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알바를 하나 구했습니다. 쿠팡에서 일용직 뛰는 것이 힘들어서 어떻게든 하나 구했습니다. 미취학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을 상대로 주말에 박물관이나 고궁체험학습을 시키는 선생님 알바입니다. 아직 수업은 해본 적 없고, 교육만 계속 받았지만, 제가 전공해오고 배워온 역사와 무척 큰 차이가 있어 당황하는 중입니다. 아이들을 상대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있음을 인식시키고, 여러 가지 유물을 ‘재밌게’ 소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뼈저리게 느끼는 중입니다. 차라리 기말고사 즈음만 되면 50쪽씩 써대던 보고서가 훨씬 편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역사를 설명하는 것도 문제지만, 혈기왕성한 아이들을 잘 관리하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교육을 들을 때 이런저런 사례를 말해주시는데 정말 아찔하더군요. 박물관 진열 유리장을 쾅쾅 두드리는 아이부터 바닥에 드러누워 우는 아이, 마구 뛰어다니며 곳곳을 소란스럽게 만드는 아이까지 다양했습니다. 물론 정말 심한 아이는 극소수고 힘이 넘쳐서 산만한 아이가 조금이며 대부분은 수업을 잘 따라온다는 말도 덧붙여주셨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자 아이를 성실히 키우시는 세상의 모든 부모님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화에서도 부모는 아이를 위해 동물원에 왔습니다. 아이와 좋은 추억을 남기고, 아이에게 여러 경험을 심어주려는 부모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어른이라고 동물원이 안 신기할까요? 일상에서는 볼 수 없는 동물들의 모습에 부모도 집중하고 정신없이 구경합니다. 아이는 동물이 신기하기는 하지만, 어른과는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기에 사소한 이런저런 것들을 봅니다. 집중력은 떨어지지만, 색다른 시선으로 세상 곳곳을 살피죠. 그렇게 아이는 부모 곁을 떠나 상상 속에서 동물들과 신나게 놉니다. 아이가 사라졌으니 부모는 난리가 났습니다. 동물원 곳곳을 뒤지다 벤치 위에서 자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부모님의 눈에는 다크서클이 짙게 배었지만, 아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동물원은 정말 신나는 곳이에요. 엄마 아빠도 재미있었죠?”
동화를 보다가 실소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부모의 걱정과 아이의 즐거운 상상이 한쪽마다 교차해서 나오는 동화라니. 아마 부모도 공감할 수 있고, 아이도 공감할 수 있는 동화이면서 부모와 아이가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게 한 동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뭐 하나에 집중하면 곧잘 다른 것들을 잊곤 해서 엄마 손을 놓치고, 길을 잃은 채 울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건 제 기억속의 이야기고, 제가 기억하지 못하던 어렸을 때는 오히려 아무 사람이나 마구 따라다녔다고 자주 들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속 많이 썩으셨을 것 같습니다.
이젠 머리가 커서 어린 아이보다는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됩니다. 특히, 첫 수업을 앞두고 있는 요즘은 아이들을 어떻게 챙겨야할지가 가장 걱정입니다. 저번 주에는 참관 수업을 받았는데 3명도 하나하나 챙기는 게 쉽지 않아보였습니다. 저는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을 뒤에서 구경만하면서 사실 ‘책임 없는 쾌락’을 즐기긴 했습니다. 하하.
아이의 눈에서 세상을 보고 싶지만, 이제는 너무 늙어버렸습니다. 아이를 챙겨야하는 나이가 되었고, 몇몇 친구들은 이미 결혼까지 했으니까요. 아이의 즐거운 상상보다는 부모의 걱정이 먼저 맘에 다가오는 시기입니다. 냉혹한 사회를 경험해버린 부모 입장에서는 즐거운 상상이 평생 갈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동물원에서 뿐만 아니라 아이를 데려가는 여러 곳에서 부모와 아이는 다른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부모와 아이가 서로서로 위한다는 사실은 변치 않습니다. 아이의 즐거운 상상을 지켜주기 위해 부모는 걱정을 하고, 아이는 자신의 즐거운 상상을 부모도 같이 즐기기를 바라니까요. 다른 생각을 하지만, 서로를 위한다는 뜻이 변치 않는 한 세상의 많은 부모와 아이는 좋은 가족으로 남으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