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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ja Apr 04. 2024

이렇게 멋진 날

<이렇게 멋진 날>

 2024년 1월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는데 벌써 1분기가 지나고 벚꽃이 활짝 폈습니다. 시간이 훅훅 지나가는 게 느껴져 당황스럽습니다. 여전히 두꺼운 패딩을 입어야 할 것 같은데 벚꽃이라니. 봄의 화사함에 눈이 부셔서 집으로만 들어가고 싶어집니다. 해둔 일은 없고, 하는 일은 이게 맞나 싶은 한 20대의 고민만 갈수록 늘어납니다. 날씨와 세상은 이리 멋진데 저만 이런 것 같아 초라함마저 느껴집니다. 상반기 이미 계획했던 것들은 전부 실패하고, 시간만 흘러 정말 되먹지 못한 어른이 되어가고만 있는 듯합니다.


 동화에서 하루는 비가 오는 어두운 날입니다. 아이들이 밖에 나가 뛰어놀기에는 이보다 나쁜 날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 날을 멋진 날이라 칭하며 춤을 추고 뛰어 놀고, 친구들을 불러 함께 어울립니다. 비가 그치고 갠 하늘을 마주하며 더욱 신나게 놀다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간식을 먹으며 쉽니다. 이제 갠 하늘 아래서 웃음을 머금은 채 쉬고 있는 아이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야호! 오늘은 정말 멋져!”


 비 오는 날이든 비가 오지 않는 날이든 아이들은 웃음을 찾고 즐거움을 찾아다닙니다. 마치 오늘이 전부인 것처럼. 오늘 노는 게 정말 중요하다며 뛰어다닙니다. 그리고 그 행복 속에서 하루하루를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제 어렸을 적에도 친구들과 뛰어놀면 마냥 즐거웠습니다. 학원 숙제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마냥 친구들과 노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습니다. 다 큰 어른이 된 지금은 노는 것이 마냥 즐겁지 않습니다. 지금 현재 마주한 문제에서 도피하고 회피하는 느낌입니다. 과거를 후회하고, 오늘은 지겹고, 내일은 불안합니다. 어두운 하늘을 마주하며 즐거움은 찾지 못하고 불안만 늘어납니다. 언젠가 보았던 색채 가득한 아름다운 세상은 다시 잿빛으로 보입니다.


 잿빛의 삶을 고민하니 그 너머 어둠조차 삼켜버린 무지의 무언가가 있습니다. 죽음입니다. 너무나 무서워서 선택하고 싶지는 않은 그 무언가가 삶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그래도 여전히 삶은 잿빛입니다. 다만, 그 잿빛이라도 보이는 게 어딘가 싶습니다. 제가 지겨워하는 오늘은 누군가가 간절히 원했던 내일이었고, 제가 후회한 과거는 누군가에게는 정말 소중한 오늘이었으며, 제가 불안에 떨고 있는 내일은 누군가에게는 한줄기 빛과 같은 희망이었습니다. 잿빛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사실 좋은 걸지도 모릅니다. 감각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 고민을 할 수 있다는 것, 삶을 살아간다는 것, 오늘을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실 꽤 멋진 순간일지 모릅니다.


 삶의 모든 순간이 즐거울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삶을 지겹다고만 생각한다면 그건 얼마나 힘든 일일까요. 삶을 기대하지 못하고 불안해만 하는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일까요. 비가 오는 하늘 아래서도 자신들이 놀 것을 찾으며 ‘오늘’이라는 삶의 한 순간을 강렬하고 치열하게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이 부럽습니다. 불안에 잡아먹혀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못난 어른보다 아이들이 대단해 보입니다. 부러워하고 감탄만 한다고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시간은 흘러가고 세상은 저 없이도 움직입니다. 변하려면 제가 변해야겠죠. 그럴 힘도 능력도 거의 없지만, 생각만은 또렷이 살아 있으니 인식을 함 바꿔봐야겠습니다.


 해가 밝았고, 오늘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지겹고 힘든 날이 아니라 벚꽃이 만개하고 따스한 햇볕이 나를 반기는 좋은 봄날입니다. 눈이 부신 오늘을 맞이하고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보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오늘이 사실 제게 정말 멋진 날입니다. 아이들처럼 즐거움을 하나하나 찾을 능력은 없지만, 적어도 오늘이 멋있다는 걸 저도 알 수는 있는 모양입니다. 알게 된 김에 큰 소리로 한 번 외치겠습니다. “야호! 오늘은 정말 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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