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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실용음악에 불어 닥친 하한가

by 디아쏭

한때 실용음악이 붐이던 시기가 있었다. 방송사에서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줄줄이 론칭했고 언론에서도 많은 기사를 냈다. 라이징 스타가 탄생할 때마다 온 국민은 열광했다. 그 덕분에 실용음악이 전국적으로 유행했다. 어딜 가나 건물에 하나씩 실용음악학원이 들어섰고 한집 걸러 한집은 악기를 배우러 학원에 다녔다. 태권도나 피아노학원보다 보컬이나 기타, 드럼학원을 보내는 부모님들도 많아졌다. 호황기에 실용음악을 전공했던 나는 졸업 후 5년 정도는 돈 걱정 없이 학원 강사로 일하며 워라밸이 갖춰진 안정된 생활을 했다. 그러다 오디션프로그램이 조금씩 사라지자 자연스럽게 실용음악의 유행도 자취를 감췄다.


실용음악학원들이 줄줄이 폐업했다. 자주 보였던 실용음악학원 간판들이 어느새 댄스 학원으로 바뀌었다. 나에게 배정되었던 수강생들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주 3회만 출강해도 250만 원은 우습게 벌었던 내 수입도 팍팍해져만 갔다. 그때만 해도 나는 운이 좋았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언제나 그렇듯 또 경제가 어려워졌나 보다 했지 심각하게 대책을 세울 생각은 못했다. 그러나 실용음악계에 부는 매서운 칼바람은 기어코 내 코앞까지 찾아왔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음악으로 먹고 살리라 다짐했던 게 불과 1-2년 전이다. 그런데 현실 앞에서 다시금 내 다짐은 무너져 내렸다. 대학교 동기들 중 일찌감치 음악계를 떠났던 친구들이 그들의 여유로운 일상을 sns에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집을 사고 차를 사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친구들의 인생과 비교해 보니 마치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잘못 내린 것만 같은 자책감이 밀려왔다.


이제 와서 음악을 놓긴 싫었다. 내가 제일 잘하고 좋아하는 게 음악인데 현실을 이유로 포기하고 싶지 않은 알량한 자존심이 더 커져있었다. 현실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은 이상뿐이다. 나는 이상을 택했다. 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 불황기 속 내 인생에 한번 더 베팅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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