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씨방 일곱 동무>
우리 주변에는 많은 사물들이 있습니다. 핸드폰, 노트북, 옷 등 매일 나와 함께하는 사물부터 에어컨, 선풍기, 난로 등 계절에 맞게 사용하는 사물, 포스터나 피규어처럼 그저 장식용으로 사용하는 사물 등 다양한 사물이 우리 주변에 가득합니다. 오랜 기간 사람들은 이 사물들을 그저 이용하는 존재라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사물들과 함께해 온 시간은 기억에 남아 그저 한 물체가 아니라 나의 물건, 혹은 나와 관련 있는 물건이 됩니다. 우리와 관계성을 맺는 것이죠. 내 삶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그저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 도움을 주는 감사한 관계가 주변 사물들과 맺어지게 됩니다.
<아씨방 일곱 동무>에서 바느질을 아주 잘하는 아씨와 그가 사용하는 일곱 가지 물건이 나옵니다. 동무로 의인화된 물건들은 사람이 사용하는 물건을 넘어서 일을 함께하고 서로 도와주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자, 가위, 바늘 실, 골무, 인두, 다리미 등 7가지의 물건은 서로의 쓰임새를 뽐냅니다. 이를 들은 아씨가 너희는 중요한 것이 아니고,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며 나머지를 폄하하자 7가지 물건은 분노하고, 슬퍼합니다. 이에 폄하했던 것을 뉘우치고 다시 같이 즐겁게 일합니다. 여기서 7가지 물건은 사실 이용하는 물건이 아니라 삶을 함께 살아가는 동무인 것이죠.
저도 오랜 기간 사용하는 물건들이 있습니다. 중학교 1학년 이후로 키가 자라지 않아 10년이 넘게 입고 있는 바람막이, 어렸을 때 사둔 도록과 전집들, 어렸을 때부터 덮었던 마시마로 털담요, 아기 때부터 지금까지 덮고 있는 작은 이불까지. 모두 10년이 넘도록 제 옆을 지키고 있는 물건들입니다. 이 물건들은 이제 그냥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물건을 이용하는 단계를 넘어 애착을 가지게 된 것이죠.
각 사물들이 가진 쓰임이 있습니다. 샤르트르는 사물과 사람의 존재 방식에서 그 차이를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물은 존재하기 이전부터 사물의 본질, 즉 존재 이유가 있다고 했지만, 사람은 본질이 없어 태어나기 전에는 존재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제가 말한 사물도 본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체온을 따뜻하게 해주고, 지식을 채워 주는 등의 다양한 본질이 제가 위 사물을 가지고 있는 이유를 더해줍니다. 하지만, 쌓아 온 시간과 행동 속에서 그 본질은 변질됩니다. 과거의 나를 돌아보게 해주고, 혹은 어떤 따스한 감정을 느끼게 해줍니다.
종종 이러한 존재 이유조차 잘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저 그 자리에 놓여 있기에 나와 함께해 왔기에 놓여 있는 사물들은 이전의 본질이 전부 사라졌을지라도 지금 그 안이 텅 비어 있을지라도 그저 놓여 있습니다. 놓여 있는 것만으로도 관계가 유지되고 지속되기 때문이죠. 본질로써 바라보면 그 사물은 비어 있을지 모르지만, 거미줄처럼 얽힌 관계망 속에서 사물은 여전히 존재하고, 관계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사물을 대하는 것이 다 같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쉽게 쓰고 버리고, 누군가는 사물을 쉽게 버리지 못해 저장장애를 가지게 되기도 합니다. 사물과 쌓아 올린 관계를 누군가는 쉽게 버리고, 누군가는 조그만 관계라도 버릴 수 없는 것이죠. 이처럼 다양한 사람들은 사물을 다양한 태도로 대합니다. 우리가 자주 생각해왔을 쓰고 버리는 일방적이고 단순한 태도가 사물을 대하는 태도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죠.
동화의 아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방적인 태도로 사물을 대하다가 자신의 일과 함께해온 사물을 그저 사물로서 대할 수 없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씨는 사물을 ‘동무’라는 관계로 다루기로 한 것이죠. 이 관계 속에서 사물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주변의 사물을 한 번 둘러보시죠. 깊은 관계와 많은 시간을 쌓아 올린 사물부터 방금 막 관계를 맺은 사물까지 다양한 사물들이 우리 주변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얽히고설킨 관계들을 가만히 관조해봅니다. 우리가 사물을 대하는 태도가 보이고, 그 태도 속에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가 들립니다. 사물과 쌓은 관계 속에서 사물이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이죠. 가을 오후 적당히 시원한 날씨, 밝은 태양 아래 조용히 앉아 즐기는 사물과의 대화 한 번 해보시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