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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ja Jun 20. 2024

새벽을 그리는 시간

<새벽>

 오늘 당신의 새벽은 어땠나요? 요즘 저의 새벽은 어수선합니다. 경기 남부에서 서울로 출근하기 위해 5시에서 6시 사이에 일어나는 저는 새벽의 고요함을 느낄 새가 없습니다. 비몽사몽인 채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늦지 않았나 시계를 확인하며 집을 나섭니다. 여름의 긴 해는 이미 쨍쨍하고 저는 발걸음을 바삐 옮깁니다. 땀이 한두방울쯤 흐를 때면 역에 도착합니다. 이른 새벽이라 꽉 찬 통근 열차는 아니지만, 사람이 제법 있습니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나고 아침이면 저는 신도림역에 들어섭니다.


 이런 새벽을 맞은 지 40일이 조금 넘었습니다. 사회의 톱니바퀴로 들어섰다는 생각에 안정감을 느끼기도 하고, 많은 일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쨌든 그럭저럭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원래 제 하루의 시작은 아침이었지만, 이제 제 하루의 시작은 새벽이 되었습니다. 조용한 새벽이 아닌 어수선하고 바쁜 새벽. 이것이 지금 제 일상의 시작입니다. 전날 술을 아무리 먹어도 새벽에 일어나 출근하는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종종 새벽이 그립습니다. 집을 나와 큰 길가를 나와도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그런 조용한 시간. 바쁜 도시의 고요함을 느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 책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조용하고 고요한,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아 느릿하지만, 묵직함이 있는 시간. 싸늘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은 바람과 촉촉한 물기가 피부에 편안히 와닿는 느낌을 주는 시간. 저에게 원래 새벽은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감상을 느끼기에는 이제 저는 너무 바빠져 버렸습니다.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매일 일하고 남의 돈을 받아 먹으며 사는 회사원이 되었으니까요. 근대가 만들어낸 시간의 개념은 지옥이라고 누가 그랬습니다. 두루뭉술한 시간의 개념은 사라지고,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시간에 맞추어 움직입니다.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도시에서, 정확한 시간을 맞추어서 움직여야만 하는 이곳에서 새벽은 새벽이라 불리지 못하고, 오전 몇 시부터 몇 시라는 차가운 숫자에 묶입니다. 


 해가 뜨기 전 마지막으로 달빛이 나뭇잎 위로 부서지고, 산이 말없이 동물들과 사람들을 지켜보는 시간이 새벽이라는 말은 지금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무의미한 일입니다. 뜨거운 아스팔트의 열기와 자동차의 경적에 일어나는 이들이 호수의 실바람과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일어나는 행복감을 어떻게 알까요. 우린 도시에 살면서 많은 것을 얻고 있고, 쾌락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말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일도 해가 뜰 겁니다. 어느 새벽은 해가 뜨기 전 짙푸른 색이 걷히고, 초록빛 가득한 생기 넘치는 세상을 보는 시간이겠지만, 도시의 새벽은 짙푸른 색이 걷히는 순간, 잿빛만이 가득합니다. 해는 똑같이 쨍쨍한데 색채는 어떻게 그리 다를 수 있을까요? 잿빛 도시를 달리며 회사로 날라주는 출근 기차 안에서 저는 세상의 전부인 것 같은 산과 그 산에 둘러싸인 맑은 호수가 전부 초록빛을 생생하게 내뿜는 새벽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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