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는 형과 만나 거리를 걷고 있을 때였습니다. 남들은 하나씩 취직해 가는데 취직이라고는 1억 광년쯤 멀리 있는 사람들이 만나니 우울한 분위기가 저절로 형성되었습니다. 둘을 둘러싼 음울한 분위기를 떨쳐내려 서로 이런저런 농담을 건네는데 갑자기 형의 신발끈이 풀렸습니다. 그걸 보며 형은 짜증을 냈습니다.
“신발끈은 매우 잘 풀리는데 내 인생은 너무 안 풀리네.”
너무 공감이 되어서 길거리에 서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왠지 모를 통쾌함이 제 마음을 뚫고 지나가는 데 안 웃을 수 있어야죠. 한참을 웃고 나서 제 신발끈 매듭을 바라보다가 문득 작년 서울공예박물관에서 보았던 매듭장의 작품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한국의 전통 매듭들을 보면서 아름답다기보다는 신기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매듭을 만드는 것도 장인이 있었구나.’와 같은 일차원적인 신기함이었습니다. 하지만, 형의 말을 들은 후 매듭장을 생각해 보니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가 삶이 휴지가 풀리듯이 술술 잘 풀리기를 바라는 세상에서 잘 풀리지 않는 매듭을 만드는 삶은 어떤 느낌일까?’ 아마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그들이 평생에 걸쳐 발전시키고 계승해온 매듭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처음부터 매듭이 장식과 같은 화려한 형태를 띠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실용적으로 사용된 것이 먼저죠. 아마 최초의 매듭은 실을 엮고 맺고 짜는 섬유 제작이었을 겁니다. 아니라면, 아마 넝쿨이나 나무껍질이나 짐승 가죽을 찢어 만든 끈으로 이런저런 도구들을 고정했던 것이 최초겠죠. 정확히 예측은 할 수 없지만, 이런 매듭은 신석기 시대부터 정착 생활에 필요한 생활 수단으로 널리 되었을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이후 문명이 발달하면서 매듭은 문자와 숫자를 표시하는 대용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각 시대와 민족의 생활 문화가 더욱 향상하면서 각 지역적 특징을 살린 의식용·장식용·공업용 매듭으로 나뉘어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매듭은 문헌상의 기록이나 유물로는 배우기 어려워 사람의 손에서 손으로 그 기술이 직접 전승되어 왔습니다. 고구려의 안악 3호분 벽화(375년)에는 방장(房帳, 방문이나 창문에 치거나 두르는 휘장)을 묶은 끈과 술(가마, 깃발, 끈, 띠, 책상보, 옷 따위에 장식으로 다는 여러 가닥의 실)이 그려져 있어, 당시의 실내장식에 매듭과 술이 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서긍의 ≪고려도경≫에는 고려시대의 각종 의식이나 복식에 사용되었던 여러 물품들에 유소(깃발이나 가마 따위에 달던 술)가 달려있거나 매듭으로 물품들을 꾸몄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또한, 청자음각모란상감보자기문유개매병의 네 모서리에 매듭과 술이 장식된 사각보를 얹은 듯한 무늬가 있는 것을 보면 매듭이 생활 깊숙이 자리 잡았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세종실록≫ 제132권 〈가례서례〉에는 왕이나 왕비 등이 타고 다니는 가마나 악기 등에 유소가 장식된 도해가 있습니다. 조선 후기 ≪동국여지비고≫ 2권을 살펴보면 공조(工曹)에 다회장(多繪匠) 2명, 매듭장 2명, 상의원(尙衣院, 임금의 의복과 궁내의 재화, 금은보화 등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던 관청)에 다회장 4명, 매듭장 4명, 전설사(典設司, 조선시대 의식에 쓰이는 장막을 공급하는 일을 담당한 관청)에 다회장 6명이 속해 있던 것이 나타나 있습니다. 신윤복의 <미인도>에 여인이 찬 노리개에 있는 매듭과 술을 통해서 조선시대에 매듭이 무척 폭 넓게 쓰였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오랜 기간 선조들의 생활 속에서 다양하게 쓰여 온 매듭을 만드는 기술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명맥이 끊길 뻔하였으나 당시 생존해 있던 장인들의 손끝을 통해 국가무형문화재 매듭장 김희진 보유자에게 전달되었고, 이후 제자들에게 전수되어 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매듭의 역사를 알아보았으니 이제 매듭의 재료와 종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매듭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끈목이 필요합니다. 조선시대에는 다회(多繪)라고 불렸던 끈목은 실을 합하여 두 가닥 이상으로 꼬아서 만듭니다. 이렇게 끈 만드는 것을 ‘다회 친다’고 합니다. 다회에는 동다회와 광다회가 있습니다. 동다회는 끈목의 둘레가 둥글며, 원다회라고도 하고, 주로 노리개, 주머니끈, 각종 유소를 만드는 데 쓰입니다. 광다회는 폭이 넓고 납작한 평직의 끈으로 허리띠로 많이 쓰였고, 방울술노리개, 선추, 안경집 장식 등에도 쓰였습니다.
우리나라 전통매듭의 기본형 매듭은 38가지이며, 지역에 따라 부르는 명칭에 차이가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식물, 곤충, 물건 등에서 따서 이름을 붙였습니다. 생강, 나비, 잠자리, 파리, 매미, 국화, 벌, 병아리, 꼰디기, 매화, 콩, 적삼, 단추 등이 있습니다. 주변에서 쉬이 찾아볼 수 있는 생물들과 물건들에게서 느껴지는 정겨움이 매듭의 이름에 담겨 있습니다.
끈목을 통해서 다양하게 만들어진 매듭은 곳곳에 사용됩니다. 노리개가 대표적인 예죠. 조선시대 여성의 장신구 중 하나인 노리개는 저고리의 겉고름이나 안고름, 치마허리 또는 대례복의 띠에 달아 단조롭게 보이기 쉬운 우리 고유 의상에 우아함과 화사함을 더해줍니다. 노리개의 주체가 되는 패물 위아래에는 노리개를 더욱 아름답게 해주는 매듭이 자리하고 있죠. 이외에도 부채의 고리에 대는 선추술, 귀주머니·두루주머니와 같은 주머니, 호패에 다는 호패술, 여자 허리띠인 대자띠, 족자, 발걸이, 방장걸이와 같은 실내장식, 악기장식, 예복이나 궁중 기물, 종교의식 도구의 장식에도 쓰였습니다.
이렇듯 많은 곳에 다양한 매듭이 사용되다보니 매듭을 많이 만들기 위해서 조선시대에는 매듭을 만드는 과정이 분업화되어 있었습니다. 실을 각자 맡은 색으로 염색하는 홍염장(紅染匠), 청염장(靑染匠), 끈을 푸는 해사장(解絲匠), 실 꼬는 일을 담당한 합사장(合絲匠), 매듭에 쓰이는 끈목을 만드는 다회장(多繪匠), 매듭을 만드는 매듭장까지. 아름다운 매듭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이들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매듭장 혼자서 이 모든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예전보다 더 많은 기술을 익히고 노력을 쏟아 부어야 ‘매듭장’이라는 이름을 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종일 실을 붙들고 앉아 염색하고, 실을 꼬고, 끈목을 만들고, 매듭을 만드는 과정은 무척 힘들 겁니다. 눈도 침침해지고, 허리도 쑤시고, 자그마한 실들을 만드느라 손가락도 아파올 겁니다. 아니, 온몸이 아플지도 모릅니다. 아름다운 매듭을 만들기 위해서라지만, 암만 봐도 그들의 인생은 그들이 만드는 매듭처럼 꼬여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그렇지만, 그들이 말하는 그들의 삶은 어떠할까요?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이자 MBC의 예능프로그램 ‘놀면뭐하니?’의 MSG워너비 편에서 유재석이 하고 있던 머리장식을 만든 김혜순 장인은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매듭은 모든 과정이 중요해요.(…) 과정 하나하나가 다 정확해야하는, 과정 중 어느 하나도 빠짐없는 완성의 연속이어야 하죠. ‘나중에 또 하지’, ‘나중에 수정하지’는 안돼요. 매 과정을 마무리 지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죠. 살아가는 데서도 과정 하나하나 마무리가 잘 돼가면서 지나가야겠죠. 그래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어려움이 닥치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게 다인 것 같아요.”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되는 매듭을 만드는 어려운 과정, 모든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하는 힘든 과정을 평생 소화해온 장인의 담담함과 묵직한 삶이 느껴지는 말입니다. 그런 힘든 일을 자처해서 하고 있다는 그 삶에 대해 꼬여 있다고 생각한 제가 무안해질 정도로요. 하지만, 그들의 삶이 술술 풀렸다고 하기도 뭐합니다. 장인이라 불리는 그들이 한 달 동안 온 힘을 쏟아야 작품 하나가 나오는데 그 작품의 가격은 냉혹한 시장에서 매겨지는 가치는 노력에 비하면 턱없이 낮으니까요. 이렇게 보니 다시 생각해봐도 그들의 삶은 매듭과 같이 꼬여 있습니다. 다만 앞에서 말한 부정적인 의미의 ‘꼬인 매듭 같은 삶’은 아닙니다. 그들이 그들의 시간을 실로 삼아 노력이라는 기술로 정성을 다해 꼬아낸 매듭인 삶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노력과 열정의 정점, ‘장인정신’이라는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었을 때처럼 우리의 삶을 단 한 번의 칼질로 풀어낼 수 있다면 모두가 행복한 세상에서 살고 있을 겁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매듭을 풀어보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에 누구에게나 한계가 찾아오고 이로 인해 어떤 방향으로든 문제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매듭장으로 불리며 이제는 장인으로 인정받는 이들의 삶도 처음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한계에 부딪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가졌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끝없는 노력과 열정으로 그것을 극복하고 장인이 되었습니다. 장인이 되고나서도 그들의 삶은 끝없는 도전의 연속입니다. 그들의 삶은 여전히 꼬여 있지만, 그들은 그 꼬인 삶을 노력을 통해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매듭장들이 만들어낸 매듭처럼요. 우리는 모두 장인처럼 살 수 없습니다. 당장 매듭을 풀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쉬었다가 다시 꼬인 인생을 풀어보려는 도전을 한 번 더 해볼 수는 있겠죠. 실패로 점철된 절망 가득힌 도전일지도 모르지만, 그 도전이 우리의 삶을 확 풀어주지는 못해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희망은 늘 마음속에 품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장인들의 피, 땀과 숭고한 장인정신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매듭을 보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