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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ja Sep 04. 2024

여름이 들린다

『여름이 온다』

 처음 추상미술을 공부할 때 이런 글을 봤었습니다. 칸딘스키의 추상화를 보고 있으면 음악이 들리는 사람이 있다고. 그래서 추상미술을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는 그림을 악보로 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몇 년을 그 말을 생각하면서 추상미술을 봤지만, 도대체 추상미술을 본다고 내 귀에 음악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작가가 표현하려고 했던 악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냥 그 미술에 대한 나의 느낌과 그 느낌에 맞는 내가 자주 들은 음악을 흥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여름이 온다』는 여름을 마치 교향곡처럼 표현합니다. 그리고 그 음악에 어울리는 상황을 그려내고, 추상미술을 더하여 여름의 느낌을 줍니다. 푸르고 활기찬 여름 속에서 아이들이 뛰놀고, 먹구름이 몰려와 천둥, 번개, 비도 몰고 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즐겁습니다. 여름을 담은 교향곡은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빠르게 선율을 전합니다. 아이들의 상황과 오케스트라의 연주, 구상미술과 추상미술이 뒤섞인 그림책 속에서 작가가 말하는 여름에 빠져듭니다. 매혹적이고 거칠면서도 명랑한 선들이 멈추고, 여름을 뛰놀던 아이들과 여름을 연주하던 오케스트라가 겹칠 때 작가의 여름은 막을 내립니다. 사실 여름은 이제 시작입니다. 오케스트라와 연극 같은 아이들의 놀이가 담긴 책을 덮은 후 진짜 여름은 책 밖의 세상에 있습니다.

작가는 여름을 덥지만, 아이들이 뛰놀기 참 좋고, 날씨가 짓궂지만 물을 흠뻑 적실 수 있는 시원함이 공존하는 계절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작가가 만들어낸 온갖 선들의 음악은 작가 고유의 음악으로 들립니다. 여름에 관련된 이런 노래를 흥얼거려봐도 이 책에 딱 맞는다는 음악은 없습니다. 『여름이 온다』라는 음악의 그림 악보가 책에 있을 뿐입니다. 제 부족한 상상력으로는 그 음악을 들을 수 있지만, 책에 여름의 노래가 있음은 막연하게 느껴집니다.


 여름이 조금씩 지나가고 있습니다. 올해 제 여름은 여름 같지 않았습니다. 사무실에 앉아 에어컨을 쐬며 자판을 두들기던 모습이 전부입니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 회의하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전부인 사무실에서 여름은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길고 긴 출퇴근길에 더움과 습함으로 짜증만 더해줬을 뿐이죠.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더없이 푸른 세상을 만끽하고, 흰색 뭉게구름을 보며 한 번쯤 만져보고 싶다 말하는 저는 없었습니다. ‘이 계절이면 이런 것들을 해야지.’라고 고민할 시간조차 없었던 바쁜 여름. 어딘가 묻힌 여름 감성을 꺼내지 못한 올해 여름은 이렇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여름이 조금 길어졌습니다. 가을 느낌이 난다는 지금도 낮은 30도가 넘습니다. 제주도는 아직도 열대야가 계속된다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뜨겁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막 시원하지도 않은 바람이 부는 저녁 『여름이 온다』를 펼치고 다시 읽어봅니다. 물감이 이리저리 뒤엉킨 책의 그림은 여름의 음악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해가 맑으면 물을 뒤집어쓰고, 비가 오면 비를 맞으러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여름. 그 순수한 감성이 제가 사랑했던 여름으로 잠시나마 데려다 줍니다.


 여름의 끝이자 가을이 시작되려는 지금, 저는 미처 다 즐기지 못한 여름을 보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연차를 쓴 오늘 아파트 마루에 누워 시원한 자두나 깨물며 그 아삭함과 새콤함으로 여름의 소맷자락 끝을 붙든 채 저만의 여름 음악을 들어봐야겠습니다. 머리맡에는 『여름이 온다』를 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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