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림지
의림지를 가는 버스는 제천역 바로 아래의 버스정류장에서 탈 수는 없고, 주차장을 지나 길 건너의 버스정류장에서 타야 합니다. 제천역에서 세명대를 지나 대원대로 가는 31번 버스를 타면 됩니다. 제천역과 시내 중심부, 대학교를 잇는 주요 노선이다 보니 10분에 한 대쯤 있어 제천역으로 오든 제천시외버스터미널로 오든 의림지로 가는 법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여름의 무더위를 느끼기도 전에 31번 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왔고 저와 후배는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은 시골길의 정취를 따라가는 길이 아닙니다. 시내 중심부의 여러 건물들을 보며 가는 길이지요. 제천이 13만 인구가 있는 시임을 생각하면 그리 놀랄 것은 아니지만, 저와 후배는 이렇게까지 크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기 때문에 제법 놀랐습니다. 뱅뱅과 같은 옷가게부터 맥도날드와 같은 체인 음식점까지 다양한 상가들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시내 구경을 어느 정도 하고 나면 이제 시내가 아니라 호젓한 시골길이 나옵니다. 그 시골길을 따라 조금 달리면 이제 의림지 정류장에서 내리면 됩니다.
평일인 화요일 오전 11시 50분, 휑한 의림지에서 내리고 살짝 당황했습니다. 그다지 크지 않은 호수와 그 주변을 따라 도는 모래길, 그 사이사이로 머리를 내민 풀까지. 뭔가 애매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순간 고민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무엇하나 싶어서 일단 A와 한 바퀴 걷기로 했습니다.
일단 걷고 보니 의림지가 눈에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올 수도 있다던 예보는 완전히 틀려 흰 구름과 맑은 청색의 하늘이 의림지를 덮고 있었고, 그 아래 푸른 산과 하늘을 거울처럼 받아들인 의림지가 어우러져 무척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냈습니다. 그리고 제방 위 모래길 양옆으로 서 있는 소나무들이 만들어낸 그늘 아래 불어오는 바람은 의림지(義林池)를 온몸으로 즐길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가끔 나무 그늘이 사라지면 구름이 해를 가려주어 강한 햇빛을 피할 수 있어 편안히 맘껏 풍류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A와 나무 아래에서 서로 사진도 찍어주었지요. 옆에는 영호정(暎湖亭, 조선 시대 때 있던 것을 6·25때 파괴된 후 복원)이라는 정자가 있어 이곳이 저수지였으나 조선 시대부터 이미 풍류를 즐기는 명승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의림지는 사실 조선 시대 그 이전인 삼한 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더불어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중 하나입니다. 역사 시간에 배울 때 이 세 가지의 저수지는 꼭 외워야 하는 것 중 하나이죠. 다양한 비석들과 정자들, 제방 위에 자라난 굵은 노송들은 이러한 의림지의 깊은 내력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의림지 제방을 따라 계속 걸으면 이제 이곳이 제천의 유명한 관광지라는 것을 말하듯 다양한 식당들이 보입니다. 저수지 옆 제방 위에 자리한 식당이라 뭔가 특이할 것 같지만, 사실 다른 식당들과 다른 점은 없어 보였습니다. 1박2일 팀이 왔다고 해서 홍보물을 보니 시즌 1이 아닌 그 이후의 시즌들에서 방문했더군요. ‘1박2일 시즌1 정말 열심히 봤었는데.’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습니다. 그 포맷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상점들을 지나면 이제 의림지의 하이라이트인 용추 폭포가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자연적인 폭포는 아니고 의림지의 물이 빠져나가며 생기는 폭포입니다. 이 폭포는 제법 볼만하여 신월동에서 올라온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하지 못하고 터져 죽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옵니다. 경관이 제법 좋아 조선 시대 때에는 후선각(候仙閣)이 근처에 있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지만요. 용추폭포는 아래에서 볼 수는 없고 제방 위에서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폭포를 건너는 다리에 투명한 바닥을 설치하여 좀 더 박진감 넘치게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용추 폭포를 건너가면 하나의 정자가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홍류정(紅流亭)으로 조선 시대에 정자가 있던 자리에 최근 들어 정자를 새로 지은 것으로 추측되었습니다. 정자 위의 풍경은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이식(李植)의 시처럼 ‘걸릴 것 없는 텅 빈 하늘을 닮은’ 의림지와 더없이 맑은 하늘, 눈부신 햇빛, 의림지가 살아 있는 듯 역동적으로 뿜어지는 분수까지. 숫기 없는 두 남자는 위에서 마땅히 사진 찍어달라 할 사람을 찾지 못해 정자 위에서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아래에 내려와서는 관광을 오신 아주머니들께 부탁드려 A와 사진 한 장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의림지를 걷다 보면 한국 농어촌공사에서 세운 구조물도 있습니다. 아마 의림지가 제천의 논에 물을 대는 관개시설로 여전히 쓰이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구조물을 지나면 인공 동굴이 나옵니다. 동굴 위로는 인공폭포가 흐르고 있어 멀리서 보는 것이 더욱 멋있습니다. 동굴 뒤로는 일반인들의 시화가 이어집니다. 느낌을 확 주는 시들은 없었지만,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공감하기 좋은 시들이 현수막에 걸려 죽 늘어서 있었습니다.
시화까지 다 보면 넓은 잔디 광장이 드러납니다. 이곳은 2022년 당시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열리는 곳이어서 홍보물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 옆으로는 놀이기구들이 있어 이곳이 제천에서 유명한 관광지임을 실감케 합니다. 제방 위 솔밭 모래길과 그를 잇던 나무데크 길이 끝나고 관광지의 아스팔트길을 걷는 것은 어색하지만,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여전히 아름다운 의림지가 반기고 있습니다. 그렇게 의림지에 홀린 채 몇 분 걸으면 제천시에서 관리하는 공립박물관인 의림지 박물관이 드러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