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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ja Dec 29. 2023

역사를 기억하는 법, 홀로코스트

쉰들러 리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피아니스트

 ‘홀로코스트(Holocaust)’,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나요? 원래는 구약성서에서 희생물을 통째로 태워 버리는 특수한 제사라는 의미로 처음 나온 홀로코스트는 한동안 주로 핵전쟁으로 인한 인류 섬멸의 가능성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단어나 대량학살의 일반 명칭으로 사용했으나 현재는 오직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만을 홀로코스트라고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내내 유럽 전역을 뒤덮었던 홀로코스트는 전 세계 유대인의 3분의 1, 전 유럽 유대인의 절반을 죽이고서야 나치의 패망으로 멈췄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잘 알려진 이 대학살은 ‘제노사이드(genocide)’,와 ‘인류에 반하는 죄(crime against humanity)’가 국제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든 학살입니다. 민족주의가 극으로 치달을 때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근현대 모든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많은 사람이 죽은 학살은 아니지만, 가장 많은 국가에서 벌어진 학살이기에 세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학살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전 세계에 넓게 퍼져 영향력을 많이 끼치는 유대인들이 당한 학살이고, 거의 유럽 대륙 전체가 경험했던 학살이다 보니 많은 이들이 이 학살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대가 달라질 때마다 그 기억을 바라보는 방법이 바뀌었습니다.


 처음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전범을 처벌하고 나온 기억의 방식은 지금과는 무척 달랐습니다. 희생자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나치의 탄압에 저항한 영웅적인 인물들에 집중했습니다.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은 고통과 함께 마음 깊은 곳 아래로 가라앉혀두고 나치에게 승리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습니다. 독일은 무조건적인 반성보다는 나치의 압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홀로코스트를 행했다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이러한 의견이 바뀐 것은 60년대 이후입니다. 특히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의 만행이 널리 알려지면서 승자의 영광보다는 전쟁의 희생자에 집중하는 사고방식이 주를 이루게 됩니다. 유럽에서는 68혁명이 일어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발견된 근대의 단점들에 대해 여전히 해결하지 않는 정부에 대해 많은 이들이 불만을 토로했고, 독일에서는 이에 따라 나치의 잔재를 청산하고, 나치에게 큰 피해를 본 국가에 사과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역사를 희생자의 입장에서 기억하는 방식이 나타나게 됩니다. 희생자의 기억을 듣고 기록하며, 그에 대해 가해자가 사과하는 방식이 이 시기 즈음부터 만들어진 것이죠. 이 과정에서 홀로코스트 당시 유대인들은 숭고한 희생을 당한 선역이라는 이미지가, 유대인들이 피해를 보는 데 직접 도왔거나 방조했던 독일인들은 악역이라는 이미지가 굳게 됩니다. 이러한 이미지가 굳어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유대인의 희생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며 공감하고, 홀로코스트가 ‘특별한 학살’이라는 기억을 구축해갑니다. 홀로코스트가 일어난 지 많은 시간이 흘렀고, 1990년에는 독일 통일이 이루어집니다. 이제 사회의 주류는 홀로코스트를 겪은 이들이 아니라 홀로코스트를 겪은 이들의 기억을 듣거나 홀로코스트 관련 영상을 본 이들이 되었습니다. 포스트-기억 세대(post-memory generation)이라 불리는 이들은 과거의 기억들을 계승하고 애도하면서 그 학살의 내용을 현대의 담론들과 연결짓기 시작합니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이 소재이자 주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여러 현대의 담론들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원래는 말조차 꺼낼 수 없었던 ‘선한 독일인’이 다시 언급되기 시작합니다. 독일인이 모두 유대인을 학살하는 데 참여하거나 방조한 것이 아니라, 구하려고 노력한 이들도 있었다는 사실이 표면에서 언급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언급의 대표적인 예가 <쉰들러 리스트>입니다.


 <쉰들러 리스트>는 나치당원이었던 독일인 기업가의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돈이나 크게 벌려고 임금이 싼 유대인을 고용해서 공장을 세우고 군용 식기를 납품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대인들과 정이 든 걸까요? 기회주의자고 속물이며 여성 관계마저 복잡했던 쉰들러는 아우슈비츠로 끌려가기 직전의 유대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온갖 힘을 씁니다. 자신의 고향 근처에 공장을 세우고 그들을 그곳으로 데려가기 위해 온갖 뇌물을 써서 유대인들을 빼돌립니다. 이때 빼돌린 유대인의 명단을 ‘쉰들러 리스트’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정작 구출해와서는 공장에서 불량탄만 만들어 전쟁이 끝났을 무렵에 쉰들러는 파산합니다. 그러면서도 더 많은 이들을 구해내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하죠. 그는 죽은 후에 예루살렘의 유대인 성지인 시온 산에 묻힌 유일한 나치당원이 되었으며 많은 이들의 추모를 받고 있습니다.


 <쉰들러 리스트>를 만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홀로코스트와는 그가 유대인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크게 관련이 없는 감독입니다. 그가 유대인이라는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지도 않기 때문에 ‘선한 독일인’을 다룬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쉰들러는 완전히 선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바람피우는 건 일상이고,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런 속물이 사람들이 무참히 죽어 나가는 것을 보며 인류애를 깨닫고 그 인류애를 실천하여 사람들을 구하는 모습은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감동은 오래 남아 나치 독일과 유대인 사이 중간 경계에 있던 사람 중 인류애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 이들이 있었음을 기억하게 합니다. 이는 몇십 년간 죄인으로 살아온 독일인들에게는 작은 위로를 주고, 외부에서 홀로코스트를 바라보는 제3자가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인 시선이 아니라 다면적으로 사건을 보게 만듭니다.


 <쉰들러 리스트>가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홀로코스트의 비극과 인류애라는 주제를 표현했다면 <인생은 아름다워>는 한 발짝 나아가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사용합니다. 영화의 전반부 내내 극단적 민족주의와 유대인의 차별에 대한 비판은 나올지언정 홀로코스트에 관한 내용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주인공인 귀도가 도라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여 아들인 조슈에를 키우는 과정이 전붑니다. 그 과정은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지만, 절망은 없습니다. 쉴새 없이 말하며 농담을 던지는 주인공 귀도의 모습과 그를 보며 웃는 가족들의 모습에서 삶은 빛을 뽐냅니다. 영화의 절반이 넘어갈 때 귀도와 귀도의 삼촌, 조슈에는 수용소에 끌려갑니다. 가족들만 끌려가게 놔둘 수 없었던 도라는 유대인이 아님에도 같이 수용소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수용소의 암울한 상황을 게임처럼 비유하며 암울한 일상에 즐거움을 더합니다. 비극적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삶은 아름답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귀도는 죽습니다. 사람들이 학살당하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아들이 삶을 더 살아갈 수 있도록 우스꽝스럽게 연기를 하면서요. 모든 사람이 떠나고, 미군의 탱크가 들어옵니다. 여전히 수용소에서의 삶이 게임이라고 생각한 조슈에는 탱크를 타는 것이 이 삶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라와 조슈에의 만남과 환한 웃음으로 끝나는 이 영화의 마지막은 인생이 이토록 환하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감독이자 주인공 역을 맡은 로베르토 베니니는 포스트-기억 세대에 딱 들어맞는 사람입니다. 자신은 홀로코스트 이후 태어났으나 아버지가 홀로코스트를 겪은 생존자이고, 아버지의 기억을 토대로 홀로코스트를 기억합니다. 베니니의 아버지는 여느 생존자들처럼 죽음이 일상이 된 그 지옥 같은 풍경을 이야기하기 꺼렸지만, 결국 베니니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이때 사실대로 묘사하기 어려웠는지 게임에 빗대어서 기억을 전했습니다. 이것이 <인생은 아름다워>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게임에 빗대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가볍습니다. 영화 자체의 장르가 블랙코미디이기도 하고요. 홀로코스트 영화치고는 진지함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받기도 했습니다. 다만, 저는 이 영화가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다루기는 했으나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한 것이 아니라 삶의 아름다움을 주제로 했기 때문에 밝은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홀로코스트를 기억할 때 그것을 성역화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제노사이드로 기억하는 것이죠. 그렇다고 홀로코스트를 가볍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아름다운 일상과 삶을 전반부에 제시하고, 후반부에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것이 알상인 수용소의 삶을 제시하여 대조시킴으로써 더욱 홀로코스트를 비극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여기서 느껴지는 비애는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다른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막는 것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세 영화 중 가장 마지막에 만들어진 <피아니스트>는 가장 담백한 영화입니다. 폴란드의 유대인 블라디슬로프 슈필만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평범한 한 유대인 음악가의 홀로코스트 생존기입니다. 나치의 침공을 받아 폴란드의 유대인들이 차별을 받게 되고, 게토에 갇힙니다. 블라디슬로프는 이 과정을 똑같이 겪고, 절멸수용소에 끌려가려던 중 혼자 한 유대인의 도움을 받아 탈출하여 게토 내에서 거주하며 일합니다. 이후 자신의 인맥을 이용해 게토 내에서 탈출하고, 바르샤바 게토 봉기를 은신처에서 보며 그들의 죽음에 슬퍼합니다. 은신처가 발각되고,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 은신처를 옮기며 삶을 간신히 이어가던 그는 전쟁이 거의 끝날 때쯤 배고픔에 거의 죽어가나 그를 발견한 독일 장교 빌헬름 호젠펠트의 도움을 받아 끝까지 살아남아 전쟁이 끝나고 다시 피아니스트로 활동합니다.


 이 영화는 담담하게 홀로코스트에 대한 한 피아니스트의 기억을 담아냅니다. 홀로코스트 과정에서 보이는 다양한 인간 군상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게토 내에서도 빈부 격차에 따라 달라지는 삶. 나치 아래서 자치 경찰이 되어 같은 유대인이 수용소에 끌려가는 것을 돕거나 방조하는 유대인. 이유 없이, 감정 없이 쏜 총에 무더기로 죽어 나가는 유대인. 그들의 죽음에 어떤 의미가 있냐며 슬퍼하는 슈필만과 바르샤바 게토 봉기가 영웅적이라는 아니냐 보구츠키. 유대인을 살리는 데 도왔으나 정작 자신은 소련군의 포로로 끌려가 머나먼 외지의 차가운 감옥에서 생을 마친 독일군 장교 호젠펠트. 인간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게 한 홀로코스트의 비극 자체에 고민하게 하면서도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는 무수한 담론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희생자들이 아닌 나치에 저항했던 영웅적인 삶을 기억하고자 했던 초기의 기억방식과 희생자에 집중하는 그 이후의 기억방식을 아니냐와 슈필만의 대화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슈필만을 도와주었던 호젠펠트를 통해 ‘선한 독일인’이 있었음을 제시하고, 이런 선한 독일인이 포로로 끌려가 소련에서 비극적으로 생을 마쳤다는 것을 말하며 ‘독일인은 가해자, 유대인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개인과 인류애의 측면에서 사람을 보게 합니다.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에 대한 무게감은 유지하면서도 홀로코스트를 절대화하거나 성역화하는 느낌은 들지 않게 합니다. 특히, 게토 내 다른 유대인이 굶어 죽는데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기는 유대인이나 같은 유대인이 끌려가는 데도 방관하거나 나치를 돕는 유대인 자치 경찰들의 모습을 그려내며 홀로코스트를 넘어 사람 그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현대적 담론을 담아 말하는 것입니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이 하나로 굳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변화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홀로코스트에 대한 애도를 기반으로 다변화하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을 살펴보았습니다.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는 방식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는 방증이니 세상이 점점 다양성을 존중해나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생각들이 수용되다 보면 극단적인 생각들이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홀로코스트가 전세계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이고 슬픈 사건이라 말하며 다른 사건들은 이에 비교할 수 없다며 홀로코스트를 절대화하고 성역화하거나 홀로코스트는 일반적인 학살 사건에 불과하니 독일이 그토록 사과할 필요 없다고 말하고, 홀로코스트가 과장되었다며 역사를 수정하려고 하기도 합니다. 둘 다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홀로코스트가 무척 비극적이고 전세계 역사를 통틀어 찾기 힘든 사건이긴 하지만, 홀로코스트만을 강조하여 다른 사건의 비극과 슬픔을 깎아내리는 것은 다른 제노사이드의 희생자들에 대한 존중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홀로코스트를 깎아내려 역사를 수정하려는 행위는 더욱 좋지 않을 것입니다. 약 600만 명의 사람을 국가에서 체계를 갖추어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이 죽인 사건을 ‘압도적이고 참혹한 비극’이라는 말 이외에 무엇이라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늘 유념에 두고 다시는 이런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역사는 과거의 일이라지만, 그 역사를 기록하고 받아들이는 우리는 현재에 살고 있습니다. 홀로코스트라는 사건은 과거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현재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홀로코스트는 그리 오래된 사건이 아니어서 무수히 많은 기억의 파편들이 있고, 그 기억의 파편들을 조합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현재를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아마 영화에서 살펴본 홀로코스트의 기억방식을 살펴본다면 현재는 다양화를 추구하는 시대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한 대상이나 사건을 존중하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보려 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그 다양한 의견 속에 나오는 극단적인 의견은 언제든 그 다양한 의견이 다 묻히고 극단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불안정한 토대 위에 현실이 있다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 극단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지 않기 위해서 꾸준한 노력을 해야겠지요. 극단적인 의견들이 불안하지만, 저는 그래도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는 것에 희망을 걸어보고자 합니다. 위의 영화들을 보면 많은 이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역사를 기억하는 세상이 무척 가까이 와있음이 느껴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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