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벅 닉네임

by 정자까야

겨울씨.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해요?


어떻게 잊을 수가 있어요. 그 때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 웃겨요.


겨울은 그 때가 떠올랐는지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시간이 좀 됐긴 했죠. 제가 얘기했었나요? 그건 실수였다구요. 여름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랬나요? 잘 모르겠어요. 세부적인 것까진. 그저 그 장면이 너무 선명해서..나머지가 가려졌나봐요.


친구들끼리 스벅에 간 적이 있었죠. 그 매장은 하도 넓어서 직원이 닉네임을 부르지 않고 벽면에 스크린을 띄워 닉네임을 쏴줬죠. 재미있는 닉네임이 뜨면 사람들이 웃곤 했어요.


여름은 당시를 회상하며 말을 이었다.


남자 놈들끼리 할 일도 없고..누군가가 제안했어요. 닉네임 띄워 반응 제일 별로인 사람이 저녁 술 사자고.


네..벌써 흥미진진하네요. 겨울은 벌써부터 웃을 준비가 돼 있는 듯 했다.


겨울이 두 손으로 턱을 괴고 여름을 바라보는 통에 여름은 숨이 턱턱 막혔지만 꾸역꾸역 말을 이어갔다.


제가 그 때 그 닉네임으로 바꿨는데..모르겠어요. 왜 그 코메디 프로가 갑자기 생각났는지..왜 또 저한테는 그게 그 때 그리 웃겼는지..여하간 마침 제 성도 김씨라서..그렇게 올렸는데..


술을 사셨군요..겨울이 읊조렸다.


네..반응이 참담했어요. 커피 받으러 가는데 어디 숨고싶은 느낌. 정말 손발이 다 오그라들고..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후회만 하다..정작 제 친구들만 박장대소했죠. 반응이 썰렁한게 너무 잼있었던거에요.


아무튼 그리고 나서 며칠 후에 출장 때문에 들른 곳에서..


저를 보신 거군요..


그리 된 거죠.


그 참담한 닉네임을 왜 안바꾸셨나요? 겨울은 웃으며 물었다.


부러 그랬겠습니까. 아마 그 날 머릿속이 하얘지고 바로 술 마시고 정신 없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근데 그게 왜 그렇게 웃겼어요? 네이밍한 곳에서는 너무 썰렁했는데..


모르겠어요. 저도 옛날 코메디 프로 자주 봤거든요? 일부러 찾아보기도 하고..그래서 여름씨가 지은 닉네임 뒤의 구절이 리드믹하게 연상되는거에요. 그 순간 너무 웃겨서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어요. 동료들이 왜 저러냐는 표정이고 손님들도 많았는데..한번 터진 웃음이 자제가 안되더라구요.


겨울은 그 때가 연상됐는지 만면에 미소를 머금었다.


제가 커피 받으러 갈 때 어땠는지 알아요? 처음엔 절 부른지도 몰랐어요. 평소 쓰는 닉네임이 아니라서. 핸드폰에 알림 뜬 이후에나 알았죠. 아뿔싸..변경 안했구나..망했네..당황해서 갔더니 겨울씨가 제 얼굴을 빤히 보며 다시한번 그 닉네임을 불러서..그리곤 또 자지러지게 웃으셨죠.


그랬었네요. 저 그 날 1년치 웃을 거 다 웃었던 것 같아요..


네..그 때 그 뜨거운 커피를 아아 마시듯 목에 털어버리고 매장 나왔죠. 두 번 다시는 안 갈거라 생각했는데..


여름은 허탈한 듯 웃었다.


두 번 다시 그 닉네임을 쓰진 않으셨죠. 전 좀 서운했어요. 겨울은 당시를 회상하는 듯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네..닉네임은 바꿨지만 그 매장이 제일 자주가는 매장이 됐죠. 집에서 정말 멀었는데..


그게 벌써 몇 년 전인가요. 옛날 얘기하니 좋네요. 여름씨 다시 봐서도..좋구요.


여름은 시간을 수년 전 그날로 돌린 것 같은 현기증을 느꼈다. 그간의 시간..회사를 다니고 많은 사람을 만났다. 자격증도 두어개 땄다. 그런데 지금 누군가와의 커피 한 잔으로 나름 열심히 살았던 세월의 흔적이 무색해졌다. 도대체 그런 것들이.. 지금의 자신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여름은 그저 겨울을 넋 놓고 바라봤다. 하늘이 준 두번째 인연에 더없이 감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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