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은 할 일 없는 백수에 가까운 대학생이지만, 침대에서 뒹굴 대기만 하다보면 정말 게으른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책이라도 읽을 겸 도서관에 갑니다. 대체로 이런저런 책을 뽑아 읽지만, 가끔은 아무 책도 읽지 않는 날도 있습니다. 그런 날이면 조용히 서가 주변에 서서 무슨 책이 있나 구경하죠. 모르는 책이 가득이지만, 가끔 아는 책을 발견하면 무척 반갑습니다. 그런 식으로 조용히 책의 숲을 산책하다보면 아무런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합니다. 책을 읽지 않아도 책이 가득한 서가만 보고 있어도 즐거워지는 것이죠. 조선 후기 학예군주로 유명했던 정조는 책을 좋아하는 마음이 더하면 더했지 절대 저보다 작지 않았습니다. 서가에 책이 가득한 책거리라는 그림을 구상해냈으니까요.
책거리는 책, 서가, 방안의 기물들을 함께 그린 그림으로 책가도(冊架圖)라 불리기도 합니다. 책거리와 책가도라는 말의 정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첫째, 책가도의 순우리말이 책거리일 뿐이라는 의견. 둘째, 책거리는 책에 ‘거리’라는 접미어가 붙어서 생긴(예: 먹을거리) 단어기 때문에 책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물품을 그린 그림을 전부 일컫고, 책가도는 책가, 즉, 서가가 있는 그림이라는 의견. 마지막으로 책거리는 서가 없이 책과 기물들을 그린 그림이고, 책가도는 서가 있이 책과 기물들을 그린 그림이라는 의견입니다. 저는 무엇이 맞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이 글에서는 책거리와 책가도를 동일한 단어라고 생각하고 책거리라는 용어를 계속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책거리는 정조가 구상해내기는 했지만, 그 시초는 중국의 다보각경(多寶各景)이나 다보격경(多寶格景)입니다. 다보각경이나 다보격경은 다보각(多寶各) 또는 다보격(多寶格)과 같은 장식장에 도자기, 청동기, 옥 등 귀한 물건을 진열해 놓은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즉, 장식장에 이런저런 수집품들을 모아 놓고 전시해놓은 뒤에 기록용으로 그림을 그린 것이죠. 이 외에도 가지지 못한 물품들을 허구로 그린 그림을 소유하여 대리만족을 하는 용도로도 다보각경이나 다보격경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이 다보각경과 다보격경의 도자기, 청동기, 옥 등은 책과 학문을 사랑하는 정조(正祖)에게 의미 없는 것들이었고, 그가 보고 싶었던 것은 장식장의 수집품이 아니라 서가의 책들이었습니다. 그가 책거리를 구상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죠. 그의 책에 대한 사랑은 정조의 문집인 ≪홍재전서≫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예전에 정자(程子)가 이르기를, 비록 책을 읽을 수 없다 하더라도 서실에 들어가 책을 어루만지면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의 의미를 이 그림(책거리)을 통해 알게 되었다.”
책을 어루만지고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다니, 조금 이상한가요? 저는 이해가 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쌓아두고 표지만 보고 있어도 그냥 만족스러울 때가 종종 있거든요. 정조의 책에 대한 강렬한 사랑은 책거리까지 이어져 차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 조선후기 왕실과 관련된 서사 및 도화 활동을 담당하기 위하여 도화서에서 임시로 차출되는 화원)의 녹취재(祿取才, 녹봉을 받지 못하는 벼슬아치들에게 녹봉이 있는 벼슬을 주기 위하여 해마다 두 차례 또는 네 차례씩 예조(禮曹)에서 행하던 하급 관리들의 임용시험)의 주제로 책가를 많이 출제했습니다. 책가를 주제로 출제 했음에도 책거리 작품을 제출하지 않은 화원들을 귀양 보내기도 했습니다.
책과 학문에 대한 사랑도 정조가 책거리를 무척 사랑한 이유이지만, 그것 말고도 하나의 이유가 더 있습니다. 후세의 ‘병든 글’을 바로 잡기 위해서였죠. 여기서 말하는 병든 글은 바로 패관잡기(稗官雜記)를 말합니다. 명말청초에 유행한 패관잡기는 민간에 나도는 풍설과 소문을 비롯한 잡다한 이야기인데 정조 시대 무척 유행한 패관잡기를 지양하고 고전을 읽게 하기 위해서 책거리를 신하들에게도 적극 권장했습니다. 그래서 정조의 책거리 병풍은 아래의 사진처럼 서가에 책만 가득한 그림이었을 것이라 추측됩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보통 우리가 아는 책거리에는 책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문방(文房)과 같은 각종 기물들이 같이 그려져 있습니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볼 수 있는 정조의 방에 구현된 책가를 봐도 여러 기물들이 있습니다. 또한, 책거리 그림으로 유명한 화원인 이형록의 책거리 그림들을 살펴봐도 책만 그려져 있는 책거리는 무척 찾기 힘듭니다. 책만 있는 책거리가 아닌 각종 기물들이 그려진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다시 정조의 ≪홍재전서≫를 살펴봐야합니다.
“근래 사대부 사이의 풍조가 매우 해괴하니, 반드시 우리나라의 법식을 벗어 버리고 멀리 중국 사람들이 하는 짓을 배우려 한다. 서책은 잠시 그렇다 하더라도, 일상의 그릇과 가구까지 모두 중국산을 쓰면서 이로써 고상한 운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긴 시간 오랑캐라고만 치부하며 멸시해온 청의 문물에 대해 정조 시기 즈음 되어서는 거부감이 많이 사라졌다는 세태를 보여주는 말입니다. 검소함과 소박함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조선에서 도자기는 백자와 청화백자로 고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청은 채색 도자기를 만들고 있었죠. 철화나 청화백자만 봐오던 사대부들에게 청의 채색도자기는 무척 신기했고 새로웠습니다. 또한, 희귀한 청의 도자기는 자연히 사대부들 사이에서 명품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이는 청의 도자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청의 여러 기물들에도 해당되는 것이었죠. 많은 사대부들은 이러한 기물들을 자신의 서가 곳곳에 두고 다른 이들에게 자랑하고 싶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 서가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겠죠. 이러면서 책거리에 다양한 기물들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니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가지지 못한 귀중한 것들을 책거리에 그리고, 그 책거리를 소장하는 방법으로 대리만족하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정돈된 서가에 책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학문의 향기가 가득한 정조의 책거리와 화려하고 이국적인 물품과 책이 서가에 화려하게 어우러진 사대부의 책거리는 이제 민중에게도 퍼져 민화가 되었습니다. 서가를 그리는 데 집중하지 않고 서가를 빼놓고 책과 기물들을 그린 그림들이 다수 등장했죠. 들어간 기물들은 무척 다양했으며, 대체로 길상과 기복을 상징하는 기물들이 다수 들어갔습니다. 장수(長壽)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복숭아나 석류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선비의 절개와 문인의 고고함을 의미하는 매화나 수선화도 책거리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였습니다. 나중에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해태, 용, 기린 등을 책거리에 그려 넣기도 했습니다.
위 책거리를 보면 위에 봤던 그림들처럼 책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책 뭉치들이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궁중에서 그려진 책거리가 사면척량화법(四面尺量畵法,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어둡게 하는 명암법을 사용했으며, 책을 대각선으로 비스듬하게 그리는 투시도법을 포함하는 서양화법)을 엄격히 지키며 그려졌던 것과는 달리 민간에서 그려진 책거리는 이런 화법을 지키며 그리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몰랐다는 말이 더 정확한 말이겠죠. 궁중의 책거리처럼 사면척량화법을 최대한 적용하려 했지만, 정확히는 알지 못해 화가들의 개성에 따라 책들을 그려냈습니다. 그래서 이런 책들은 차곡차곡 쌓여 있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 떠 있고, 끝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넓어집니다. 흔히 생각하는 직육면체의 책들은 사라지고 온갖 괴상한 모양의 책들이 가득하죠. 자유분방한 이 그림들을 보고 일본의 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는 <불사의한 조선민화>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직관은 이 그림이 대단히 매혹적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뭔가 신비로운 아름다움마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혜를 짜서 다시 바라보면 이 그림만큼 모든 지혜를 무력하게 만드는 그림은 좀처럼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 사실은 이 그림이 근대인인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모든 불합리성에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된다.”
르네상스 이후로 서양 미술의 가장 큰 법칙이었던 투시도법의 원칙을 완전히 무시한 책거리를 보고 매혹적이라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죠. 평면적이고 투시도법을 무시한 것을 보고 혹자는 피카소의 입체주의에 비교하기도 합니다. 저는 사실 이렇게까지 어렵게 책거리 민화를 바라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개성적인 책거리 민화의 도상은 형식적인 궁궐의 책거리가 자유분방한 민중에게 넘어오면서 당연히 발생하는 변용이니까요. 이는 궁중과 사대부라는 지도층이 만들어낸 형식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문화적 힘이 조선 후기에 있었다고 증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즉,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민중들의 자유로움이라는 미가 책거리에 담겨 있다는 것이죠.
우리가 도서관하면 생각하는 것은 보통 학문, 공부, 책과 같은 것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의 이미지는 조금 딱딱하고 형식적이며 지루할 수 있습니다. 학문과 책을 사랑했던 정조의 책거리는 그러한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그 형식주의는 아름답게 치환되어 학문이 융성했던 정조 시기의 문예미를 보여주고 있죠. 정조의 학문에 관한 철학이 주는 문예미가 흘러넘치는 책거리는 장식성이 무척 강한 사대부의 화려한 책거리로 넘어왔고, 이 책거리는 곧 민중들에게 개성적으로 수용됩니다. 민중 각자의 개성에 따라 만들어진 책거리는 형식성과 장식성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함을 추구하며 새로운 아름다움을 주었습니다. 이렇듯 지루하게만 보일 수 있는 책을 소재로 표현을 다양하게 해낸 선조들의 책거리의 아름다움도 한국의 미 중 한 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