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가 뭔가요?

by baekja

얼마 전의 일입니다. 방에서 쉬고 있는데 어머니가 급하게 제 방으로 들어오시더니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사람을 아냐고 물으시더군요. 안다고 대답했더니 지금 TV에서 그 사람에 대해 나오고 있으니까 볼 생각이 있으면 보라고 하시기에 뭔 프로그램인가 싶어서 TV 앞으로 갔습니다. TV에서는 <한국의 미>를 제목으로 KBS1 역사스페셜을 방영하고 있었습니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한국의 미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무척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청했습니다. 근데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한국의 미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부순다니. 도대체 우리가 한국의 미에 대해 어떤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걸까요?


‘미美’라는 서양으로부터 들어온 개념입니다. 원래 조선에서는 ‘미’라는 단어가 확실히 정의되지 않았습니다. 당장 20세기 초반에 일본을 통해 건너온 ‘미술’이라는 단어에 대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당장은 일제의 식민지 상태였으니 한국미나 한국미술에 대해 적극적으로 연구하기도 힘들었습니다. 당연히 한국미술사를 기술하며 한국미를 맨 처음 논한 이는 한반도에서 자라난 이가 아니라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일본인이었습니다.


중국 도자기는 형태에, 일본 도자기는 색채에, 한국 도자기는 에서 그 특징과 미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아니면 ‘백색의 미’나 ‘비애의 미’라는 말은 들어보셨나요? 앞의 말들 중 하나 정도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인으로 자라났다면 들어봤을 법 합니다. 사실 앞의 말들은 모두 야나기 무네요시가 한국미라고 말한 것들입니다. 그는 일제의 광화문 철거를 강력하게 비난할 정도로 한국미술에 관심이 많았으며 1922년에는 ≪조선과 그 예술≫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 무네요시의 이론은 현재까지도 대중들이 많이 알고 있고, 한국의 미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지만, 이미 1960년대부터 학계에서는 한국미술의 다양한 미를 고작 몇 단어 안에 포괄하여 설명하려고 했다는 이유로 비판받고 있었습니다. 또한, ‘비애의 미’라는 단어에서 한국사에서 일부에 불과한 식민지 조선의 모습만 너무 반영되었다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그럼 식민지 시대에 한국인의 의견을 대변한 한국인 학자는 없었을까요? 아닙니다. 미술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 쯤 들어봤을 한국미 연구에 대한 선구자가 있습니다. 경성제국대학에서 미학을 공부하고 1930년대부터 한국미술사에 관한 논문을 다수 발표한 고유섭입니다. 그는 한국미의 독자적인 특징으로 첫째, 한국인의 상상력의 풍부함을 들었습니다. 상상력이 풍부하기에 수학적 비례를 넘어선 다양한 작품들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죠. 둘째로는 한국미의 ‘구수한 특성’을 이야기했습니다. ‘구수하다’는 것은 순박淳朴한 데서 오는 큰 맛을 말하죠. 그는 이런 한국미의 특징을 정리해서 ‘질박質朴(꾸민 데가 없이 수수하다)’, ‘담소淡素(담담하고 소박하다)’, ‘무기교의 기교’라 칭했습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을 써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으며 고유섭의 제자이기도 한 최순우 또한, 한국미에 대해 고심하고 많은 글을 남겼습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가장 앞에 실린 글인 <우리의 미술>에서는 한국미술을 ‘온아와 간소미’, ‘건박한 단순미’, ‘질소미質素美(꾸밈이 없고 수수하다)’라는 말로 표현하였습니다. 그의 다른 글까지 살펴보면 그가 생각하는 한국의 아름다움은 ‘간소미簡素美(간략하고 소박하다)’로 집중되죠.


한국미를 설명한 일본의 학자와 한국의 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대부분 자주 들어본 이야기이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한국미의 그것입니다. 하지만,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다양한 미술품을 만들어온 한국미술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한국미를 너무 몇 개의 단어로 일반화시키려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인 최초로 한국미술을 체계적으로 저술했다고 할 수 있는 ≪한국미술사≫(1968)를 쓴 김원룡은 “시대나 지역을 무시하고 한국미술의 특색을 공식화해 버리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며 시간적인 분할고찰이 앞서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시대에 따라 한국미술사를 나누어 고찰해보고, 시대마다 다른 다양한 한국미의 기반에 깔려있는 공통점을 찾아냈습니다. 그는 공통점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재현하려는 자연주의요, 철저히 아(我)의 배제이다.” 한 단어로 말하면 자연주의라는 건데, 이 자연주의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재현한다는 의미는 말 그대로 서양의 사실주의(realism)처럼 대상을 보고 그대로 표현한다는 말입니다. 아의 배제는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의미하며, 이분법적으로 자연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자신을 같은 하나로 생각하는 ‘일원론적 자연관’을 의미합니다. 김원룡은 이 아의 배제를 풀어 ‘자연적 관조를 존중하는 한국적 자연주의’라 표현했습니다.


이렇게 김원룡이 한국미로 정의한 한국적 자연주의는 1970년대 화단에서 가장 널리 한국미로 받아들여졌으며, 이는 1970년대 한국현대미술을 풍미했던 단색화의 이념적 근거가 됩니다. 하지만, 한국적 자연주의는 너무 추상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1980년대 강렬한 민중운동의 기류에 힘입어 민중의 힘과 사회적 비판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해학과 풍자가 한국미의 중심에 섰습니다. 덩달아 탈춤, 무교巫敎, 민화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민중운동이 사그라들고 민중의 힘과 해학, 풍자가 한국미의 중심에서 내려오게 됩니다.


이후 한국미는 확실하게 어떤 단어로 정의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정말로 모든 시대 모든 지역의 한국미를 나타내는 한국예술이 모두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죠. 자연히 다양한 한국예술이 나타내는 다양한 아름다움이 모두 한국미의 범위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각각의 예술 간의 경계가 무너지며 한국미술을 중심으로 이야기되던 한국미가 본격적으로 한국예술 전체 안에서 논의되기 시작했죠.


너무 다양한 의미로 한국미가 설명되다보니 다른 나라와 차이가 없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며 굳이 한국미를 정의해야 하냐고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 한반도라는 같은 공간 내에서 같은 자연환경과 문화를 공유하며 만들어진 한국의 아름다움은 다른 나라에서 특징적으로 보이는 아름다움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명한 차이에서 나타나는 한국미 만의 특징은 한국미를 논의할 필요성을 증명해줍니다.


한국미에 대해 쭉 설명해봤습니다. 이쯤 되면 이런 질문을 할 만합니다. “그래서 한국미가 뭔가요?” 글쎄요… 무수히 많은 석학들이 내린 정의조차 한국미 전체를 말하지는 못했는데 저라고 가능할까요? 그냥 조금 쉽게 정의를 내려 보겠습니다.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포함한 지역 내에서 한국의 문화와 함께 자라온 한국인이 생각하는 아름다움.” 어떤가요? 괜찮은 정의 같아 보이나요? 너무 범위가 넓다고요? 그래서 이제부터 제가 생각하는 한국미를 말해볼까 합니다. 한국이라는 곳에서 한국 문화를 영유하는 한국인인 저의 일상 속에서 말이죠. 한국예술 중에서 제일 좋아하고 그나마 잘 알고 있는 한국미술을 중심으로 일상 속에 숨어있는 한국미를 말할 생각입니다. 찾다보면 제가 생각하는 한국미가 조금 더 상세하고 정확하게 여러분에게 와 닿을 겁니다. 자, 이제부터 일상 속에 숨은 한국미를 찾으러 가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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