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화목을 꿈꿉니다
이팝나무는 30미터까지 자라며, 벚꽃이 지고 난 뒤에 5월에 녹색 잎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하얀 쌀밥 같은 꽃이 가지마다 소복소복 뒤집어쓰는 나무입니다. 꽃은 가느다랗게 넷으로 갈라지는 꽃잎이 모여 있으며, 꽃잎 하나하나는 마치 뜸이 잘든 밥알 같습니다. 멀리서 보면 쌀밥이 나무에서 피어나는 것을 연상케 합니다. 그리고 여름이 시작되는 입하(立夏)에 꽃이 핀다고 하여 입하목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지구가 더워지고 있는 기후 위기인지 봄비가 내린다는 곡우(穀雨 : 4월 20일)에 꽃이 피기 시작했네요. 꽃을 마냥 즐거워하기가 어렵네요.^^
산업도시가 만들어지기 전, 마을 어귀에는 커다란 이팝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신령님'처럼 모셨지요. 늦봄, 모내기 철이 다가오면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온통 이 나무의 가지 끝에 머물렀습니다.
"올해는 이팝나무 꽃이 구름처럼 소복하게 피었구먼! 풍년이 오겠어. 이밥(쌀밥) 배불리 먹겠구나!" 하고 기뻐했습니다. 반대로 꽃이 시원치 않으면 "에고, 올해 농사는 물 건너갔네" 하며 걱정의 한숨을 내쉬었죠.
신기하게도 이팝나무는 물을 아주 좋아해서, 비가 충분히 내려 농사짓기 좋은 해에는 꽃을 활짝 피웠고, 가뭄이 들 것 같은 해에는 꽃을 제대로 피우지 못했습니다. 꽃이 피는 상태를 보고 한 해 농사를 점쳤다고 합니다. 농부들에게는 기상청보다 정확한 풍흉의 지표였던 셈입니다.
지금은 벚꽃이 진 후에 봄과 여름을 이어주는 도심 가로수로 많이 식재되고 있습니다. 시골 마을의 듬직한 예언자로 살았던 이팝나무가 왜 도시로 상경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도시 녹지 정책자들의 고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도심 가로수로 많이 식재되는 벚나무는 예쁘긴 하지만, 꽃이 너무 빨리 지고 병충해 약하며, 은행나무는 가을 노란 단풍은 멋지지만, 열매의 냄새가 감당이 안 되었죠. 그래서 공해에도 강하고, 병충해도 잘 이겨내면서 꽃이 피면 도시를 하얀 눈이 내려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아서 이팝나무를 도시로 이주시켰습니다. 정책적 결정입니다.
그래서 이팝나무는 도시의 대로변부터 아파트 단지 안까지, 도시의 가장 뜨거운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삽니다. 매연과 소음 속에서도 이팝나무는 있는 힘껏 살아가고 있습니다. 5월의 뙤약볕이 내리 잴 때, 마치 고슬고슬하게 잘 지어진 쌀밥 같은 꽃송이들을 터뜨리죠. 이제 도시 사람들은 그 꽃을 보며 풍흉을 점치지는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하겠죠.
"와, 벌써 이팝나무 꽃이 폈네? 이제 진짜 여름인가 봐."
농부들의 배고픔을 달래주던 '쌀밥 나무'는 이제, 바쁜 도시인들의 삭막한 눈을 달래주면서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가장 화려한 전령사가 되었습니다.
농경사회가 아닌 정보화사회에서 이팝나무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자리 잡을까요? 자연의 질서를 느낄 수 있는 나무였으면 좋겠습니다. 바람이 불면 이팝나무는 오늘도 하얀 꽃잎을 흩날리며 도시인들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당신의 오늘 하루도, 갓 지은 쌀밥처럼 따뜻하고 풍요롭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