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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ja Dec 25. 2023

마음의 꿈을 향해

세 얼간이


제 생애에 눈 오는 크리스마스를 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크리스천도 아닌 제가 큰 의미 부여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이 들뜨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마음이 이처럼 즐거운 와중에도 한 구석은 무겁습니다. 여전히 취직 못하고, 제대로 진로를 정하지 못한 백수가 아무런 성취 없이 연말을 맞았으니 기분이 마냥 좋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들뜨는 마음과 무거운 마음 사이에서 불안함만 계속 늘어납니다. 내가 지금 하는 공부가 맞는가? 이런 공부가 아니라 다른 것들을 공부하며 취직에 열성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반짝이며 빛나던 별과도 같던 이상은 마음속에 사라지고, 저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서버렸습니다.


 그러다 정말 우연히 제 꿈을 묻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이제 낡고 해진 데다 먼지마저 켜켜이 쌓여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꿈. 다시 제 입으로 내뱉을 수 있을지 고민하던 꿈. 낭만 가득하던 시절 종종 친구들과 술을 먹은 채 수줍지만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하던 꿈. 올해 처음으로 그 꿈을 내뱉었습니다. “조금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대우받을 수 있는 세상. 서로서로 이해하려 노력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말도 안 되는 꿈입니다. 그래도 대입 자소서에 쓸 때부터 저는 그 꿈을 말해왔습니다. 조금 더 나은 세상. 행복이라는 말이 넘쳐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요. 저는 여전히 이루지 못했고, 고민하고 있지만, 다행히도 이런 고민을 저만 하는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고, 경기장 안에만 욱여넣은 채 레이스를 하라고 강요하는 체계에 당당히 반기를 든 영화가 인도에서도 나왔으니까요. 인도 발리우드의 걸작 <세 얼간이>입니다.


 제 세대 사람들 중 <세 얼간이>를 보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선생님이 학교에서 이 영화를 틀어주셨죠. 암기형 공부를 요구하는 학교에서 이런 영화를 틀어주다니 역설적이지만 재밌습니다. 아마 암기 위주의 한국 교육에 대한 한계를 몇몇 선생님들도 느끼고 계셔서 이 영화를 틀어주셨던 거 같습니다. 다만, 현실은 참혹해서 우리는 다시 암기해야 했고, 점수와 등급으로 사람들이 구분되는 교육 체계에 순종했습니다. 사실 당장 숙제와 시험이 밀려오는데 체계 자체의 문제점을 끄집어내기는 쉽지 않죠. 그냥 공부가 하기 싫었던 불만만 토해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뭔가 다른 게 있을 줄 알았지만, 대학은 사실 반복이었습니다. 학점 잘 받기, 대기업 취직하기. 내신 잘 받고, 수능 잘 받아서 대학 입학하는 것과 뭔 차이가 있나 싶었습니다. 저는 실망했고, 현실의 두려움에 친구들과 술로 나날을 보냈습니다. 학점은 당연히 낮아졌고, 그동안 쌓아왔던 공부들은 저편으로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영화에서도 비슷합니다. 달리할 것이 뭐가 있는지 몰라 부모님이나 교육 체계가 시키는 대로 공부를 했고, 공부를 잘해서 대학에 왔습니다. 대학을 온 목적은 단순합니다.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서. 자신이 선택한 전공에 대한 탐구나 고민은 이미 어느 저편에 날아가 있고, 암기를 통해 학점을 잘 받는 것이 우선입니다.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는 수는 정해져 있기에 또 경주를 펼칩니다. 인생 내내 경주를 하고, 의자 뺏기 싸움을 하는 거죠. 이것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당한 노력을 통해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니까요. 저도 노력으로 성과를 얻어내는 것만큼 멋진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로에는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밖에 없는 걸까요? 아니 단순하게 말해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은 행복한 일일까요?


 영화에선 파르한을 통해 다른 길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들 앞만 보고 달리는 교육 체계가 힘들고 불만족스러울지라도 공학자가 되어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열성을 다합니다. 하지만, 파르한은 다릅니다. 성적은 늘 꼴찌, 낙제만 면합니다. 그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죠. 사진작가의 꿈을 늘 가슴 속에 품고 있으니 공학 공부를 하며 좋은 성적을 낼 리 없습니다. 그렇게 꼴찌를 전전하던 그는 졸업 직전 그는 공학을 포기하겠다고 아버지께 말하고, 아버지를 설득하여 사진작가의 길을 걷습니다. 몇 년 후 남들이 생각하는 좋은 직장을 포기한 그의 삶은 조금 돈을 못 벌지는 몰라도 무척 행복해 보입니다.


 파르한처럼 아예 공학 공부가 안 맞아 포기하고 다른 진로를 찾아야 했던 경우도 있지만, 공학 공부가 특기인데도 성적이 최하위권인 사람도 있습니다. 라주입니다. 그의 가장 큰 적은 두려움이었습니다. 현실에 대한 걱정이 삶을 짓누르니 공학을 잘 공부해 좋은 직장에 가고 싶어도 그렇게 하기 힘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자살을 선택한 후 삶의 끝에 서고서야 그는 부담을 내려놓고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질 수 있었습니다. 분명 자신이 원하는 좋은 기업에 취직이 눈앞에 어른거림에도 가볍게 거절하며 자신에게 떳떳한 길을 걸어가고자 합니다. 졸업과 취업이 달린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도 부정행위를 생각조차 하지 않죠. 오히려 친구들이 시험지를 훔쳐 와도 거절하기만 합니다. 그의 진로는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평범한 성공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과정은 남들과 달랐고, 솔직하고 떳떳했습니다. 자신에게 자부심이 생겼고, 체계 내에서 열심히 하지만, 체계에 자신을 전부 맞추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계속 자신의 길을 걸었기에 그는 가정을 이루고 행복한 삶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란초는 희대의 천재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미 공부에 두각을 나타냈고, 라주와 파르한과 늘 함께하면서도 1등은 절대 놓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의 대단한 점이 이런 똑똑함이 아니라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암기’ 이전에 ‘이해’하려고 하는 그의 사고방식은 빠름과 효율을 중요시하는 체계 내에서 많은 이들이 선택하는 방식은 아닙니다. 아마 란초가 암기를 택했다면 그는 정말 압도적으로 좋은 직장에 들어가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의 목적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공학 자체를 사랑했고, 그 공학이 사람을 위해 쓰인다는 것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공학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고, 공학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 암기하려고 하는 체계에 불만을 가지고 그 불만을 표출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던 그는 수백 개의 특허를 내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를 만들어 암기 위주의 교육 체계 밖에서 공학으로 좋은 세상을 만들자는 자신의 꿈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영화 인물이지만, 존경스럽습니다.


 술을 먹고 현실에서 헤매던 저는 군대에 들어가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얻었습니다.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더 다양한 생각들을 들었습니다. 생각 없이 술만 먹던 나날들은 없어지고,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늘었습니다. 무수한 갈등 앞에서 어떤 생각을 가져야 모두가 조금 더 괜찮은 삶을 살 수 있을지 내내 고민했습니다. 답은 없었지만, 생각은 깊어졌고, 전역 이후에는 조금 더 많은 것들을 알고자 노력했습니다. 공부가 재밌어졌고, 세상의 많은 것들이 보이며 즐거워졌습니다. 아마 이때쯤이 우매함의 봉우리에 서 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공부하고 공부한 것을 천천히 풀어낼 수 있다면 세상을 조금 더 좋게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공부가 깊어질수록 사람을 이해하자는 인문학 내에서도 편협함이 보였고, 남의 주장을 들어주기 전에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이기심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그렇게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꿈을 놓고 그냥 현실에 순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슬프게도 저는 제대로 순응하지 못했습니다. 마음이 따르지 않고, 재능이 따르지 않으니 취준 기간은 길어지기만 했습니다. 파르한처럼 저는 동기들과 달리 취준 전선에서 늘 꼴찌였고, 자괴감만 늘었습니다. 자괴감만 늘던 중 다시 만난 꿈은 이제는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아니라 저를 삼키려고 입을 벌리는 아귀의 초롱불처럼 보였습니다. 현실에 짓눌리니 라주처럼 두려움만 는 것입니다. 지금도 두렵고 망설이고 있습니다. 여전히 제가 저를 믿지 못합니다. 그래도 발자국 정도는 떼 보려고 합니다. 걷다 보면 어디든 갈 수 있긴 하겠죠. 별인지 아귀의 초롱불인지 모를 빛을 다시 알아버렸으니 빛을 향해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빛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 같지만, 란초의 길을 조금이나마 걸어보고 싶습니다.


 올해 저의 소망은 ‘취직하게 해주세요.’였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는 와중 느껴지는 남들의 시선이 두려웠고, 백수로만 사는 것 같아 자괴감만 더해졌습니다.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만 느껴졌습니다. 자기 확신이 없으니 공부가 잘될 리가 없고, 이것도 저것도 하지 못한 채 허송세월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꿈을 꿀 겁니다. 마음속 깊이 담아두었던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꿈. 간절히 바라고 두려움을 걷어내며 노력하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그리고 문득 포기하고 싶고, 좌절하고 싶을 때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다 괜찮을 거야. 알 이즈 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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