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하늘을 날던 날>
작년 가을 일본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 어두운 서울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불꽃이 보였습니다. 여의도에서 쏘아올린 불꽃은 무척이나 아름다웠습니다. 지상에서 바라보던 마냥 커 보이고 화려하던 불꽃은 위에서 내려다보니 작지만, 느리고 더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불꽃 하나하나가 꽃잎이 피어나듯 밤하늘로 번져나가는 그 모습을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이처럼 같은 것을 보더라도 그 구도에 따라 세상은 달리 보입니다.
한 아이가 비행기에 타서 세상을 내려다봅니다. 논밭을 보고, 고속도로와 차들을 보고, 집들이 모여 있는 것을 봅니다. 기차역을 보고, 축구장을 보고, 수영장을 봅니다. 넓은 골프장을 보고, 공장을 보고, 항구를 봅니다. 마지막은 비행기가 내려앉는 공항입니다. 모든 것이 작게 보이고 새롭게 보이는 경험을 한 아이는 그 순간이 무척 재밌었다고 말하며, 다시 한번 더 그 경험을 하기를 원합니다.
이미 닳고 닳은 어른의 시선이 아닌 순수하고 정직한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하늘 아래의 풍경은 새롭습니다. 사실 비행기를 타거나 일상 중에 이러한 풍경을 만날 수 있었을 지 모릅니다. 순간순간 나의 시선을 혹하게 마음을 들뜨게 할 그런 풍경들. 하지만, 일상을 살면서 그런 순간들은 마주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런 것들을 마주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죠.
“힘들 때면 하늘을 봐.” 제가 참 좋아하는 말입니다. 앞과 아래만 보면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무 이유 없이 위를 올려다보는 일은 흔치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가끔 마주하는 정말 푸르디 푸른 맑은 하늘이나 예쁜 뭉게구름은 하루의 기분을 기쁘게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늘 컴퓨터 화면에 시달리다 가끔 유리창 너머로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하늘을 마주하면 마음이 가라앉고는 합니다. 같은 이유로 너무 답답할 때면 회사 옥상으로 올라가곤 합니다. 가만히 난간에 기대어 건물들을 보고, 사람들이 움직이는 걸 지켜보고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고는 합니다. 일상적이지 않은 무언가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조금 더 이 지루한 일상을 나아갈 힘을 얻습니다.
매번 비행기를 탈 수 없고, 하늘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볼 수 없습니다. 매 순간 짜릿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없고, 매일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을 새로운 방법으로 볼 수 없습니다. 비행기를 탔다고 해서 다 비행기를 탄 아이처럼 보고 생각할 수 없듯 사실 새로운 경험과 일들이 있더라도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늘 똑 같은 시선에서 똑 같은 방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데 무엇이 다르게 보이고, 무엇이 새로워질까요?
어느 날은 평범한 날일 수도 있고, 어느 날은 정말 운이 안 좋은 날일 수도 있습니다. 그 순간들을 결정지은 것은 우리의 선택이었을 수도 있지만, 정말 운명의 장난일 수도 있습니다. 내 앞으로 다가온 그 순간들이 어떠한 상황을 만들어냈을지라도 그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입니다. 평범한 순간을 새롭게 바꾸고, 운이 안 좋았던 날을 즐거움이 가득한 날로 바꾸는 것은 우리의 시선입니다. 아이가 처음 비행기에 올라 마주했던 풍경들을 대하는 마음처럼 하나하나 상세히 관찰하고, 자그마한 것에도 감탄한다면 우리가 진부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순간에서 정말 아름다운 장면을 선물처럼 마주할 수 있을 겁니다. 걷다가 혹은 일을 하다가 매번 보았던 풍경을 다른 방식으로 봐 보려고 노력하는 것은 어떠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