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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ja Jun 27. 2024

아름다운 상상을 하는 이, 상상을 존중해 주는 이

<아주아주 많은 달>

 견적을 짜고, 기획하며, ‘된다 안 된다.’를 말하는 것이 점점 익숙해집니다. 그리고 안 되는 것이 참 많아집니다. 어렵고 힘들고 지칩니다. 머릿속과 마음속에서 안 되는 것들을 하나씩 지우니 남은 것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새로운 무언가를 도전하기보다 오늘이 무사히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이 커집니다. 과거에 대한 반성도 미래에 대한 기대도 지금의 저에게는 없습니다. 살아가야 하는 현재만이 눈앞에 보이고, 손 앞에 놓여있습니다. 

 낮이 되면 해가 뜨고 밤이 되면 달이 뜹니다. 그저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 해와 달은 생각을 주는 무언가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기계장치에 불과합니다. 아마 누군가 해와 달을 가져오고 싶다고 말하면 이렇게 말하겠죠. 저 큰 돌덩이를 굳이? 무척 가져오고 싶으니까 가져와달라고 말하면 저는 단칼에 거절할 겁니다. 불가능하다면서요. 상상은 없습니다. 딱딱하고 재미없는 어른이 되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픈 공주를 위해 달을 가져오라는 왕의 명령에 3명의 어른은 다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시종장, 마법사, 수학자. 자신이 왕을 위해 해준 일들을 말하면서 자기 능력을 자랑하지만, 달을 가져오라는 어찌 보면 단순한 명령 하나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지금의 저처럼 안 되는 이유만 찾고 있습니다. 똑똑하고 대단한 일들을 한 사람이 지나가고 어릿광대가 찾아옵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어릿광대는 사실 사람의 주관으로 만들어진 세계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달을 원하는 공주에게 직접 달에 관해 물어보는 그의 현명함은 책을 읽는 이를 놀라게 합니다. 공주가 생각하는 달을 가져다준 어릿광대는 다음날 달이 뜨자 다시 공주를 찾아갑니다. 달이 다시 뜬 것에 대해 공주의 동심이 다쳤을까 봐 걱정이 된 것이죠. 하지만, 공주는 기막힌 대답을 내놓습니다. 달을 떼어 왔으니 새로운 달이 자라났다는 말. 그 상상력이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여운을 남깁니다.


 세상에 사실 ‘객관적 사실’이라는 말은 없는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자신이 생각한 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언어로 세상을 말합니다. 세상에 객관적 사실이 있을지라도 사람이 보는 순간부터 그것은 그 사람의 주관이 됩니다. 근대가 준 가장 큰 선물은 이 주관을 가진 모든 사람이 하늘이 내려준 인권을 가지고 있다는 지금은 당연시되는 한 가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는 한 주관을 내비칠 수 있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대신 모두의 주관을 존중해 줘야 하는 평등도 필요합니다. 남의 주관을 ‘안 된다.’라고 하기 전에 ‘그렇게도 될 수 있겠는데?’라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해와 달을 가져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단칼에 거절하기 전에 가져오고 싶어 하는 이의 의견을 들어주고, 가져올 방법을 같이 고민해 주는 어릿광대 같은 사람이 많아지면 참 좋을 겁니다.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 현재의 기계 같은 저는 어릿광대처럼 생각할 수 없음이 슬픕니다. 그러면서도 너무 지쳐버려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지는 않습니다. 그 점이 더욱 슬픕니다. 그런 저도 세상을 단칼에 자르듯이 평가하지 말고 부드럽고 더 넓게 바라봐야겠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달을 가져왔으니 새로운 달이 자라난다는 상상을 하는 공주처럼 멋지고 아름다운 상상을 하는 이들의 말을 들으면 편협하게만 세상을 바라본 저를 반성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문득 느낍니다. 내가 무사히 보내려고 다 차단했던 세상의 소리는 사실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이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순간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공주의 마음에는 아주아주 많은 달이 있고, 어릿광대는 그것을 지켜주었습니다. 공주의 마음처럼 멋진 상상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고 싶지만, 저에겐 그런 재능은 없는 듯합니다. 그래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도와줄 노력은 할 수 있습니다. 다시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기대하며 현재를 생생하게 바라본다면 해와 달을 가져와달라는 말에 ‘안 된다.’라는 말이 아니라 ‘어떻게 할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기계처럼 돌아가는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 아니라 달을 가져와달라는 사람 앞에 멈추어 서서 같이 고민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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