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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ja Nov 29. 2021

인문학으로 파헤쳐 본 겨울왕국2

 얼마 전 디즈니 플러스가 한국에 상륙했습니다. 2시간 앉아서 영화를 보는 것조차 힘들어서 영화를 잘 보지 않는 저에게는 그다지 상관없는 일이지만, 디즈니를 생각하니 제가 무척 즐겨보았던 영화 <겨울왕국>이 생각났습니다. <겨울왕국>과 <겨울왕국2> 모두 천만 이상을 기록한 흥행 영화지만, 주변 사람들의 평을 들어보면 <겨울왕국2>가 더 재미없었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저도 물론 재미는 <겨울왕국>이 더 있었던 것 같지만, <겨울왕국2>가 훨씬 인상 깊었습니다. 인문학적으로 여러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죠. 


 인문학적으로 <겨울왕국2>를 깊게 알아보기에 앞서 <겨울왕국>과 <겨울왕국2>의 인문학적 배경을 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겨울왕국>시리즈가 현실의 어느 지역을 본 따서 만든 지 알아야 역사나 문화 등 인문학 이야기와 섞어 설명할 수 있으니까요. 협곡 속에 자리한 아렌델 왕국은 항구에 배가 가득한 협곡 안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는 찬바람이 부는 북쪽의 나라들에서 자주 보이는 것으로 바람에 대항해 협곡을 방패삼아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럼 이 협곡은 어디서 생긴 것일까요? 이미 북쪽 산에 빙하가 잔뜩 있는 것을 <겨울왕국>에서 보았을 겁니다. 이 빙하가 수 만년에 걸쳐 산 아래로 내려오면서 협곡을 만든 것이죠. 이런 지형을 ‘피오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협곡에 빙하가 녹은 물이 채워지면서 우리가 보는 아렌델과 같은 지형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렌델과 같이 피오르 안에 항구를 만들어두고 그곳에 모여 사는 것은 북유럽의 전통적인 문화 경관이죠. 또한, 눈이 쌓여 지붕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지붕의 경사를 급하게 한다거나 <겨울왕국>의 대관식 장면에서 나오는 특이한 기둥인 ‘메이폴(maypole)'의 모습은 북유럽의 축제 때 쓰는 메이폴이기도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디즈니는 아예 노르웨이를 배경으로 <겨울왕국>을 만들었다고 공식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럼 이제 <겨울왕국2>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도록 하죠. <겨울왕국2>의 스토리 전개에서 가장 큰 대립구도는 무엇일까요? 엘사와 안나? 엘사와 정령들? 전부 아닙니다. 아렌델과 노덜드라인 입니다. 환경을 파괴하고 이득을 취하기 위한 아렌델의 배신은 아렌델과 노덜드라인 사이에 씻을 수 없는 감정의 골을 만들어두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득을 본 것은 물론 아렌델이고요. 이 말에서 영화적 상상력을 들어내면 백인 국가가 원래부터 살고 있는 원주민을 쫓아내고 이득을 보았다는 어디에서나 쉽게 들어봤을 이야기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겨울왕국2>의 배경인 노르웨이에서도 이런 일은 일어납니다. 19세기 중반 노르웨이에서 소수민족 사미인에 대한 차별정책과 문화탄압을 시작한 것이죠. 이는 술 강매와 인간 동물원전시까지 이어져 사미인은 말 그대로 비인간적인 대우를 당했습니다.


 이런 차별정책과 문화탄압은 사미인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방식을 없애고 노르드계 민족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방식으로 통합시켰습니다. 그들의 전통 종교를 믿지 못하게 하고 루터파 크리스트교로 개종시키고, 그들의 전통 언어를 없애고 노르웨이어를 모두 사용하게 했습니다. 나라를 통합시키고 효율적으로 한 공동체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이런 문화의 획일화가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별 문제 없이 살고 있는 사람들을 피해를 주면서까지 강제로 지배하는 모습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절대 좋다고 동의하지 못할 제국주의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효율과 진보라는 이유로 문화의 다양성을 없애는 폭력적인 독재 그 자체죠. 다행히도 요즘은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소수의 사미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죠.


 그렇다면 탄압당했던 사미인들의 문화는 무엇일까요? 전부 다 설명할 수는 없으니 <겨울왕국>의 몇 장면을 가져와 간단히 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노덜드라인들이 다수의 순록을 유목하는 모습을 영화에서 보셨을 겁니다. 사미인도 마찬가지로 순록을 유목하며 살아갑니다. 다만, 겨울에는 순록을 사육하며 마을에 머물고, 여름에는 풀이 풍부한 강 연안, 바닷가, 호수 근처 등으로 유목을 위해 이동하는 정주생활과 유목생활이 섞인 삶을 삽니다. 이렇게 유목한 순록은 썰매를 이끌어 짐을 날라줍니다. 또한, 순록의 가죽은 옷으로, 순록의 고기와 피는 살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먹거리로 쓰입니다. 이렇게 순록 자체가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보니 야생순록을 공경하는 관습을 가지고 있었고, 더 나아가 순록 자체를 숭배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더해 사미인들이 숭배하는 무수한 신들 중 순록 무리를 관장하는 신인 로우트-호직(Лоут-хозик)은 ‘순록의 주인’이라는 의미로, 사미인들의 무한한 존경을 받습니다.


 로우트-호직 말고도 사미인들은 다양한 신을 모십니다. 많은 자연물들을 신격화하여 신을 모시죠. <겨울왕국2>에서 정령들을 기억하시나요? 바람의 정령 게일, 물의 정령 나크, 불의 정령 브루니, 땅의 정령 바위 거인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노덜드라인들에게 신성시되고 있었습니다. 사미인들의 이런 행위와 방금 말한 <겨울왕국2>의 장면은 자연물을 신으로 모시는 애니미즘의 형태를 영화화시킨 모습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애니미즘은 <겨울왕국2>의 'All is found'라는 곡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Where the North wind meets the sea

 북쪽의 바람이 바다와 만나는 곳

 There's a river full of memory

 그 곳에 기억으로 가득한 강이 있다네

 Sleep, my darling, safe and sound

 잘 자거라, 우리 아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For in this river, all is found

 이 강 안에서는,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단다.

 …

 Where the North wind meets the sea

 북쪽의 바람이 바다와 만나는 곳

 There's a mother full of memory

 그 곳에 기억으로 가득한 어머니가 있단다

 Come, my darling, homeward bound

 어서 오렴, 아가야, 집으로 돌아오렴 

 When all is lost, then all is found

 모든 것을 잃을 때,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단다


 노래의 각각의 연에서 2번째 행이 대구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겁니다. 강과 어머니를 동일시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죠. 노래에 나온 그대로 해석해서 엘사를 낳은 어머니가 강이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강이 어머니라는 것은 비유로 강이 모든 기억을 가지고 포용하고 있는 신이라는 것을 어머니로 표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연물을 어머니와 같은 이미지를 가진 여성신으로 표현한 것은 사미족의 종교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대지 위에 거주하는 여성 수호신인 마타리카와 그의 딸들 사라카, 욱사카, 욕사카가 그 예로 사미인들이 발을 딛고 살아가는 어머니 대지를 신격화하여 표현한 것입니다.


 아렌델의 욕심으로 인해 생긴 문제, 댐을 만들어 자연을 파괴하고 정령들을 화나게 한 것은 안나와 엘사의 노력으로 별 피해 없이 해결합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선조들이 과거에 저지른 짓을 해결하려는 자주적인 안나의 모습과 정령과 대화하며 정령과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하고 평범한 사람과 정령 사이를 중재하는 엘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안나보다는 엘사의 모습에 집중해보면 신과 인간 사이를 중재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미인들은 이렇게 천상세계와 인간의 중개자로 다양한 의식을 주도하고, 병을 고치며, 행방불명된 순록을 찾는 등 사미인의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를 ‘노이드(Нойд)’라고 부릅니다. 아마 우리나라 말로 바꾸어 말하면 무당 정도가 되겠지요.


 이런 사미인들의 삶의 모습에 대해 누군가는 원시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을 신격화하며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에서 환경을 마구 파괴하는 현대의 문제들을 해결할 하나의 방안을 찾습니다. 더 나아가 강력한 문화탄압을 이겨내고 끈끈한 유대감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유지하며 전통 문화를 지켜나가는 모습은 ‘효율’과 ‘발전’이라는 단어 아래에 무시되어 왔던 다양한 소수의 의견과 문화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겨울왕국2>에서 댐을 파괴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장면은 많은 사람들에게 ‘환경 보호와 관련된 메시지를 던지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합니다. 하지만, 그 장면에 대한 일차원적인 해석 이전에 깔려 있는 노덜드라인의 문화적 배경인 사미인의 문화와 그들의 문화에 대한 주인공인 엘사와 안나의 긍정적인 태도를 살펴본다면 왜 환경 보호에 대한 메시지가 나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환경 보호라는 메시지를 넘어 원주민들을 핍박했던 제국주의적이고 폭력적인 정책을 펼쳤던 노르드계 민족의 과거에 대한 비판 또한 깔려 있음을 알 수 있죠. 더 나아가면 현재 소수민족을 권력으로 탄압하는 무수한 정부들에 대한 비판까지도 이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겁니다. 아렌델과 노덜드라인, 그리고 정령으로 대표되는 자연이 화합하는 모습을 마지막 장면에 넣으면서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것을 통해 위의 문제 제기와 비판을 통해 나타나 문제들을 해결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합니다.


 <겨울왕국2>는 여러 인문학적 내용과 메시지를 포함하려다 보니 <겨울왕국>보다는 조금 재미가 없다는 평이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천만 명 이상이 볼 정도로 꽤 크게 흥행했음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내용들을 담아내면서도 재미를 잡아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겨울왕국>이 늘 디즈니 시리즈들에서 빠질 수 없었던 여성과 남성의 러브스토리를 최우선으로 놓지 않고도 재미와 감동을 다 잡을 수 있는 디즈니의 역량을 보여주었다면 <겨울왕국2>는 이전 이상으로 인문학적 내용과 메시지를 재미와 감동과 함께 전달하려는 디즈니의 시도를 보여주었으며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그다지 많이 보지 않는 저마저도 디즈니의 다음 영화에 대해 기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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