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림지 박물관
원래 저는 남과 여행할 때 박물관을 잘 가지 않습니다. 이상하게 신경이 쓰여서 꼼꼼하게 보지 않게 되기도 하고, 박물관을 좋아하는 이들도 별로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A를 데리고 박물관에 들어가 보게 되었습니다. A가 박물관에 가도 괜찮다고 하기도 했고, 무지하게 더운 날씨 때문이었죠. 날이 맑은 대신 한여름의 뜨거운 공기를 온몸으로 받고 있었던 저와 A는 박물관의 시원한 공기를 받는 것이 급했습니다.
평일 낮의 박물관은 사람이 없어 조용했습니다. 박물관의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저와 A는 쉬다가 각자 2000원을 내고 표를 뽑아 전시관으로 들어갔습니다. 의림지 박물관의 시작은 추사 김정희의 시로 시작합니다.
濃抹秋山似畵眉-짙게 바른 가을산 그린 눈썹 흡사한데
圓潭平布碧琉璃-둥근 못은 푸른 유리 골고루 깔았구나
如將小大論齊物-작고 큰 것 끌어들여 제물을 논한다면
直道硯山環墨池-꼭 연산이 묵지를 감돌았다 말을 하리
가을의 의림지는 보지 못했지만, 조선 시대부터 의림지의 아름다움을 알고 많은 문인들이 방문하여 풍류를 즐겼음을 엿볼 수 있는 시입니다. 의림지가 아름답고 명승인 것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의림지의 근본적인 역할은 저수지입니다. 의림지는 산에 둘러싸인 제천 평야의 지역에서도 높은 곳에 있습니다. 원래는 농사를 짓는 논과 마을이 모여 있었을 중심 시가지보다 의림지가 훨씬 높이 있죠. 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들을 제천 평야의 농업에 사용하기 위해 물을 모아두는 저수지인 의림지를 만든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의림지는 산속에 있는 궁벽한 시골이 계속 유지되는 큰 역할을 했습니다. 역사 속에서는 오히려 제천 바로 아래의 청풍이나 단양이 유명하여 많이 등장하나 의림지가 있어 제천 또한 늘 기록에 적혀 역사의 일부로 남아 있었습니다. 제천 평야 전체를 아우르는 관개시설로 말이죠. 그리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정인지의 다음과 같은 시가 실렸습니다.
地勢最高處-지세는 가장 높은 곳이요
民居是僻鄕-백성 사는 이곳은 궁벽한 시골일세
泉從無底竇-샘물은 밑 없는 구멍으로 흐르니
觱沸自成塘-펑펑 솟아서 저절로 연못을 이루네
이처럼 제천의 젖줄을 담당하는 의림지는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막아두었다가 농경지에 공급하는 관개형 저수지였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과 함께 떠내려온 토사물로 만들어진 선상지에 만들어진 저수지이죠. 원래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선상지 중간을 관통하면서 저수지 없이도 농경에 별문제가 없었으나 빙하기가 끝나고 기후 변화가 이루어지며 물이 선상지에 공급되는 양이 줄게 되었고, 물줄기가 갈라지는 곳에 저수지를 만들어 제천 평야에 관개한 것이 지금의 의림지인 것입니다. 이렇게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막아 물을 대는 저수지를 관개형(灌漑形)이라 하고, 밀양 수산제나 김제 벽골제처럼 하천의 범람을 막으면서 물을 대는 저수지를 개전형(開田形)이라 하며, 경주의 서출지나 부여의 궁남지처럼 마을 근처에 농경보다는 유흥을 즐기기 위해 만든 저수지를 원지형(園池形)이라고 합니다.
그럼 관개형의 이 의림지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사실 의림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알기 쉽지 않습니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현역 저수지로 사용되어 끊임없이 보수되어 오왔기 때문입니다. 의림지의 이름이 고려시대에 의림지를 크게 보수한 박의림 현감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을 정도이니까요. 가장 최근에는 1972년 462mm의 강수량을 쏟아낸 태풍 ‘베티’로 인해 수압을 버티지 못한 제방의 일부가 무너져 제천 시민들이 힘을 모아 복구한 사례도 있습니다. 현역 관개시설로 사용되며 끊임없이 보수해온 의림지에 삼한 시대의 공법은 거의 찾을 수 있지만, 사람의 삶을 지탱해온 머나먼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과 함께해 온 이야기가 가득한 제천 문화의 중심입니다. 저수지 하나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한 도시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아마 전국에서 의림지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이죠. 의림지와 관련하여 널리 알려진 것은 관광과 풍류이나 일상과 가장 가까운 것은 역시 농경입니다. 의림지를 처음 정부에서 근대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한 것은 1908년으로 의림지 수리조합에서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로도 관리 주체가 몇 번 바뀌어 2008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국농어촌공사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의림지에 있던 한국농어촌공사 구조물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죠.
이 의림지를 관리하는 기관은 대대로 정부였지만, 실질적으로 관리해온 사람은 수문관리인입니다. 수문을 관리하는 단 한 사람이 청전뜰(의림지에서 물을 받아 농사를 평야)에 대는 물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수문관리인이 물을 잘 대주려 노력은 하지만, 혼자서 모든 논의 상황을 파악해서 적절한 물을 대주기란 참 힘들죠. 그래서 농부들은 높은 지대에 있는 의림지까지 찾아가 수문관리인에게 말을 해서 논에 물을 댔습니다. 그래서 자동차가 없던 시절에는 ‘논에 대는 물은 의림지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고뱅이(무릎)에서 난다.’라는 말도 있었다고 합니다.
의림지가 삶의 중심에 있었다는 것은 말뿐만 아니라 기록을 통해 추산해낸 통계로도 알 수 있습니다. 인공적으로 물을 대서 농사를 짓는 비율을 관개비율이라고 하는데 조선 시대 충청도는 관개비율이 10.5%, 경상도는 17.1%인데 반해 제천의 관개비율은 71.6%였습니다. 말 그대로 제천 논 대부분에 물을 댄 것이 의림지라는 것입니다. 조선 시대보다는 줄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196ha의 논에 물을 대고 있습니다.(의림지로 인한 수몰지역은 15ha)
사람이 만들었고, 사람과 함께해 온 시간이 긴 의림지이지만, 만들어진지 오랜 상태로 있다 보니 자체적인 생태계 또한 형성되었습니다. 토양의 침식을 막고 제방을 지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림(堤林)부터 호수에 사는 물고기들까지 다양한 생물들이 의림지에서 서식하고 있습니다. 제림은 의림지를 걸으면서 보았던 노송들입니다. 제방 위 모래길을 걷는데 운치를 더해줄 뿐만 아니라 제방을 튼튼히 하고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으니 의림지에서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호수에서 사는 물고기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공어(公魚)입니다. 의림지에 사는 공어는 무척 유명하여 의림지가 꽁꽁 어는 겨울이면 겨울 공어 낚시를 하러 많은 분들이 찾기도 하죠. 그리고 수생식물로는 순채(蓴菜)가 가장 유명합니다. 임금님 수라상에 올리던 식물로 수련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하지만, 의림지가 근대 들어 이런저런 변화를 겪으면서 사라졌다가 이전에 다른 곳에 옮겨 심어둔 것을 가져와 다시 심어 자라게 해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의림지 박물관의 상설 전시는 이렇게 끝납니다. 적당한 길이에 제천의 역사와 의림지의 이모저모를 살펴볼 수 있게 잘 꾸며놓았으니 의림지를 방문한다면 한 번쯤 방문해 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체험할 수 있는 것도 여러 가지 있으니 아이들도 방문하여 이런저런 체험을 해봐도 괜찮을 듯합니다.
지하에서는 <제천의 산업 담배와 광산>이라는 제목으로 기획전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제천은 18~19세기 전국 최대의 담배 생산지인 영월과 접하고 있어 일찍부터 담배 재배를 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수탈의 대상이었으나 해방 이후에는 제천 발전의 한 축을 담당했습니다. 1977년에는 담배 재배면적이 2,230ha나 되었고, 마을마다 담배 건조장이 없는 곳이 없었다 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담배를 재배라는 곳 대부분이 1982년 충주댐 건설로 만들어진 충주호로 인해 수몰되고, 외국 담배가 수입되면서 제천의 담배 산업은 쇠퇴 길을 걸었습니다.
제천 주변에 산이 많아 지하자원이 풍부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청풍에서 생산한 철은 조선 시대부터 사용하고 있었죠. 이런 지하자원을 적극적으로 개발한 것은 일제였습니다. 서양이 만들어낸 ‘근대’라는 개념은 기계문명의 발전을 가져오지만, 그만큼의 자원이 필요합니다. 일제는 빠른 근대 발전을 위해 조선의 자원들을 수탈했고, 이는 제천이라고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발전한 광산업은 해방 이후에도 유지되었고, 제천에는 충북 유일의 광업전문학교가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석회석이 많은 송학면에는 시멘트 공장이 세워지기도 했죠. 하지만, 무역이 발달하여 값싼 수입 광물들이 들어오고, 제천의 지하자원들이 고갈됨에 따라 제천의 광업 또한 쇠퇴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제천에서 담배와 광산은 거의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기획전시까지 다 보고 밖으로 나오니 어느덧 시간이 1시 30분이 되었습니다. 강렬히 내리쬐는 햇빛은 변하지 않았으나 배에는 허기가 몰려왔습ㅂ니다. 이제 점심을 먹어야겠죠. A군이 찾아 둔 의림지역 막국수집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저야 여행에서 볼거리를 따지지만, A군은 먹거리를 따지니 맛집을 잘 찾아 두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껏 기대하며 막국수집으로 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