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aekja Apr 18. 2024

다름을 이해하는 좋은 세상을 향해

<지구에 온 너에게>

 어렸을 때 읽었던 전래동화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대부분의 내용이 착한 일을 하면 고난을 겪더라도 언젠가 복이 오고,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는 다는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도덕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요즘의 동화는 좀 많이 다릅니다. 환상적인 세계를 구현하여 상상력을 키워주고, 세상의 다양한 시선들을 이해시켜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구별하는 이분법적인 판단을 당장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동화는 지구에 올 외계인에게 지구를 소개하는 아이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이의 편지는 지구의 다양한 것들을 소개합니다. 다양한 것들을 소개하면서 편지에서 강조하는 것은 '여러 가지'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양한 생김새와 성격을 가지고 있고, 저마다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사는 곳의 자연환경은 각각 다 다르고, 먹는 것 또한 다양합니다. 건강 상태나 경제력 또한 차이 나기 마련입니다. 이런 다름은 분쟁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분쟁을 멈추고 서로 돕는 삶을 살면 우리는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겠죠. 모두가 지구라는 아름다운 행성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적 배웠던 도덕 교과서에서 차이와 차별에 대해 늘 들었습니다. 차이는 사람들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이해한다는 뜻이고, 차별은 사람들이 다르다는 점으로 핍박하고 강압하며, 비난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당연히 교과서의 주장은 차별을 하지 않고,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말입니다. 이런 것들이 행해지면 세상은 정말 좀 더 좋아지겠죠.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고 세상을 마주하니 이런 말은 정말 말뿐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생각없이 차별적인 발언을 마구 내뱉었고, 누군가는 차별받은 것을 이용하여 다른 이들을 또 차별하기도 했습니다. 누군가는 차이로 만들어진 차별을 그저 차이일 뿐이라며 넘기기도 했습니다. 종종 차이와 차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차이로 인한 몇몇 문제가 차별이냐 아니냐를 두고 갈등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런 모든 이야기를 들으니 세상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군대를 가니 더욱 다양한 인간군상이 모여 있었습니다. 엘리트들이 모여 있는 대학에서는 불편할 수 있는 단어들이 여기서는 깔끔하게 농담으로 치부되었지만, 그만큼 사람들을 차이와 차별을 가르는 기준이 빡빡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유로운 상아탑의 분위기와는 달리 관료주의적이고 경직된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문득 회사가 딱 이런 분위기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다름 너머에 이런 다름이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군대를 전역하고 사학 강의를 들으면서 차이와 차별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조그만 차이에서 비롯된 차별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고, 그 차별을 없애기 위해 몇 십년의 세월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차이를 이용한 차별은 이유없는 증오이기도 했고, 질투, 시기에서 비롯되기도 했으며,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차별을 차이로 인식시키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습니다.   


 근대의 획일화된 인식에서 현대의 다양한 인식을 만들어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가장 가까운 동시대의 현대에 와서야 아이들에게도 이러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동화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동화를 보고 자라난 아이들은 권선징악의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 차이를 이해하고 다름을 마주할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나겠지요. 안타깝게도 냉혹한 세상은 그런 아이들을 자본이 가장 중요하고 명확한 기준으로 평가를 내리게 만드는 상황으로 밀어붙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많은 아이들은 '차별'이 아닌 '차이의 이해'를 가슴에 품고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지구를 만들어가리라고 믿습니다.

이전 10화 부모와 아이의 동상이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