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 뮤지컬에는 나처럼 가난한 관람객들을 위한 이벤트가 있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해당 뮤지컬 극장 앞에 모여 로터리를 시작하는데 당첨이 되면 오케스트라석에 앉을 수 있는 영광의 기회가 주어진다. 오케스트라석은 말 그대로 오케스트라와 가장 가까운 자리로 맨 앞자리를 뜻한다. 하지만 맨 앞자리다 보니 무대가 바로 앞이라서 올려다보느라 목이 약간 뻐근하고 스피커 바로 옆 일 때는 귀도 조금 아프다. 그러나 단 돈 10불로 로얄석에 앉을 수 있는 기회였기에 이 전쟁에 나도 참전했다.
생각보다 치열한 경쟁이었기 때문에 될지 안 될지는 예상 불가했다. 간절한 마음으로 내 이름을 쪽지에 적어 냈고 곧 발표가 시작되었다. 진행요원이 주춤하더니 어렵게 스펠링을 발음했 다.
“Rudia Song!”
내 이름이 불렸다. 감격과 동시에 나는 “I am here.” 하고 큰소리로 답했고 주변에 몰려있던 사람들이 크게 웃으며 손뼉 쳐주었다. 인종차별의 웃음이 아닌 진정 부러움이 가득한 웃음으로 느껴졌기에 난 당당하게 티켓을 받아 들었다.
내가 보았던 뮤지컬들은 총 9편에 달했는데 이는 거의 매일매일 뮤지컬을 한편씩 봤던 수치였다. 시스터액트, 고스트, 북 오브 몰몬, 지저스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렌트, 스쿨오브 뮤직, 포시즌스, 원스, 맘마미아를 보았는데 거의 로터리를 통해 좋은 자리를 합리적 비용으로 관람할 수 있었다. 뮤지컬 원스 같은 경우는 아침 7시부터 나가 줄을 서서 티켓을 얻었는데 바로 내 순서까지만 티켓을 얻었고 내 뒤에 선 영국 아저씨부터는 티켓을 얻을 수 없었다. 50불 가까이 아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도전할 엄두가 안 날 오픈런이었다.
한국형 발성에만 익숙해져 있던 나는 다른 인종들의 발성은 어떤 차이가 있을지 궁금했다. 한국의 대중가요에서 자주 보이는 스타일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의 노래스타일과 발성을 직접 들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이 내 뉴욕 일정이 늘어난 이유 중 하나였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스토리뿐만 아니라 등장하는 음악의 장르도 다양했다. 지저스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음악은 록음악이 주였는데 예수님이 백인으로 등장했고 예수의 제자들도 거의 백인들이었다. 록 음악이 영국에서 시작된 백인 소울이 담긴 로컬음악이라는 것도 뮤지컬 속에 담겨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시스터액트와 포시즌스는 흑인음악이 주를 이뤘는데 그중 블랙가스펠과 R&B 음악들이었다. 이렇게 등장하는 음악들은 스토리와 캐릭터가 연과 되어있는 건 매우 흥미로운 점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나라 마당극에 국악이 아닌 록음악이 등장하는 게 잘 상상이 안 가는 건 사실이다.
다양한 인종의 등장만큼 발성도 다양했는데 특히 뮤지컬 렌트는 백인과 흑인의 발성의 차이를 크게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다. 백인들은 주로 고음에서 반가성과 가성 형태의 발성을 사용했고 흑인들은 흉성과 두성을 주로 사용했다. 물론 모두가 일률적인 발성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몇몇의 흑인들은 매우 클래시컬한 발성을 사용했고 오히려 유니크하게 느껴졌다. 렌트의 오리지널 작품에서는 백인으로 나왔던 역할이 흑인으로 바뀌었는데 나중에 한국에 와서 들은 오리지널 트랙과 비교해서 듣는 재미가 있었다. 이는 캐릭터의 성격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뮤지컬 북오브몰몬 에는 스토리상 백인들이 주로 등장했는데 발성보다는 말하듯이 노래하는 배우들이 많아서 대사와 노래의 경계가 옅어진 트렌드도 엿볼 수 있었다.
이러한 나의 감상평은 대학강사가 되었을 때 내 학생들에게 발성비교 수업의 자료로 쓸 수 있었다. 직접 내가 보고 듣고 한 것 경험을 바탕으로 했기에 어느 때보다 학생들이 집중해서 듣는 모습이 보였다. 모든 것에는 진심이 담기면 통하는 법이다. 수업의 막바지에는 발성을 뛰어넘은 진정성 있는 음악의 중요성도 강조하는 형식적인 교수의 멘트를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