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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도영 May 03. 2022

보이지 않았던 세계의 장막을 걷다

내가 만난 유니콘들—2

그리스가 모든 문명의 시초인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니다. 그리스 이전에 바빌론이 있었다.


 이 사실을 알려준, 아니 체감하게 해 준 것은 아서 선생님이었다. 그는 폴란드인이었지만, 내가 그를 만난 것은 강원도 산골짜기에서였다. 왜 하필이면 한국이었냐고 물어봤을 때 돌아온 그의 대답은 정말 강렬해서, 그 대답을 들은 지 7년이 된 지금도 이렇게 글로 옮길 정도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서 마당 울타리에 세계지도를 붙여놓고, 눈을 감은 채로 다트를 던졌어. 아무 데나 걸려라, 했는데 던지고 눈을 떠 보니까 북한에 맞은 거야. 너무 놀라서 다트를 바로 밑으로 내렸지.”


 그의 과학사 수업은 아시아, 유럽, 중동 세 지역으로 나뉘어 돌아갔다. 학생들은 돌아가면서 일주일에 한 지역씩 맡아서, 그 지역의 과학사 주제를 하나 골라 발표했다. 그때까지 접한 세계사라고는 유럽사밖에 없었던 우리는 비유럽 지역, 특히 중동의 역사를 조사해야 한다는 말에 당황했다. 일반적인 역사도 아니고 과학사였다.


 어디서부터 자료를 찾아야 할지 감을 못 잡을 거라고 예상했는지, 아서 선생님은 교실 벽 한켠에 과학사 도서들을 잔뜩 쌓아두었다. 대부분은 한 권 잡아들고 옆 사람 머리를 내리치면 즉사할 듯한 두께였고, 그중에는 책장을 열면 오래된 책 특유의 쿰쿰한 냄새가 피어오르는 것들도 많았다. 게다가, 아아, 고통스럽게도 그것들은 모두 영어책이었다. 그런데 다른 상황이었다면 절대로 자유 의지로 펼쳐보지 않았을 그 책들에 쓸 만한 정보가 꽤 있었다. 실은 정보가 아주 많았다.


 그 많은 정보 중에, 메소포타미아에 살던 바빌로니아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들은 60의 약수가 여러 개라는 데서 착안해, 60진법으로 숫자를 세고 시간을 쟀다고 했다. (지금도 1분이 60초이고, 한 시간이 60분인 것은 그들에게서 이어받은 전통이다.) 그들은 자체적으로 달력을 만들고, 행성의 운행도 관측해서 기록했다. 그들이 얼마나 옛날 사람인지를 감안하면 이 이야기는 좀 더 놀랍게 다가온다. 우리에게 로마인들이 ‘진짜 옛날 사람’이듯이, 로마인들에게 초기 바빌로니아 인들은 몇천 년 전에 살던 고대인이었으니까.

바빌로니아의 천체 관측 및 계산 과정이 적힌 점토판. 이러한 점토판들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이 ‘천체 점토판 시리즈’는 MUL.APIN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 The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하지만 고대인에 대한 과학사적 ‘설화’ 대부분이 그렇듯이, 그들에 대해서는 과대평가된 점이 많았다. 그들의 달력은 결코 정확하지 않았고, 어느 해가 윤년이 될지를 결정하는 것은 과학자—정확히는 측정과 계산을 겸하던 사제—들이 아니라 왕이었다. (왕 입장에서는 윤년이 과세와 엮여 있는, 아주 민감한 문제였으니까.) 그리고 그들이 측정한 동지와 하지의 낮 길이도 정확하지 않았다. 그건 실제 측정값이라기보다는, 다른 계산을 쉽게 하려고 예쁘게 맞춘 기준값에 가까웠다. 그들의 행성 위치 기록은 곧잘 뜨악한 예언으로 이어졌다. ‘화성이 여기를 지날 때면 왕의 기운이 쇠해진다.’ 그 예언이라는 것도 관찰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상상을 기반으로 한 추측이었다. 그들의 수학은 학문이기보다는 계산이었고, 그들의 천문학은 점성술에 가까웠다. 그들이 만든 것을 과학이라고 부르려면, 인과관계 자체를 과학이라고 보는 관대함이 필요했다.


 이 모든 기록, 분석, 연구 결과가 아서 선생님이 교실 한켠에 쌓아놓은 책들로부터 쏟아져나왔다. 책장 속에 묻혀있던 이야기들은 파헤치면 파헤치는 대로 솟아났다. 바빌로니아 전공 과학사학자들은 그 고대인들이 진흙판에 새겨놓은 쐐기문자마저 해독해서 영어로 번역해 놓았다. 정말 놀라운 것은 바빌로니아 인들이 쌓은 지식 체계나, 그 체계에 대한 부풀려진 소문이 아니고 그 많은 정보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이었다. 아서 선생님은 이 무관심에 대해 이질감을 느끼기를 바라고 있었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해 놓은 게 이렇게 많은데, 그에 대한 연구 결과가 이렇게 많은데, 그전까지 한 번도 중동의 과학사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게 너무 이상하다고 느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목표와 접근 방식은 적중해서,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7년 뒤, 그 느낌이 단순히 개인적인 느낌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건 이미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STS) 학자들이 유럽 중심주의와 식민지 과학이라는, 전문적인 냄새가 폴폴 나는 단어들로 분석해 놓은 현상이었다. 지구상에 과학이라는 게 존재하는 곳은 유럽밖에 없다는 관념, 다른 곳의 과학은 연구할 가치가 없다는 믿음은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하나의 현상이었다.


 그렇게 전문적인 단어들로 이 현상을 분석한 문장들을 여러 번 읽어도, 그 문장들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STS 교과서 중의 고전인 <과학기술학 편람>은 쐐기문자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니까. 하지만 그 글을 읽을 때면 아서 선생님의 책들에서 나던 곰팡내가 다시 피어오르는 듯하다. 그리고 그때 그 책들을 읽으면서 몸에 각인된 사실이 떠오른다. 그리스 이전에 바빌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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