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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도영 Apr 28. 2022

학생부장의 얼굴을 한 유클리드

내가 만난 유니콘들—1

 모든 중학교에는 초인적인 능력으로 화장 여부를 감지하는 학생부장이 한 명씩 존재한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도 한 명 있었다. 그 시절에는 마스크 의무령 따위는 없었기에 학생들의 입은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고, 틴트를 바르기라도 하면 K 선생님은 바뀐 입술 색을 귀신처럼 알아봤다. 아무리 색이 연해도, 아무리 자연스러워 보여도 선생님이 물티슈를 쥐여 주면서 닦으라고 명령하면 분홍색이 묻어나왔다.


 K 선생님은 틴트 색깔을 잘 알아볼 뿐만 아니라 발성까지 좋았다. 화장한 걸 들키고 도망치는 학생에게 선생님이 “야!”라고 소리치면 복도에 메아리가 쳤다. 야아 아아 아아 아아……. 게다가 선생님은 청소 검사에서도 한 치의 양보가 없었다. 우리 학교는 청소에 진심인 곳이었기에 매 학기 한 번씩 대청소의 날이 있었고, 그날은 한두 시간 정도 늦게 집에 갈 각오를 해야 했다. 그렇게 남아서 몇 시간 동안 청소한 교실에서도 K 선생님은 때가 벗겨지지 않은 구석을 찾아냈고, 자비 없는 재검사를 실시했다. 학생부장에게 필요한 모든 자질이 K 선생님에게 있었다. 그러나 교육부가 설계한 학생부장용 AI 같았던 K 선생님의 본업은 따로 있었다. 선생님이 가장 잘 하는 건 수학, 그중에서도 기하학이었다.


 족발의 원조를 따지듯이 기하학도 원조를 따질 수가 있는데,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유클리드 아저씨를 만나게 된다. 유클리드의 저서 “원론”은 총 열세 권의 책으로 이루어져 있는데—패닉하지 말자. 깔려 죽을 두께 아니고 열세 권을 다 합쳐서 한 권으로 합본할 수 있는 정도다—이중에서도 1권부터 6권까지가 평면 기하학에 대한 책이다. “원론”은 정의, 공리, 공준들을 나열하면서 시작한다. 정의는 “정의란 무엇인가” 할 때의 그 justice가 아니라 definition이고, 공리는 참인 게 너무나도 당연한 명제들이다. 공준은 맞는 것 같긴 한데 증명할 수가 없어서 그냥 참이라고 치고 넘어가기로 한 명제들을 말한다. 이 당연한 정의, 공리, 공준들로부터 유클리드는 결코 당연하지 않은 정리들을 이끌어낸다.


  K 선생님은 그 서울 산자락에 처박힌 중학교의 유클리드였다. 선생님은 유클리드의 기하학을 그대로 우리에게 전수했다. K 선생님의 수업이 시작되면 칠판이 정의와 공리로 가득 찼다. 가끔은 칠판에 적기 전에 우리에게 질문하기도 했다. “삼각형의 정의가 뭔지 아는 사람?” 나는 거기다 대고 각이 세 개인 도형이라고 대답했다가, 15년 동안 삼각형이 뭔지도 모르고 산 인간이 되었다. 삼‘각’형이라는 이름과는 대조적으로, 삼각형의 정의는 ‘세 변으로 이뤄진 도형’이었다. 그럼 애초에 삼변형이라고 부를 것이지 왜……?


 필요한 최소한의 정의와 공리를 다 훑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정리였다. 정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등변삼각형은 두 각의 크기가 같다, 이등변삼각형의 나머지 한 변—이등변의 그 ‘등변’에 속하지 않는 변—을 수직이등분하는 직선은 꼭짓각—두 등변으로 이루어진 각—을 이등분한다, 정삼각형은 세 각의 크기가 같다……. 얼핏 보면 자명하지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그 정리들 모두가 그때까지 배운 것들만으로 증명이 됐다. 선생님은 증명에 쓰이는 공리와 정의, 그리고 지난 수업에서 이미 증명한 정리들을 구분하기 위해서 색색깔의 물백묵으로 글씨를 썼다. 그것들은 뻔한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흰색 물백묵이 아니었다. K 선생님이 특별히 제조한 그 물백묵들은 파스텔톤이었다. 레몬색, 민트색, 라일락색, 벚꽃색 등등. 하나같이 한국 중학교 수학 수업보다는 뉴욕 한복판의 컵케이크 가게에서 아이싱으로 쓰는 데 더 어울릴 색들이었다. 하지만 그랬기에 선생님이 한 증명을 완성하고 나면, 마치 컵케이크를 집듯이 그 증명을 손에 잡을 수 있을 듯한 착각이 들곤 했다. 기하학 정리들이 컵케이크처럼 실재적이고 한 손에 쏙 들어오면서 예쁘기까지 한 무언가처럼 보였다.

 유클리드의 정통을 따르는 선생님의 모습에는 자랑스러움이 묻어났다. K 선생님에게는 기하를 전공한 데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보통 수학 하는 여학생들은 대수학 아니면 통계학으로 빠졌어. 근데 난 기하학을 했지. 기하를 항상 좋아했고, 그때도 이걸 제일 잘 했거든. 야구 골수팬이라서 통계학도 좋아했지만.” 나는 그런 선생님이 신기했다. 기하학 같은 이상한 분야에 자부심을 가져서가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한국의 평범한 중학교였고, 중학교들이 다 그렇듯이 학교 전체가 숙성된 매실처럼 매너리즘에 절어 있었다. 그저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살고, 지난 30년 지내온 것처럼 앞으로 30년 지내면 아무 문제도 없을 거라는 확신에 찬 곳이었다. 자부심이나 열정 따위는 필요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게 있으면 의도치 않게 굉장히 튀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 마찰 없이 적응하려면 열정은 숨기는 게 상책이었다. 그런데 자기 분야를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 있다니.


 유클리드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아마도 기원전 3세기 초 즈음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치하의 알렉산드리아에 살면서 수학 연구를 했을 거라고 추측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K 선생님의 삶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도 별로 없었다. 선생님은 학생부장이었고, 그래서 모두가 그녀를 무서워했다. 가능하면 피하는 게 좋은 선생님. 그게 우리가 K 선생님을 생각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K 선생님의 기하학에 자부심을 감지한 순간부터, 나는 그 열정에 부응하고 싶었다. 모두가 매너리즘에 빠진 곳에서, 혼자 열정을 불태우기란 힘 빠지는 일이니까. 주관 없는 곳에서 주관을 가지고 살기란, 그 주관이 꺾이기 쉽다는 점에서 위험한 일이니까. 그래서 수학 책을 찾아 읽었고, 책 속에서 새로운 정의가 등장하면 다섯 번씩 읽으면서 외웠다. 그러던 중 한 수업 시간에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평행사변형에 대한 웬만한 정리는 다 다뤘고, 이제 원에 대해 진도를 나갈 차례였다. 선생님이 레몬색 백묵을 들고 외쳤다. “자, 이중에 원 정의 제대로 아는 사람?” 내가 손을 들고 말했다. “평면 상의 한 점을 중심으로 동일한 거리만큼 떨어진 점들의 집합이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선생님이 씩 웃으면서 소리쳤다. “그렇지!”


 선생님이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때 직감했다. 나도 저렇게 살게 될 것임을. 아무도 이해 못 해도 자기가 택한 일을 있는 힘껏 좋아하고, 그러다 가끔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면 전기가 통하는 듯한 희열을 맛보면서 살아갈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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