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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ja Mar 28. 2024

밤의 풍경

집으로 가는 길

 밤입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은 도시에 이젠 없습니다. 사람들의 고성방가가 간간이 들리고, 밤을 잊은 버스가 도시 곳곳을 누빕니다. 집으로 가려는 이들도 보이지만, 아직 술자리를 계속하려는 이들도 보입니다. 사람이 있는 곳에 빛이 넘치고, 그 빛은 각종 소리를 동반합니다. 밤의 고요함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오히려 도시의 고요함은 어색하고 무섭습니다. 마땅히 있어야 할 소리가 없는 그곳에서 종종 온몸을 타고 오르는 소름을 느낍니다. 조용하고 어두운 밤은 이제 도시인들에게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무척이나 고요하고 어두운 밤 시골길을 걸은 적이 있었습니다. 면의 중심에서도 꽤 떨어진 학교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고등학생인 저는 무서웠습니다. 도시에서만 살고, 도시에서만 자라왔기에 어둠과 소리 하나 없는 밤은 공포를 불러왔습니다. 하지만, 공포를 내려놓고 주위를 둘러보자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달이 길을 비추고 있었고, 길은 달빛에 반사되어 반짝였습니다. 가로등 하나 없는 그 길에서 달빛에 취해 천천히 걷다 보니 학교 기숙사에 도착했습니다. 가장 조용하고 평화로운 집 가는 길이었습니다.


 동화에서 집 가는 길은 평화롭습니다. 아이는 어머니에 안긴 채 자고 있고, 많은 이들은 하루 일정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 쉬거나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들과 남은 밤을 즐기고 있습니다. 적당한 소음과 적당한 빛, 왁자지껄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곤소곤하고 따스함이 느껴지는 동화의 밤은 평화롭고 아름답습니다. 제가 사는 도시처럼 너무 시끄럽지 않고, 언젠가 걸었던 시골길처럼 너무 조용하지 않은 동화 속 밤의 적당함은 소란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공포를 느끼지 않아도 되는 말 그대로 적당하고 평화로운 시간입니다.


 누군가가 휴식을 취하고, 누군가가 삶을 즐기는 동안 누군가는 길을 떠납니다. 밤은 보통 집으로 가는 길이지만, 종종 누군가에겐 어디론가 떠나는 길이기도 합니다. 보통과는 다른 그 모습은 무슨 일이 있나 한 번쯤 시선을 끕니다. 밤에 어디론가 떠나는 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저는 낭만이 떠오릅니다. 내가 가진, 내가 해야 하는 그 무언가들을 전부 뒤로 하고,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어느 곳으로 떠나는 낭만이 떠오릅니다. 다음 날의 일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단 떠올랐으니 그곳으로 가야 합니다. 고등학생 때 언젠가의 경주로 향했던 버스가 그랬고, 대학생 때 왕십리로 향했던 2호선이 그랬습니다. 밤 12시에 도착한 경주 도심을 걸어 이제는 운영되지 않는 경주역 앞에서 노숙하기도 했고, 왕십리에 도착했으나 친구가 술에 취해 전화를 받지 않아 혼자 술병을 쥐고 술을 마시며 신촌까지 걸어오기도 했습니다. 지금 보면 이상한 일들일 수도 있겠지만, 그 이후의 일들은 고민하지 않았던 낭만 가득한 한때였습니다.


 물론 그런 낭만만 있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겐 밤은 자신이 일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한때 야간 상하차를 꾸준히 나갈 때 해 지는 저녁 출근을 했습니다. 누군가 퇴근하는 시간 출근하는 것은 조금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신기함도 하루 이틀이지 나중에는 그냥 익숙해진 일상이 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평화로운 삶을 즐기고 있는 밤, 누군가는 밤을 새워가며 일을 합니다. 컨베이어 벨트가 굴러가고 사람들이 소리치는 밤은 시끄럽습니다. 12시간 동안 끝없이 몰려오는 택배 박스를 컨테이너에 싣다 보면 하루가 끝납니다. 누군가의 밤은 그러합니다.


 모두에게 밤이 오고, 모두의 밤은 각각 다릅니다. 누군가는 집에 돌아가 잠을 청하고, 누군가는 자유시간을 만끽합니다. 누군가는 어디론가 떠나고, 누군가는 일을 하러 움직입니다. 고요하면서 시끄럽고 편안하면서도 바쁜 밤이 매일 우리를 찾아옵니다. 시간이 지나고 오늘도 밤은 찾아올 것입니다. 당신의 밤은 어떠한가요? 동화 속의 아이처럼 엄마 품에 잠겨 잠을 자는 밤인가요? 내일의 설렘을 안은 밤인가요? 아니면 그저 반복되는 일상의 밤인가요? 모두의 밤이 각자 다른 의미를 지니겠지만, 그 밤이 부정적인 의미로만 쓰이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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