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아의 정원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를 매번 갔습니다. 2017년에 1회가 열릴 때부터 한 번도 빠짐없이 모든 비엔날레를 구경했습니다. 주제는 모두 달랐지만, 다양한 도시건축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잿빛 도시에 자연을 불어넣으려는 시도들 이었습니다. 단순히 빈 공간에 공원을 짓는 것을 넘어 건물에 정원을 만들고 회색빛의 건물을 자연의 녹빛으로 바꾸는 작업들이 많았습니다. 참으로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도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사는 이들이 좀 더 편안함과 행복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공원 하나 만들어놓는 것과 건물 곳곳에 식물을 키우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더 많은 노력과 관리가 필요합니다.
원예를 좋아하는 리디아 그레이스는 어려워진 집안 형편으로 인해 조금 멀리 떨어진 외삼촌댁에서 삽니다. 외삼촌댁에서도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는 리디아는 웃음으로 모두를 대하며 빵 반죽을 배우고, 곳곳에 식물을 심어나갑니다. 화분이 그리 많지 않던 외삼촌댁과 외삼촌의 빵집 주변은 1년 후 늦봄 꽃들로 점점 채워집니다. 좀처럼 웃지 않는 외삼촌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리디아는 옥상 공터를 아름다운 정원으로 꾸미고, 외삼촌에게 선물합니다. 1년간의 생활로 정이 쌓였지만, 이제 외삼촌댁을 떠나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 동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리디아의 편지로 내용을 서술합니다. 리디아의 편지를 통해 본 리디아는 무척 밝고 호기심이 많은 아이입니다. 편지에는 늘 밝은 어투가 가득하고, 안부를 비롯한 질문들이 한 가득입니다. 이처럼 밝고 활기찬 아이이기에 이웃주민들에게 사랑받고, 화분을 만들고 꽃을 기르는 일을 늘 응원 받습니다. 이렇게 밝고 활기찬 아이이기에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겠다고 꽃을 기르지는 않습니다. 그냥 아이가 꽃을 기르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우리 원예사들은 절대로 일손을 놓지 않아요. 그렇죠?” 자신이 원예사라고 생각하고, 꽃을 기르는 일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만 생각하는 자신의 동기부여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리디아가 계속 원예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이웃 사람들의 응원이 있었기 때문이죠. 사람들의 호의적인 태도와 도움은 리디아 그레이스가 오랜 시간 자기 일을 놓지 않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특히 리디아를 지역주민들이 “원예사 아가씨”라고 불러주는 것은 자신의 일에 대한 의무감을 넘어 자부심까지 느끼게 해줍니다.
자기 일에 대한 의무감, 다른 사람들의 인정에 따라 오는 자부심, 이에 더해 원예를 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나옵니다. 늘 웃음을 짓지 않는 외삼촌에게 웃음을 주기 위함입니다. 조금 단순히 말하면 사람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텅 빈 터를 새로이 단장하고, 색색의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우는 이유, 그것을 보고 기뻐할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기 때문이죠. 짐 외삼촌은 놀라고 좋아하는 눈치이기는 했지만, 웃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외삼촌도 리디아를 웃게 할 하나의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바로 케이크입니다. 꽃으로 뒤덮인 케이크는 외삼촌이 리디아가 웃기를 바라며 만들었음을 추측하게 합니다.
리디아가 도시에 정원을 만든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일이기 때문이고, 그것을 다른 사람이 인정해주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과 외삼촌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는 것을 상상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웃음은 보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그 웃음을 만들어낸 이에게는 보람을 주니까요. 도시건축비엔날레에 가득했던 도시 정원도 사실 단순하게 보면 한 이유입니다. 사람들에게 휴식을 주고, 공기 질을 개선하며, 녹빛으로 눈 건강을 좋게 한다는 다양한 이유 모두 한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서. 잿빛 가득한 도시를 보면 여전히 숨이 턱 막히지만, 동화 속 리디아의 정원을 생각하며 가끔을 상상해 봅니다. 풀숲으로 뒤덮인 아파트를, 그 아파트에서 웃는 사람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