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금오도

사사소소 여행기

by 무우


투박한 냄비 속 된장 알갱이가 몸부림을 쳤다. 숨이 붙어있는 야채 사이로 투명하고 작은 거품이 일었다. 소주를 마셨다. 냄비 속 야채가 부풀거나 위로 솟았다. 솟은 것들을 집게로 찔러 숨을 끊었다. 하모 한 점을 띄웠다. 하얀 겹벚꽃이 피었다. 꽃은 크고 살이 부드러웠다. 눈으로 먹었다. 황홀했다. 소주로 입 안을 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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깻잎 포대기로 둘러싼 하얀 겹벚꽃을 입에 넣었다. 벚꽃처럼 짧은 생이었다. 마늘 한 조각을 된장에 찍어 먹었다. 알싸한 매운맛이 정신을 불렀다. 육수 향기를 코로 마셨다. 양파조각 위에 건진 채소를 얹었다. 입꼬리를 따라 소주도 올랐다. 바지락 속살을 고명으로 올린 청각나물이 질그릇에 나왔다. 여수바다가 담겼다. 바다가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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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항은 신식 항구였다. 여객선 두척이 정박해 있었다. 개도와 금오도를 가는 여객선에 올랐다. 파도가 없었다. 옅은 해무로 섬들이 맑지 않았다. 해가 왼 볼을 달구는 것으로 보아 배는 동남쪽으로 가고 있었다. 개도 선착장에 두 명이 내리고 배에 탄 사람은 여덟 명이 남았다.


바다는 잔잔했다. 해무 사이로 검은 섬이 나타났다. 서에서 동으로 섬이 뻗어 있었다. 섬을 살피는 중 수면 위로 기름 바른 둥근 바위가 몇 차례 올랐다 사라졌다. 상괭이였다. 검은 반달의 등 모양이었다. 바다를 주시했지만 상괭이는 더 이상 모습을 보이질 않았다. 배는 아주 작은 선착장에 닿았다. 함구미 포구였다. 막 쌓기 형식인 타원형의 작은 방파제가 눈에 띄었다. 거북선이 정박했던 삼천포의 대방 굴항과 모습이 흡사했다.


산행 초입의 식당에서 개도 막걸리와 묵은 김치를 먹었다. 육지의 막걸리와 달리 맛이 시원했다. 안주로 시킨 방풍 전은 날카로운 바닷바람을 맞았음에도 연했다. 식당 주인에게 함구미의 뜻을 물었다. `담는다`는 마을이라 했다. 바구니 같은 방파제의 모습과 함구미의 뜻을 대조해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막걸리와 김치를 추가로 주문했다. 더 이상 지체하다가는 갈 길을 가지 못하겠기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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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많이 다녀갔는지 섬의 둘레길은 깨끗했다. 발끝에 돌멩이 하나도 차이지 않았다. 섬의 둘레길을 걷는데도 고기잡이배의 엔진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바위가 높았다. 직벽의 위로 길이 있었다. 내려다보는 바다는 깊었다. 숲길 끝에 해안 절벽인 `미역널방`이 나타났다.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작은 무덤이 있었다. 풍수지리에 관심이 많은 나는 절벽 위의 모신 무덤에 목례를 했다. 여기까지 모신 것으로 보아 효심이 깊은 후손이 분명했다. 바다로 떨어짐을 경계하는 줄이 미역널방의 주위에 설치되어 있었다. 줄에 걸린 액자의 글귀에는 바람이 길을 냈다는 `바람의 유언`에 관한 시가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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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만이 기별을 보내는 곳에서 나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용맥이 끊어진 해안 절벽 위의 무덤은 조상을 모셨다기보다 고기잡이 나간 남편을 기다리다 죽은 망부석 같았다. 여수 어느 주점의 벽에 걸려 있던 `기다린다는 것은 아름답고도 슬픈 일이다`를 떠 올리게 하는 곳, 어부들의 등대 `금오도`의 볕이 뜨거웠다. 죽음이 되어서도 기다리는 아픔이 있는 곳 그대를 뒤로 하고 나는 길을 계속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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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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