저리를 쳤다. 근무 중에 들었던 그들의 이야기가 또 들릴 때는 처음 듣는 것처럼 맞장구를 쳤다. 그들의 세평에 귀를 기울이고 조금이라도 공통분모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자석처럼 몸이 그들에게로 붙었다. 사회적 교류는 동료들과의 모임이 다였고 마누라에게 점점 기울고 있는 가정의 주권을 되찾고자 하는 애씀이 번번이 허사가 됨을 이야기할 때는 다들 쓴웃음만 지었다. 탕 속 제국의 벌거벗은 남자들은 스스로를 달랬고 지나간 인생에 대한 조바심은 탕 안의 물에 순치되었다.


돼지불고기 백반집에서 시작한 도원결의는 술병이 늘어갈수록 순수함을 잃었다. 과장된 영웅담으로 채운 소주잔만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돌아가며 쏟는 말들이 다 아는 시시콜콜한 이야기였지만 누구의 입에서 튀어나올지 모를 소리에 집중했고 잔에 채워진 소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모두들 혼돈의 불안정을 자기합리화하고 줄세운 소주병으로 방어막을 쳤다. 취함을 감추고자 나름대로의 질서와 규칙의 논리적 정리로 나라 경제를 걱정하였고 분노와 한숨에 섞여 나오는 그들의 속마음은 내마음 대로 산다는 의지의 통제불능을 가져왔다. 이유없는 불만의 토악질을 나라님에게 쏟아부었고 치욕과 자존으로 버무려진 자신들의 비애를 서로 위로해 가며 도가니로 채워진 엔탈피를 목구멍 저 아래로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지리산 가자"


무력한 살아있음과 취기에 섞인 아우성에 다급함이 느껴졌다. 형광등 불빛에 번뜩이는 맑은 소주잔 속 미묘한 파동에 남자들의 공허한 마음만 냉수에 가라않는 꿀처럼 하층에 절대 불안정의 기류를 형성하였고 스멀스멀 녹아 올랐다. 내 생의 남은 날들을 도모해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담대한 희망이 티끌처럼 일어났지만 나서지 못하는 자신의 무력한 리더십을 한탄만 할 뿐 패닉 상태의 그들은 소주잔을 들었다 놓기만을 반복했다.



지천명


오십이 되어도 나는 변하지 않았다. 이럴 줄 몰랐다. 오십이 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고상해질 줄 알았다. 오십이 되기만 하면 어떤 마법에 걸린 것처럼 저절로 인생을 알게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더 관대해지고, 무엇보다 지혜로운 사람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오십을 넘긴 지금도 나는 그때처럼 여전히 싱거운 농담을 즐기고, 노는 것을 좋아하며, 무시당하면 발끈하는 옛 성질머리 그대로이다. 나이가 들면 지혜로워져야 한다는 이상과 그렇지 않은 현실 속에서 내가 내린 처방이란 것이 고작 이전보다 지혜로워졌다고 유리한 방식으로 정의하고 우기는 것 뿐이다. 내안의 나를 방어하기 위한 성벽이 더 높아졌다. 별에 매달려 길을 걷는 시간이 늘었다. 매일매일 걸었다. 겨울을 흔들어 깨울때 마다 앞선 마음을 찬바람이 눌렀다.


허송세월하는 나는 걸어서 남강둔치를 자주 누볐고 살아있는 것들의 변화를 살폈다. 차가운 봄비에 씻긴 서장대 망루의 성벽아래 굴참나무는 겨우내 지리산 칼바람을 이겨내고 제 생명을 준비했다. 바위틈에 비친 물기 한 모금으로 제법 허멀건 봉오리를 맺었고 천수교 아래 가장자리 수면이 피라미의 꼬리짓에 미동하였다. 물속에 녹은 봄기운을 수양버들이 빨아올려 가지마다 흰 솜을 매달았고 진주성 안마당에는 봄 볕의 시샘이 뜨거워 제 몸을 태운 아지랑이가 처처에서 자글자글 피어 올렸다.

남강을 건넌 열기운이 망진산 봉화대로 올라갔는지 산객들 움직임이 분주했고 아지랑이 희롱에 제 기운을 주체 못 한 봉오리가 화가 났는지 끝이 분홍색이 되었다. 달 없던 그믐이 지난 어느 날 구경꾼의 음풍농월에 절개를 지키지 못한체 결국 화봉을 터뜨렸다. 그 꽃 진달래 미치도록 고왔다. 덕천과 경호의 양수리가 진양호에 머물러 깊은 숨을 고른 후 평거 큰 들을 거쳐 진주성 성벽에 닿았다. 매일매일 봄의 들은 새로웠고 나는 만날 놀았다.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세상에서 가장 큰 일 두 가지는 농사와 독서다`라고 하였다. 초보 농사꾼인 나는 5월 30일 연둣빛 어린 모를 논에 심었다. 그리고 올봄에 책도 몇 권 구해다 읽었다. 무욕한 한량의 풍미를 느끼며 일탈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무수히 했다. ‘말로써 정의를 다툴 수 없고, 글로써 세상을 읽을 수 없으며 살아 있는 동안의 몸으로써 돌이 킬 수 없는 시간들을 다 받아 내지 못할진대, 땅 위로 뻗은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으리’. 김 훈 선생의 ‘남한산성’ 구절이 나를 채찍질했다. 대문 밖 저 멀리 흐린 안갯속의 산은 그냥 거기 있었다.



지리산


나동면 애양골 논에다 이앙한 연둣빛 어린 모가 제법 자라 이삭이 패었다. 여름 땡 볕에 부푼 몸이 껍데기뿐인 이삭을 피우고 작디작고 귀한 실낱 같은 하얀 나락꽃을 매달았다. 꽃구경 나온 개구리들이 왁자지끌 떠들었다. 자글자글 여름 땡 볕에 겸손해진 이삭들이 바람을 불러 자가수분을 했다. 쌀을 잉태한 벼들이 쌀 즙으로 배가 부풀자 나에게 감사의 절을 했고 태풍도 다녀가지 않아서 게으른 나에게 풍년을 약속하는 듯하였다.


여름 소나기와 볕은 논두렁의 풀을 허리춤까지 자라게 했다. 동네 어른들의 입방아에 올랐던 모양인지 돌아앉은 나에게 아내가 연신 잔소리를 해댔다. 못 들은 척 슬며시 마당으로 나가 화단의 국화를 보고 섰다.


"논두렁 풀 자주 베면 새 흙냄새 귀신같이 맡고 산돼지만 내려온다"

"고놈들 논두렁 다 파헤치면 나만 힘들다"

"그냥 두어도 지가 클 때까지 크면 못 큰다"


적자생존 법칙의 괘변을 늘어놓는 내 뒤통수에 대고 아내는 그래도 부끄럽다고 했다. 올봄 지인의 집 마당에서 꺾어 삽목 한 국화가 제법 실하게 자랐다. 옆 순 따고 지주대 세우니 제법 모양새가 났다. 온 마당에 국화향 그득할 걸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일어선 시선에 지리산이 눈에 들었다. `거림계곡으로 갈까, 장터목으로 갈까` 행복한 고민에 빠져 아내가 점심 먹으라 부르는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벼르던 지리산 종주계획은 보직이동과 준비하던 시험으로 인해 언제일지 모를 날로 미뤄져 버렸다. 독서실 가는 길, 짊어진 가방이 꽤 무겁게 느껴졌다. 독서실 창밖으로 소낙비 소리가 요란했다. 붙들고 앉은 책 페이지가 넘어가질 않았다. 달력에 표시된 10월 24일 뻘건 동그라미만 자꾸 어질 거렸다.


별이 총총히 박히는 밤에는 바깥 기운이 제법 찼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앞 유리에 가끔 서리가 끼었다. 진분개 비탈의 억새가 바람에 흔들릴 때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아우성을 쳤다. 흔들어 대는 은빛 환호성이 연신 나의 소매를 붙잡는 것 같았다. 외로움이 북받치는지 상기된 붉은 얼굴의 벚나무 이파리가 울컥울컥 그리움을 차 앞 유리에 쏟았다. 벌레들의 공격에 총 맞은 것처럼 구멍이 뚫린 이파리가 바람에 쓸려갔다.



천왕봉 오름


아이들 등교 길에 그냥 따라나섰다. 올 초 계획했던 지리산 종주는 아닐지라도 더 추워지기 전에 다녀와야 한다는 조바심에 아내의 걱정을 뒤로한 채 동네 슈퍼에서 김밥 두 줄과 물 한병, 간식거리 약간의 준비로 산청 단성을 거쳐 중산리로 내달렸다. 황금 거죽이 벗겨져 황량한 속살이 드러난 산천 위로 삐죽삐죽 튀어나온 암석의 앉은 모양새가 처량하기까지 했다.

지리산1.jpg


수많았던 오만과 편견, 실수와 오해로 가득 찬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와 희망을 발견하길 바라며 앞서 오른 이들의 발자취를 따라 걸었다. 새해에 세웠던 계획들 중 실패한 것들에 대한 반성이 빨라진 숨결에 섞여 나왔다. 몸뚱이 한가득 실패한 계획들과 반성을 짊어진 채 비장하게 산을 올랐지만 첫 발을 내디딘 시간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10시 37분` 그것들의 성찰은 내 몸에서 쏟아져 나온 땀과 버무려져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힘듦을 견딜 수 있다는 자신감은 손바닥 위의 모래처럼 빠져나갔고 마음을 쉬게 하고 오감을 되살려 건강한 나로 만들고 싶다는 거창한 의미는 이미 거친 숨에 묻혔다.


`과거는 지나갔기 때문에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았기 때문에 없다. 항상 오늘 충실히 살아야 한다.`는 어느 글쟁이의 문장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 최고라는 것에 동의하며 시작한 천왕봉 오름은 `급한 마음으로는 행할 수 없다`라는 결론을 내리며 정상이 보이는 바위에 주저앉았다.


- 서사 / 양신(중국 명나라 문인) -


청산은 옛날 그대로인데

붉은 석양은 몇 번이나 지나갔나

강가에서 고기 잡고 나무하는 백발의 늙은이

가을 달 봄바람 익히도 보았으리

한 병 탁주로 반갑게 만나서

고금의 수많은 사건들을

모두 다 웃으며 이야기하면서 붙여나 보세


소설가 황석영 선생이 옮긴 삼국지 초록에 붙어있는 구절이고 궁한 상황에 처한 애절한 나의 철학적 사유였다. `인간에게 고통을 빼면 아무것도 없다. 고통이 있어 존재한다`는 어리석고 사리에 어두운 우매함으로 오르고 오르고 또 쉬었다.



무위자연


하늘이 열리자 늙은 산이 오히려 우뚝하게 빛나서 검푸른 빛을 품었고 갈 수 없는 길과 가야 하는 길이 포개져 있었다. 나약한 머리와 허약한 몸뚱이가 자꾸만 두 발을 붙잡았다. `저 계단의 끝은 하늘일 거야` 전해질의 불균형으로 환시가 보일 만큼 감각기관이 무뎌졌다. 몸에서 빠져나간 수분의 보충이 필요했고 천왕봉 아래 샘에서 물을 미친 듯이 들이켜 꺼진 배를 채웠다. 샘의 물이 진주와 함안을 거쳐 낙동강으로 가는 시작임을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천왕봉 0.3㎞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 계단 오름에 온 힘을 쏟았다.


"천왕봉이다"


아무도 없었다. 사방천지에 보이는 것은 발아래 산뿐이었다. 천왕봉 정상석만 사람의 흔적일 뿐 거친 산줄기가 굽이굽이 펼쳐진 능선이 산그리메를 그렸다. 게으른 눈에 보인 산은 너무 높았고 나약한 의지에 순종할 뻔했지만 산 정상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표지석은 모든 것을 용서했고 엄마의 젖꼭지 같았다. 인간 군상들에게 밟힌 정상의 바위는 흙을 모두 잃어 불쌍했다. 묻어가 버린 흙이 다시 찾아올 수 없도록 검은빛을 뿜었다. 파란 하늘이 너무 깊었다. 어젯밤 산 위에 박혔던 별은 한 개도 건질 수 없었다.

지리산2.jpg


나만의 영역표시에 열중했다. 정상석에 기대앉은 지 50분이 지나도 찾는 이 하나 없었다. 산도 나도 외로웠다. 차가운 한기가 등줄기로 흘렀다. 사방천지를 망막에 새긴 후 하산을 위해 일어섰다. 전투기 한 대가 배를 보이며 머리 위로 지나갔다. 초계 비행을 하는지 북쪽 덕유산 방향으로 날았다. 내가 손을 흔들자 기수를 약간 왼쪽으로 틀었다. 비행기가 지나간 항로를 눈으로 계속 추적하자 북쪽의 찬바람이 내 뺨을 할퀴었다. 서해로 내려가는 해를 보기 위해 장터목 방향을 보고 섰다. 내가 머물렀던 흔적을 지우고자 어두운 기운이 몰려왔다.


오늘의 흔적을 어둠이 덮기 전에 서둘러 하산했다. 초겨울 날씨처럼 추웠지만 햇볕이 직접 닿는 얼굴은 따가웠다. 멕시코의 국경도시 티후아나에서 경험했던 햇살이었다. 땀이 턱밑 목젖까지 흘렀다. 노을로 인해 산이 붉은 바다가 되었고 천지가 붉었다. 서두름을 조심하라는 듯 대지는 잔잔한 구름바다가 되었고 봉우리는 섬으로 바뀌었다. 법계사로 내려가는 안갯속 임의의 지점에서 마음을 던져놓고 잠시 눈을 감았다.


천왕봉은 남명 조식(1501 ~ 1572)이 산청군 시천면 산천재에서 72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정신적 수양의 스승으로 삼았던 곳이다. 나는 천왕봉을 몇 번이나 다녀왔지만 단 한 번의 가르침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법계사 삼층 석탑을 본 후 나도 모르게 두 손이 모아지고 숙연해졌다. 지금까지 내가 행했던 허망한 과시는 그릇된 것이었다. 묘한 기운이 몸을 감쌌고 평온 무사함이 느껴졌다.

지리산4.jpg


지리산은 항상 여기 있었다. 어제도 거기 있었고 내일도 거기 있을 것이다. 지금의 산은 나의 오늘이었다. 피로에 지쳐 흐느적거리던 몸이 단단해진 느낌이다. 몸에 묻혀왔던 냄새도, 마음에 생겼던 생채기도 훌훌 털었고 지웠다. 단 한 번뿐인 소중한 인생이고 시간과 바꾼 재미였고 재미있는 날이었다.


허세로 사는 삶 중에서 오늘은 겸손도 한 조각 주웠으니 수지맞았다. 내 생의 즐거움을 찾아 다시 일상으로 돌아서는 길의 어둠은 무서웠다. 법계사 석탑을 뒤로하고 중산리로 걸음을 재촉했다. 산을 쓸고 내려오는 바람이 순풍처럼 나를 밀었다. 빨리 산을 내려가라는 듯 숨은 산새들의 지저귐이 사방에서 울렸다. 해는 이미 산을 넘었고 붉은빛 구름은 무거워진 하늘에서 흩어졌다. 왕성했던 오늘의 흔적이 어둠에게 완전히 덮힐 무렵 나는 중산리 주차장에 도착하였고 세상으로 되돌아왔다. 끝.

작가의 이전글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