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aekja Dec 31. 2023

알 수 없는 끌림, 그것을 찾는 과정

너의 이름은

 무엇인가에 끌린다는 것. 그것을 여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짧은 시간이 지나든 긴 시간이 지나든 무언가에 마음이 쓰이고 격하게 끌려 그것만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이 대상이든 사건이든 사람이든 그것에 모두 집중하게 되고, 현실의 무수한 조건들은 무시하게 됩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그것을 인연이라 부릅니다. 누군가는 신이 정해진 운명이라 부릅니다. 제가 인문학을 공부한 것은 과연 저의 호감에 의한 선택일까요? 아니면 전생과 현생의 인과관계에 얽힌 무언가일까요? 아니면 신이 점지해 준 예정일까요? 저는 알 수 없습니다.


 영화 <너의 이름은>에 나오는 두 남녀는 몸이 바뀝니다. 두 남녀의 소망일 수도, 아니면 원래 정해진 운명일 수도 있습니다. 둘은 바뀐 상황에 적응하며 일상을 구축해 나갑니다. 하지만, 기적 같은 신비한 뒤바뀜은 끝이 나고 그 의문은 남자 주인공인 타키를 여자 주인공 미츠하가 살았던 이토모리로 이끕니다. 사라진 마을 이토모리를 확인하고, 이제는 미츠하를 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만, 이미 정해진 사실과 운명을 거슬러 시간 축을 뒤틀고 이토모리를 살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렇게 이토모리의 주민들은 아무도 죽지 않게 되지만, 서로를 좋아했던 둘은 서로를 기억하지 못하게 됩니다.


 꿈을 꾸는 듯 서로의 몸이 바뀌는 것은 사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세상을 굴리는 법칙이나 우주를 다스리는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게 타키와 미츠하 둘은 3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몸이 바뀝니다.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순간들입니다. 신의 역할은 아마 여기까지일 겁니다. 여기서 더 만남을 이어 나가는 것은 둘의 노력이 할 일입니다. 그렇게 둘은 노력합니다. 미츠하는 타키가 있던 도쿄를 찾고, 타키는 미츠하가 있던 이토모리를 찾습니다. 운명의 장난인지, 원래 정해져 있던 건지 서로는 서로를 알아볼 수 없는 시간 축에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신이 정한 운명, 인과관계 안의 ‘무스비’입니다. 얽히고 뒤틀린 시간 축 그러할 일이 그리되는 것 원인과 결과가 마땅히 그러하게 되는 인연. 세상이 굴러가는 모든 방법, 무스비입니다. 그 무스비 속에서 타키는 미츠하를 기억하지 못하고, 미츠하는 혜성을 피하지 못합니다.


 놀랍게도 무스비는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선택지를 남겨둡니다. 인간의 노력과 사랑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마지막 선택지. 뒤틀린 시간 축에서 서로를 다시 찾을 수 있는 마지막 선택지. 그 방법은 그리 쉽지 않으나 그 모든 운명과 인연 앞에 놓인 단 하나의 사랑을 좇아 그들은 서로를 마주합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물을 수 있는 단 한 번의 시간. 황혼의 시간 안에서 서로를 마주하고, 운명과 인연을 바꾸어 목숨을 구합니다. 하지만, 우주가 허락할 수 있는 시간은 그것이 마지막입니다. 서로의 이름을 잊고 존재를 잊습니다. 기억을 완전히 잊는 것입니다.


 아마 신이 정하는 운명과 세계의 법칙이 굴리는 인연만이 있다면 타키와 미츠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었을 겁니다. 많은 이들이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는 운명과 인연 너머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이 존재합니다. 사람의 움직임은 운명과 인연에 의해 움직일지 모릅니다. 그것이 삶의 본질일지도 모릅니다. 그 본질을 따라가며 일상을 살고 기적을 만들어 낼 겁니다. 그러나 사람은 이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더한 자기도 모르는 새 더한 기적을 바랍니다. 운명과 인연이 정한 대로 서로를 잊었지만, 서로의 부재를 완전히 잊지 못한 그들은 무언가를, 누군가를, 어딘가를 계속 찾습니다. 자신의 의지가 나아가는 대로 서로를 찾고 만나는 모습은 그들이 운명과 인연이 정한 시간의 틈에서 자신의 의지로 살아왔음을 증명합니다.


 평생 그들은 그들이 한 마을은 구했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운명과 인연을 되살려 사랑이라는 선택지를 되살려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과거. 대단하고 멋있지만, 그들에게는 해야 할 일이었을 뿐입니다. 어쩌면 운명과 인연이라는 선택지 안에서 조금 힘든 선택지를 택했을 뿐입니다. 그들은 마지막에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자신의 사랑과 욕구에 따라 무언가를 찾아냅니다. 세계가 정한 무스비가 아니라 자신들이 만들어낸 무스비를 찾아 헤맨 끝에 다시 만납니다. 그리고 무언가가 정했던 망각 속에서 그토록 찾아 헤맸던 존재를 다시 찾아냅니다. 그리고 그 존재를 증명하는 단 하나의 무언가 이름을 다시 묻습니다. 세계가 아닌 자신들이 만들어 낸 무스비, 자신들이 잊지 않은 무스비. 그걸 되찾는 질문. ‘너의 이름은?’


 여전히 저는 저를 끌리게 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운명인지 인연인지 저의 선택인지. 사실 정확히 제가 끌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말할 수조차 없습니다. 여전히 헤매고 있습니다. 저는 여전히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정말 숨 막히게 압도되고, 눈물이 쏟아지는 순간 속에 제가 서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저를 압도하고 감정을 쏟아내게 만든 그 무언가에게 묻겠죠.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고.

매거진의 이전글 역사를 기억하는 법, 홀로코스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