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는 나목
부쩍 추운 겨울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삼한사온은 옛말이고, 기상청의 예보에 적힌 기온은 영상으로 올라올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작년의 여름은 무척 더웠는데 반년이 지나자마자 이렇게 추워지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여름에서 겨울로 변화하면서 바뀐 것은 기온만이 아닙니다. 거리의 풍경, 느낌, 그리고 가로수들의 모습이 바뀌었지요. 강렬한 햇살 속 다채로운 색채를 뽐내던 거리는 약간 빛바랜 색을 뿌리며 쓸쓸함을 풍기고, 나무들의 싱그러운 푸른 잎들은 전부 사라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습니다. 벌거벗은 나무들의 모습은 왠지 처연하고 고독해보여서 잘 시선을 두지 않게 됩니다. 겨울나무를 보고 있자면 추운 겨울 피부에 닿는 차가움에 더해 마음에 차가움이 더해져 세상과 더욱 동떨어진 것 같습니다.
1950년대 전쟁 전후의 거리와 가로수는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사계절 내내 알 수 없는 불안감과 고요함에 사로잡힌 삭막한 거리의 분위기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무채색의 거리, 빛깔과 활력을 모두 잊어버린 거리. 지금은 늘 활력이 넘치는 서울조차도 전방도시의 늘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겠죠. 박완서 작가는 작품 ≪나목(裸木)≫의 주인공 이경을 통해 당시 충무로의 거리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두운 모퉁이, 불빛 없이 우뚝 선 거대한 괴물 같은 건물들 천지였다. 주인 없는 집이 아니면 중앙 우체국처럼 다 타버리고 윗구멍이 뻥 뚫린 채 벽만 서 있는 집들,(…)”
사람들의 활기와 불빛의 따뜻함까지 사라져버린 당시의 을씨년스러운 충무로의 묘사에서 느껴지는 것은 막연한 공포감입니다. 어둠이 곳곳에 짙게 배어 있던 서울의 중심 거리에서 딱 한 군데만 달랐던 듯합니다. 전쟁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박완서 작가는 현 명동 신세계백화점에 자리 잡고 있던 미 8군 PX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일대의 큰 건물들이 다 불타고 파괴된 가운데 오직 그 건물만이 온전했다. 그러나 비록 폐허가 됐을망정 PX에서 흘러나오는 미군 물자와 PX를 드나드는 미군을 상대로 한 장사로 그 일대는 딴 세상처럼 화려했고 시끌시끌한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재난 앞에서 사람들은 많은 것을 잃었고,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더 이상 교류할 여력이 없었을 겁니다. 유일하게 물자와 사람이 활기차게 오가는 곳은 한반도가 아닌 외부에서 온 사람들과 물자들이 모이는 미군 PX가 별세계처럼 보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박완서 작가는 이곳 PX에 자리한 한국물산 위탁매장의 초상화부에서 일했고, 이 일자리를 소개시켜준 것은 박수근 작가였습니다.
전쟁 통에 오빠를 잃고 가장이 되어 대학을 포기해야 했던 박완서 작가가 자신의 불행에 열중하며 회색빛 거리의 불안과 쓸쓸함에 주목했을 때 박수근 작가는 거리를 다르게 봤습니다. 밀레의 그림을 좋아했던 그는 전쟁 전후에도 삶을 묵묵히 지속하는 서민들의 굳건한 심지에 주목했습니다. 밀레가 자연과 함께하며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농민들의 삶을 자세하게 관찰하며 거룩하게 묘사했다면, 박수근 작가는 서민들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고 담담하게 묘사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한 작품들의 도판만 보아도 절구질하는 여인, 맷돌질하는 여인들 등 그저 묵묵히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소재로 삼은 것이 대부분입니다.
소박한 삶을 담담하게 그려냈다고 해서 박수근의 그림이 딱딱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의 삶에 공감하는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박수근은 가난하여 미술에 관한 고등교육을 한 번도 받지 못한 ‘서민화가’였습니다. 그의 그림에서 표현된 사람들은 작가의 관찰 대상이 아니라 어렸을 때 자신의 농가 주변에 살았고, 남한에 와서는 작가의 창신동 판잣집 주변에 살았던 작가의 이웃이었습니다.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재난 앞에서도 삶을 꿋꿋이 이어나가는 이웃들의 모습을 성실하고 신중하게 담아낸 그가 그려낸 주변 전쟁 전후 거리의 모습에선 공포감과 을씨년스러움이 아니라 따뜻함과 정이 듬뿍 담겨있습니다.
그가 이토록 수더분한 서민들을 좋아했고, 사랑했기에 그는 그들을 좀 더 잘 표현하기 위해 많은 방법을 고안해냈습니다. 캔버스 위에 유채 물감을 몇 겹으로 쌓으며 오돌토돌하고 순박하지만, 그 무엇보다 건실한 화강암과 같은 질감을 배경으로 단순한 선으로 사람들을 묘사했습니다. 그리고 화면을 지배하는 황갈색의 색은 오랜 한국 역사동안 서민들의 옷 색이었던 소색(素色)을 떠올리게 합니다. 소박하지만, 거친 삶의 때가 남아 있는 그 색은 서민들의 옷을 넘어 서민들의 삶을 대표하는 색 자체입니다. 이런 질감과 색감, 그리고 묘사법을 보고 있으면 얼마나 그가 서민들에게 관심을 가졌고, 그들을 애정 있는 시선으로 바라봤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박수근 작가의 대표작으로 ≪나무와 두 여인≫이 있습니다. 박완서 작가의 ≪나목≫의 배경이 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화면 가운데를 가르는 나무 왼쪽 아래에는 아이를 업은 여인이 서있고, 나무 오른쪽 아래에는 짐을 이고 나무 옆을 지나가는 여인이 있습니다. 잎이 다 져버린 겨울의 나무 아래를 지나가는 일상적인 장면에서 느껴지는 것은 차가움이나 쓸쓸함이 아닙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겨울의 풍경에서 따뜻함이 느껴지는 것은 위에서 말한 서민들에 대한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 덕분이겠죠. 신기한 것은 잎이 하나 없는 앙상한 가지를 가진 나무에서도 쓸쓸함보다는 알 수 없는 희망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헐벗은 겨울의 나무가 담아내고 있는 것은 겨울의 고독함이 아니라 봄이 다가오는 것에 대한 기대입니다. 말라서 죽어버린 고목(枯木)이 아니라 잎이 지고 가지만 앙상히 남았지만, 봄을 기다리는 희망을 품고 있는 나목인 것이죠. 춥고 힘든 겨울의 시대에서도 겨울을 뛰어넘어 봄을 생각했던 그의 가슴에는 늘 희망과 따스함이 가득한 오월의 태양이 작열하고 있었습니다.
1950년대에서 1960년대 초반 삭막하고 불안감이 가득했을 것만 같은 시대에도 사람들은 계속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척 화려하고 시선을 끄는 것이 아니었을지라도 하나하나 소중한 삶이었다는 것은 변치 않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이웃으로 살아온 박수근 작가의 작품은 그저 그 소중한 삶을 차분하게 사랑을 담아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일상만 표현하는 것을 넘어 미래에 대한 기대를 담아내며 희망을 늘 품고 있는 작가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작가의 작품이 6.25전쟁 전후의 시대상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음에도 현대까지 마음에 울림을 주는 것은 작가의 작품에서 드러난 이러한 표현과 감정, 그리고 시선이 현재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시대, 비대면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더욱 이해하지 못하고 갈등을 일으키고 있으며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하기에 앞서 날카로운 눈빛과 말을 담아 사람들을 비판하고 비난하기 바쁩니다. 이웃에 대한 따뜻한 마음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또한, 자신에게 닥쳐오는 무수히 많은 일들 때문에 아예 이웃에 대한 관심조차 꺼버린 사람들도 많죠. 소통과 관심이 사라진 회색빛 사회에 남은 것은 이제는 인류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코로나라는 재난에 대한 불안과 분노뿐입니다. 박수근 작가의 작품은 몇 십 년의 세월을 넘어 너무나 추운 겨울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따뜻함을 가져다줍니다. 몸 안쪽에서부터 서서히 퍼져 온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은은하지만, 강렬한 온기를 느끼게 해줍니다. 잊고 있었던 따뜻함을 주는 이 작품들을 우리는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이 작품들이 한국이라는 공간과 1950년대에서 1960년대라는 시간을 대표하면서도 영원불멸의 아름다움을 가지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