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왔습니다. 새해가 올 때마다 2021년에서 2022년으로 바뀌면서 바뀐 것들은 사실 없습니다. 하늘과 땅은 뒤바뀌지 않고, 해와 달은 서로 번갈아가며 뜨고 집니다. 우리의 삶 또한 큰 변화가 없죠. 학교에 가거나 직장을 가고, 혹은 여전히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집에서 수업을 듣거나 재택근무를 합니다. 앞만 보고 살아가며 피로함을 쌓는 삶이 계속됩니다. 이렇게 피로함을 계속 쌓다가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한계가 오면 사람은 고꾸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가끔 너무나 바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런 말을 건네주곤 합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심호흡을 한 뒤 고개를 들고, 하늘을 봐.”
이렇게 하는 순간 놀랍게도 겨울의 맑은 하늘이 보이고 이제야 좁은 시야가 넓어지며 주변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여유를 바탕으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될 겁니다.
저 또한 앞만 보고 달려가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 작년 1학기, 휴학을 하고 고시원이나 기숙사를 벗어나 집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휴학 후에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도 제 뒤를 바짝 쫓아오는 압박이 무척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러다 도서관을 오가는 길에 고개를 들어 청명하고 드높은 하늘을 보고 나서는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으며 부담감을 떨쳐낼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마주했던 하늘은 얇은 하늘색의 공간이 무한히 펼쳐진 가능성의 장이자 회색의 문명으로 둘러싸인 제 삶에 색채를 더해주는 문명과 반대되는 자연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늘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옛날 많은 이들은 바람이 불어오고, 비가 내리며, 해, 달, 별, 구름이 걸려있는 하늘을 신들이 사는 곳이라 생각했습니다. 단군 신화에서도 환웅은 땅에서 솟아오르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오죠. 그래서 많은 이들은 하늘에 기도를 하고 제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원하는 이상적인 삶을 이뤄주는 공간으로 하늘을 생각한 것이죠. 이제부터 살펴볼 하늘은 단군신화보다는 조금 뒷시대 사람들이 마주한 하늘입니다. 바로 고려 사람들의 하늘이죠.
‘높고 푸르고 또 맑은 하늘’, 최순우 선생이 청자상감운학무늬매병을 설명하며 묘사한 ‘고려의 하늘’입니다. 높고, 푸르고, 맑다. 사실 그냥 들어보면 우리가 보고 있는 하늘과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사실 고려 사람들과 지금 한국 사람들의 하늘이 같은 장소에서 보고 있기에 크게 다르지는 않겠습니다만, 대략 1000년이라는 시간의 차이는 두 집단이 생각하는 하늘의 의미가 달라지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글로만 읽어보면 별 차이 없어 보이는 고려의 높고, 푸르고, 맑은 하늘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고려의 하늘을 묘사했다는 고려청자를 자세히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 5대10국 중 하나였던 오월(吳越)의 멸망 이후 오월이 관리하던 월주요(越州窯)의 기술자들 중 일부가 고려로 건너와 청자 기술을 가르쳐줍니다. 그렇게 고려는 10세기 후반부터 청자를 생산해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때는 기술이 완전히 정착되지 못했던 때로 녹갈색을 띤 청자를 만들어냅니다. 대표적인 예가 청자 ‘순화4년’명 항아리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청자를 만들려는 시도를 하여 만들어진 자기(瓷器)이기 때문에 녹빛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 이 항아리가 청자로 불리고 있습니다. 시도 중일 뿐인 청자에 고려의 하늘을 온전히 담아내었다고 보기는 어렵겠죠. ‘천하제일 고려비색(天下第一 高麗翡色)’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빛깔을 담아낸 청자를 보려면 12세기 고려귀족문화의 전성기로 가야합니다.
서긍이란 사람이 고려의 정치, 문화, 생활 등을 모두 적어 송의 휘종에게 바친 ≪고려도경≫을 보면 송나라의 관요(官窯)인 여요(汝窯) 청자의 빛깔에 빗대어 고려청자의 빛깔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요 청자의 색깔은 ‘우후청천雨後晴天’이라 합니다. 말 그대로 여요 청자는 무척 옅은 파란색과 녹색이 오묘하게 섞인 비 온 후 가장 맑은 하늘의 색과 닮았습니다. 12세기 고려 순청자의 색도 이와 비슷합니다. 맑은 하늘의 깨끗한 푸르름을 잘 담아내고 있죠. 앞에서 말했던 높고, 푸르고, 맑은 하늘이 청자에 담겨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하늘을 잘 표현해낸 청자이기는 하지만, 여요 청자와 큰 차이는 보이지 않는 고려의 12세기 순청자를 통해서는 고려만의 높고 청명한 하늘을 찾아낼 수 없습니다. 고려만의 하늘을 담아낸 청자를 찾기 위해서는 13세기로 가야합니다.
12세기 말, 고려의 도공들은 도화지와 같은 맑은 빛깔의 순청자 위에 더욱 아름답고 세밀한 표현을 하기 위해 한 기법을 개발합니다. 바로 자기의 표면을 파고 태토(胎土)와 다른 색의 흙을 넣어 굽는 상갑기법이죠. 그 상감기법으로 만들어진 무수히 많은 아름다운 자기들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자기는 전형필 선생의 간송 컬렉션 중 하나인 청자상감운학무늬매병입니다.
널찍한 어깨와 잘록한 허리, 안정적인 굽을 따라 내려오는 곡선의 형태미가 눈을 사로잡는 청자상감운학무늬매병의 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학과 구름이 그려져 있습니다. 각기 향하는 방향이 다른 학들은 넓은 하늘의 끝을 향해 솟구쳐 오르고, 넓은 하늘 속을 활강하다가 지상을 굽어보며 세상을 살펴봅니다. 큰 날개로 하늘을 맘껏 휘젓는 학들의 사이에서는 구름들 또한, 공활한 하늘을 자유롭게 노니고 있습니다. 구름과 학만 그려졌다면 지루해졌을 수 있는 표면에 희고 검은 동그라미들까지 그려 넣어 변주를 주고 있습니다.
더없이 높고 티 없이 맑으며 오묘함을 더하는 비색의 하늘은 고려의 하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려의 하늘에 그려진 구름과 학은 당시 귀족문화의 일부이던 도교 사상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천한 신분이었던 고려 도공들이 도교사상에 대해서는 알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들이 생각한 이상적인 고려의 하늘은 신선들이 사는 이상향이 아니었습니다. 광활한 하늘을 돌아다니는 학에서 느낄 수 있는 힘찬 기상과 구름의 자유로움, 이러한 것들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 하늘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아름다운 자기를 만들어낸다는 자부심과 가치가 있었을지언정 사회적으로는 향·부곡·소라는 특수 행정지역에 묶여 살아야 했던 부자유하고 미천한 삶이었습니다. 그들은 귀족들에게 주문받은 학과 구름을 자신이 온 정성을 다해 만들어낸 청자에 담아내면서 학처럼 훨훨 날아올라 구름처럼 자유롭게 다니는 삶을 꿈꿨을 겁니다. 그리고 자연히 그 꿈의 이상향으로 하늘을 생각한 것이죠. 맑은 날, 햇빛을 받으며 반짝거리는 비색을 뽐내는 청자를 바라보고, 하늘을 한 번 쳐다보며 그들 마음속 깊숙이 자리한 자유에 대한 갈망을 끄집어내고 해소했을 것입니다.
제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주관적으로 해석을 했던 것처럼 고려청자를 만들던 도공들도 하늘을 보고 자신의 상황에 빗대어 해석을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보고 있는 높고, 푸르고, 맑은 하늘을 청자의 비색에 담아내었고, 그들이 생각하는 자유의 이상향인 광활하고 무한한 하늘을 상감청자의 운학무늬에 담아내었습니다. 그래서 고려청자를 볼 때마다 은은한 빛깔에서 받는 명상적인 느낌, 무수한 장식들과 섬세한 조형 기술에서 나타나는 화려함과 더불어 통쾌함이 느껴지는 것은 그런 이유일 것입니다. 다음에 고려청자를 직접 보게 된다면 고려의 도공들이 고려의 광활하고 무한한 하늘을 보고 생각한 ‘자유’라는 통쾌하고도 시원한 두 글자를 고려청자의 셀 수 없는 아름다움 속에서 찾아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