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aekja May 02. 2024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색(色)을 말하다

<눈을 감고 느끼는 색깔여행>

 색은 눈에 보이는 그러니까 시신경으로 들어오는 물체에 반사된 빛을 뇌가 해석해서 만든 개념입니다. 색을 알려면 ‘보인다는 것’이 전제된다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색을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색의 개념은 색은 눈에 보이는 파장에 따라 달라지는 특유의 빛으로 전부 말할 수 없습니다. 당장 미술 시간에 배우는 차가운 느낌의 색이나 따뜻한 느낌의 색은 색이 빛 이상으로 무언가를 포함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파란색은 차갑고, 빨간색은 따뜻하다는 것은 똑같은 온도의 물감을 쓰더라도 색에 따라 우리가 인지하고 감각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도 색을 느끼고 유추해낼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색깔을 알려면 여기서부터 시작해야합니다. 당연해보이지 않지만, 사실 우리가 모두 일상에서 당연하게 인지하고 있는 사실에서 말이죠.


 온통 검은 빛의 세상입니다. 세상을 더듬습니다. 손가락 끝에서 점과 선으로 만들어진 세상이 느껴집니다.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 옆에 점으로 만들어진 언어가 무엇인지 말합니다. 바스락바스락 낙엽, 보들보들한 병아리 솜털, 새콤한 딸기, 금방 깎은 잔디 등등 다양한 것들이 세상에 있습니다. 바스락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로 귀를 자극하는 갈색, 보들보들 손을 간질이는 노란색, 새콤한 맛으로 입맛을 돋우는 빨간색, 싱그러운 냄새를 물씬 풍기는 초록색. 눈으로 느끼는 색을 귀, 손, 혀, 코로 느끼고 인지하고, 상상합니다. 그렇게 다채로운 세상을 머리로, 마음으로 만들어냅니다.


 이 책은 점자로 되어있고, 촉각에 많은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시각장애인을 위한 책은 아닙니다. 오히려 일반 아이들이 그들이 보고 있는 세상을 이해하도록 만든 책입니다. 초콜릿과 똥은 전부 갈색이지만, 하나는 달콤한 냄새가 나고, 먹는 것인데 반해 다른 하나는 지독한 냄새가 나고, 먹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완전히 다른 두 성격의 물체가 같은 색이라니. 빛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세상에서 색을 인지하는 것은 이토록 어렵습니다. 그 어려움을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도록 만드는 책인 것이죠. 사실 생각해보면 ‘갈색’이라는 말 자체가 눈에 보이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말입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이해하라고 만든 말은 아닙니다. 이미 갈색이란 말을 자연스럽게 쓸 수 있고, 다른 색과 구별하는 이야기를 쓰는 순간부터 아마 이 책은 눈이 아프거나 보이지 않는 이들을 위한 책은 아닐 겁니다.


 진짜 보이지 않는 세상에선 ‘색’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할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만들어낸 세상이 다채롭다는 것은 어쩌면 ‘색’과 관련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마음으로 그려낸 세상의 다양함은 사실 우리가 시각 때문에 알지 못하는 더 깊숙한 이야기들을 포함한 다양함입니다. 보이는 이들이 시각으로 바로바로 세상을 인지하는 동안 시각을 잃은 사람들은 세상을 더디지만 깊숙이 감각하고 인지하며 세상을 상상하고 그려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의 ‘색’은 아마 우리가 아는 색과는 다를 겁니다.


 저는 시력이 무척 낮았습니다. 그래서 종종 제가 시력을 잃으면 세상을 어떻게 볼 수 있을지 상상해보곤 했습니다. 희뿌열지 검을지 전혀 상상이 안 되더군요. 그냥 무섭기만 했습니다. 이 동화는 눈으로 색을 인식하고 세상을 보아온 이들에게 볼 수 없는 세상을 보여줍니다. 어두컴컴한 책을 보며 같은 지구에서 살고 있지만,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이들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보이는 이들은 시각을 주로 쓰기에 많은 것들이 보이고, 그것으로 세상을 인식합니다. 동화 또한 눈으로 보고 있죠. 아마 시각을 가진 이상 평생 눈이 보이지 않는 이들만의 ‘색’과 ‘세상’을 이해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이 동화가 쓸모없지는 않습니다. 세상을 감각하는 방식에 따라 사람들이 인식하는 세상 자체가 다를 수 있다는 다양성과 차이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하는 거니까요. 그걸 명확하게 인식하는 순간부터 세상을 시각으로 보는 많은 이들은 보이는 세상의 ‘색’이 아닌 보이지 않는 세상의 ‘색’에 대해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이전 12화 개구리가 날고 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