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me Ishmael

<림버스 컴퍼니 5장 악으로 규정되는> 끝까지

by baekja

※림버스 컴퍼니 게임의 다량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토리 분석글이라기 보다는 스토리에 대한 감상문에 가깝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림버스 스토리 1, 2, 3, 3.5, 4장 감상문과 이어집니다. 먼저 보고 오시기를 추천합니다.



“이 호수에 갇혀버린 채로 평생을 잠겨 있겠지.

차오르는 물을 벗어나려고 해도 호흡에 들어오는 것은 고독뿐.“



여차저차해서 버스팀은 고래의 뱃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잠시 정신을 잃었던 이스마엘은 고래 때문에 피쿼드호가 부서지고 자신만이 퀴퀘그의 관을 잡고 살아난 그 때를 떠올립니다. 여전히 그녀는 그 시간에 갇혀 있습니다. 에이해브의 광기어린 목소리와 고래에게 삼켜져 인어가 되기 싫다던 퀴퀘그의 목소리까지. 그 순간의 감정은 이성을 삼켜 이스마엘을 여기까지 오게 한 원동력입니다. 하지만, 이 원동력은 태양처럼 너무나 강렬해서 다른 모든 빛을 삼켜버리고, 그 하나만 보게 했습니다. 그 강렬함을 따라가서 남는 것은 이카루스처럼 파멸 뿐이라는 것을 이스마엘을 지켜보는 관리자는 짐작하고 있습니다. 태양처럼 강렬한 증오에 휩싸인 채 호수의 깊은 밑바닥에 잠겨 있는 그녀에게 주변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증오를 받아 줄 대상만을 바라보는 그 삶은 너무 외롭고, 너무 어두워서 자신이 어디 있는지도 알지 못하게 합니다.


이런 생각은 오래 가지는 못했습니다. 고래의 뱃속으로 들어가게 해준 조그마한 배는 부서졌고, 고래에게 삼켜져 인어가 된 사람들이 공격해 옵니다. 공격은 막아냈지만, 설상가상 고래의 위산이 뿜어져 나오고 있습니다.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이성이 남은 사람들이 버스팀을 구해줍니다. 흰 점막이 덮인 채 말은 조금 절고 있지만, 인어가 되지 않은 채 이성이 남아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절박 매듭이라는 퀴퀘그가 알려준 특이한 매듭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죠.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에는 한 마을이 있었고, 그 마을 앞에서 한 명의 선장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스마엘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 선장. 에이해브가 눈앞에 있었습니다.


이스마엘은 바로 눈이 뒤집혀 선장을 공격하지만, 한 작살잡이에 의해 공격이 막힙니다. 가면을 쓴 작살잡이는 좋은 전사였습니다. 싸움이 격렬해질 때쯤 이스마엘은 그 작살잡이의 정체를 눈치챕니다. 작살잡이는 이스마엘의 가장 친한 벗이자 죽은 줄로만 알았던 퀴퀘그였죠. 이스마엘은 여전히 선장을 죽이고 싶었지만, 퀴퀘그는 선장을 죽이는 것을 막고 있었기에 싸움은 멈췄고, 버스팀은 에이해브와 대화를 하러 마을로 들어갑니다.


마을에 들어가 처음 대화를 한 것은 일등 항해사 스타벅이었습니다. <모비 딕>에서도 늘 광기 어린 선장에게 이성적으로 반박하던 역할이었고, <림버스 컴퍼니>에서도 그런 역할을 했었으나 지금의 스타벅에게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선장의 말에 복종하는 여느 선원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죠. 스타벅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선장님이 자신들이 인어가 되지 않게 해주고 있기에 맹신할 수밖에 없다고. 도대체 어떻게 에이해브는 선원들이 인어가 되지 않게 하고 있는 것일까요? 마을에 도움을 주는 일을 할 때마다 밖에 나가서 받을 금화의 개수가 올라간다지만, 이 이유만으로 인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어보입니다. 의문이 커질 때쯤 에이해브가 나타납니다.


에이해브는 뛰어난 통찰력으로 거래를 제안합니다. 이미 고래 내부를 수차례 답사하면서 황금색 모양의 신비한 가지가 고래의 심장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았고, 고래를 잡으러 온 것이 아니라면 그것이 고래의 뱃속으로 들어온 이유라는 것을 추측해 내 버스팀의 허를 찌릅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는 에이해브 앞에서 버스팀은 속수무책이었죠. 에이해브는 어차피 얼마 안 있어 고래를 잡기 위해 우리도 심장으로 갈 테니 심장으로 가는 일을 도와주면 황금가지를 가져가는 것은 신경쓰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덧붙여 고래의 심장을 터뜨리는 것만이 밖으로 나갈 유일한 길이라고 말하죠. 그 어떠한 공격으로도 창백한 고래의 피부는 뚫리지 않는다면서요. 황금가지를 얻어야 하는 목적과 정보 부족으로 인해 에이해브의 말에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야 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딱 한 사람만은 증오의 눈길을 불태우며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에이해브는 그 이스마엘을 딱 한 가지의 조건으로 설득합니다. 고래를 잡으면 자신의 심장을 내어주겠다는 조건. 에이해브의 심장을 뜯어내는 것만을 바라왔던 이스마엘이 이를 거절할 리 없습니다. 이렇게 피쿼드호와 버스팀이 연합하여 고래의 심장을 부수러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두 방향으로 나누어 심장으로 가기로 했고, 피쿼드호 선원의 대부분은 인어가 많은 췌장을 통해서, 퀴퀘그와 버스팀은 구 L사 지부에서 흘러들어온 환상체가 많은 폐를 통해서 심장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고래의 힘줄과 살점으로 만든 특수한 배를 이용해야 했기에 이 배를 운전할 피쿼드호의 선원 한 명이 필요했고, 퀴퀘그가 버스팀과 함께 가기로 한 것이죠. 서로 죽은 줄 알았던 퀴퀘그와 이스마엘은 대화를 나눕니다. 퀴퀘그는 자신의 마을에서 사람이 죽으면 나올 수 없게 땅속에 깊게 묻는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인어가 되지 않기 위해 다른 생각이 마음을 파고들 수 없도록 이스마엘을 마음속에 깊이 묻어버린 것이죠. 그래서 퀴퀘그는 만난 후부터 지금까지 이스마엘을 기억은 했지만, 단 한 번도 이름으로 부르지는 않았습니다. 그녀가 지금 하고 있는 단 하나의 생각은 ‘창백한 고래를 죽여야만 밖으로 나갈 수 있다.’였습니다.


퀴퀘그의 모습은 이스마엘의 한 과거를 떠올리게 합니다. 창백한 고래를 찾기 위해 창백한 고래에게 당한 선원이었던 인어를 배의 지하실에 감금해둡니다. 그리고 밤마다 인어를 관리하기 위한 선원을 제비뽑기로 뽑았죠. 이 상황이 무척 이상했지만, 선원들은 창백한 고래만 잡으면 이 괴로운 항해가 끝난다는 말만 믿고 항해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이 맘에 들지 않았던 이스마엘은 선장실을 몰래 들어갔고, 그곳에서 눈을 뜬 채 자고 있는 에이해브를 발견합니다. 에이해브는 해도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죠. 강한 증오가 만들어낸 집념. 그리고 그 집념이 만들어낸 기이한 항해. 목적이 분명하지만, 목적이 분명하기에 다른 모든 것은 버려둔 항해. 한 명의 강렬한 증오가 모두를 파멸로 몰아가는 것이 조금씩 느껴졌지만, 다들 광기에 휩쓸린 채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래를 잡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모비 딕>에서도 에이해브의 행동을 이상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파멸로 가는 길이라 말했고, 선장을 설득하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선장은 광기에 더해 노력함을 갖춘 사람이었고, 젊은 선원들의 패기와 혈기를 이용해 ‘모비 딕’이라는 목표를 가장 중요한 목표로 설정했습니다. 또한, 세계에 더는 있어설 안 될 ‘악’으로 규정함으로써 자신들이 선한 일을 하고 있다는 명분까지 쥐어주었습니다. 허나 이는 그런 거창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자신의 다리를 잃었다는 것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에 대한 복수가 <모비 딕>을 사냥하는 행위의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복수에 모두를 끌어들인 것입니다. <모비 딕>의 항해는 파멸로 끝났지만, <림버스 컴퍼니>에서의 항해는 아직 진행 중입니다.


퀴퀘그는 대화를 조금씩하면서 자신이 고래를 잡는 것 외에는 생각하고 있지 않음을 떠올립니다. 자신이 무엇이었고, 자신이 무얼 하고 싶었는지는 고래 안에서 퀴퀘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죠. 분명 어디론가 가는 항해 중이었지만, 퀴퀘그에게 자신이란 없었습니다. 물론 자신에 대해 고민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항해 중 퀴퀘그는 중지였던 자신의 몸에 새겨진 문신들을 칼로 마구 헤집었습니다. 사람들을 마구 죽이던 중지의 ‘작은 누님’ 후보였던 자신을 부정하고자 한 행동이었죠. 하지만, 그 과거는 분명 퀴퀘그의 것이었고, 지울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괴리감에서 나온 자해를 두고볼 수 없었던 이스마엘은 같이 과거를 지우고 앞으로 나아갈 방법을 찾자고 이야기합니다. 이때의 퀴퀘그는 과거의 자신을 부정했을지언정 분명히 자기 자신의 과거가 자신임을 알고 있었고, 그 과거가 현재의 나와 함께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퀴퀘그는 고래를 잡는 작살잡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이는 선장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다른 선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힘든 항해에도 눈을 반짝이며 항해가 끝난 후의 미래를 얘기하던 선원들은 사라지고, 자신을 잃은 채 고래 사냥에만 몰두하는 선원들만이 피쿼드호에 남아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미래가 있을까요? 고래 사냥이 끝나고 나면 그들의 삶에는 무엇이 남을까요. 허무함, 공허함? 알 수 없습니다. 이는 이스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이해브를 죽이고 나서 이스마엘의 삶에는 무엇이 남을까요? 많은 이가 삶은 길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삶을, 아니 모든 선원의 삶을 앗아간 증오의 선장에게 복수한 후에 길은 남아 있을까요? 길은 아마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서서 무엇을 둘러봐도 길은 보이지 않을 겁니다. 자신이 사라진 삶에서 그 길을 보고, 걸어갈 주체는 남아있지 않을 테니까요.


복수는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닙니다. 많은 이가 도덕적으로 복수는 나쁜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욕심이 많은 동물이기에 언제나 다른 이를 괴롭히면서까지 이득을 취하려 합니다. 그 괴롭힘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이 복수입니다. 자신이 강력한 복수를 한다는 사람이 알려지면 그 뒤탈이 무서워 사람들은 그 사람을 건드리지 않게 되죠. 일종의 방어 수단으로써 복수가 사용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끝없는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기에 사회에선은 대신 복수를 해줍니다. 그것의 기준을 정하는 것이 법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서 서로를 괴롭히는 일을 막고, 만약 그런 일이 벌어졌을 경우 복수의 정도를 정합니다. 그리하여 복수의 고리를 끊어버리고, 피해자에게는 위로를, 가해자에게는 교화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죠. 물론, 완벽하게 법이 피해자의 피해를 대변하고 위로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그 기준이 정해져 있는 것과 없는 것에는 차이가 있죠.


이스마엘이 에이해브에게 하는 복수는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완전한 파멸. 그것만이 이스마엘이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완수했을 때에 이스마엘의 마음이 위로가 되고, 에이해브가 반성을 할까요? 절대 그렇지 않을 겁니다. 광기 가득한 증오에서 태어난 복수는 자신을 돌보지 않기에 그 복수 후에도 이미 남겨진 상처는 메워지지 않을 겁니다. 이걸 직감적으로 알고 있는 관리자는 정말 시시콜콜한 미래를 이스마엘에게 건넵니다.


“이스마엘, 이번 작전이 끝나서 돌아가면 다같이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


유언의 클리셰 같은 이 말은 정말 별 거 아닌 말 같지만, 지금 이스마엘 삶의 전부인 복수 이후에도 일상이 있고, 미래가 있으며 이스마엘이 있을 곳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말입니다. 물론 이스마엘의 귀에 당장 이 말이 들어오지는 않지만요.


지금 삶을 전부 져버리고 광기의 호수에 잠겨 있는 이스마엘을 붙잡는 끈이 관리자라면 과거에는 퀴퀘그의 절박 매듭이었습니다. 고래의 기름을 꺼내러 이스마엘이 들어갔다가 고래의 기름에 빠져 자신을 잃고 사라지려 할 때 이스마엘을 세상과 연결해 준 것은 퀴퀘그가 던져준 절박 매듭이었습니다. 고래는 사람을 인어로 만듭니다. 사람이었던 인어는 사람이었던 과거, 현재, 미래는 전부 사라진 채 자아를 잃은 괴생명체에 불과합니다. 고래 기름은 죽은 고래에서 퍼내기에 고래 기름에 빠진 사람은 정체성을 잃고 고래와 동화된 인어조차 되지 않습니다. 동화될 어떤 것도 없기에 자신을 잃은 사람은 세계에서 사라질 뿐입니다. 이스마엘이 자신을 잃어갈 때 내려온 것은 퀴퀘그가 던져준 절박 매듭으로 묶인 줄이었습니다. 이스마엘은 그것만큼은 자신의 힘으로 잡고 살고 싶다고 생각했고,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자기 자아에 남은 살겠다는 미래에 대한 욕망으로 소멸의 절망을 이겨낸 것이죠. 하지만, 지금 이스마엘은 그 끈을 잡지 않고 있습니다. 파멸로 향하는 길을 따라 호수를 항해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는 퀴퀘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마엘과 함께했던 과거는 다 묻고, 고래를 사냥하는 것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사냥에는 에이해브의 증오와 원망만이 있을 뿐 퀴퀘그 자신은 없습니다. 그래서 길을 가는 중에 버스팀을 다 죽이라는 에이해브의 명령을 수행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스마엘과의 대화에서 퀴퀘그는 다시 자신을 찾고 싶어졌고, 에이해브의 명령을 어기고 버스팀과 함께 고래의 심장으로 향합니다.


에이해브는 이처럼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는 어떠한 죽음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스텁이 고래에 물려 인어가 되어갈 때 스텁을 이용해 고래에 대한 전의를 불태우고, 스텁이 항구에서 기다릴 거라며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게 합니다. 선원들이 원하는 것은 이 항해가 끝나고 가지는 행복한 미래였기에 선원들은 이 말을 광신도처럼 따를 수밖에 없게 되죠. 또한, 이 말에 명확한 명분을 주기 위해 도시의 모든 악은 창백한 고래로부터 나온다는 말을 계속 덧붙입니다. 사람이 원하는 것을 재빠르게 파악하고 그것으로 사람들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하는 악인입니다. 에이해브는 창백한 고래를 악으로 규정했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목표를 위해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에이해브가 오히려 명백한 악으로 보입니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 고래를 사냥하는 쪽빛노인과 비교하면 에이해브의 이러한 위선적인 모습은 명백히 드러납니다. 쪽빛노인의 고래 사냥은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고래 사냥을 하기에 남을 끌어들이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홀로 노력할 뿐입니다. 또한, 창백한 고래를 사냥하는 것이 삶의 전부라 말하는 에이해브와 달리 쪽빛노인은 그 너머를 보고 있습니다. 고래 사냥은 이해의 너머로 가기 위한 한 관문에 불과합니다. 또한, 알 수 없는 곳에서 태어나 셀 수 없는 세월을 살아온 고래에 대한 존중도 분명히 합니다. 그저 악으로만 규정하여 고래 사냥에 참가하는 자들을 선으로 갈라치기하는 에이해브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심장 앞에서 만난 에이해브는 여전히 뻔뻔하고 위선적입니다. 40여 명의 선원은 5명밖에 남지 않은 채 도달했으나 그 이유는 말하지 않은 채 심장 파괴에 도움이 될 것 같은 관리자 단테의 머리를 내놓으라 말하죠. 단테의 머리 안에 있는 황금가지 조각은 에이해브가 어떻게 심장까지 왔는지를 보여줍니다. 선원들을 죽음으로 내몰으며 심장까지 도달한 에이해브는 그 죽음을 귀하게 여기지도 않으면서 희생이라는 말로 죽음을 포장합니다. 그녀에게 희생이란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고귀한 것이 아닌 아무것도 아닌 죽음을 포장하기 위한 말에 불과합니다.


심장 앞에서 에이해브는 선원들을 선동하여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이스마엘의 비판에 아무 의미도 없이 삶을 떠다니던 사람들을 모아 삶의 의미를 주고, 인어가 되지 않을 방법까지 가르쳐주었는데 이제 와서 자신의 목적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무엇이 나쁘냐며 적반하장식으로 대답합니다. 이에 이스마엘은 명확히 말합니다. 에이해브가 고래처럼 자신의 입맛대로 선원들을 칠한 것 뿐이라고. 맞습니다. 에이해브는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제대로 들어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욕망을 이용해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기 바빴습니다. 에이해브에게 중요한 건 오직 나 자신이었습니다. 창백한 고래는 세계의 보편적이 악이 아닌 에이해브가 규정한 악입니다. 증오로 똘똘 뭉친 선악은 그 무엇보다 강렬한 부러지지 않은 신념이기에 고래에 칠해지지 않고, 인어가 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멍청한 사람보다 똑똑한 사람이 되도 않는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는 말이 있습니다. 딱 에이해브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두의 욕망을 파악하고, 그걸 말로 교묘히 끌어내는 교활함과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방식을 만들어내는 똑똑함까지 모두 갖췄죠. 이제 자신의 본성을 모두 드러낸 에이해브는 자신의 세계에 전면으로 대적하는 이스마엘과 충돌합니다. 이스마엘은 이렇게 말하며 에이해브와의 전투를 시작합니다.


“나의 모든 증오, 나의 모든 목적, 나의 모든 실패, 나의 모든 과거, 나의 모든…상실들! 그 모든 것을 네가 만들었어. 에이해브!.”


이스마엘의 길이자 항로가 모두 에이해브에 대한 복수로 이루어졌음을 의미하는 그 말이 끝나고, 첫 번째 전투가 끝납니다. 에이해브는 황금가지의 영향으로 E.G.O를 각성하여 선원들의 특성이 담긴 무기를 사용하며 다시 전투에 임합니다. 그리고 그 선원들을 도와주지 않았다며 선원들이 죽은 것을 모두 이스마엘의 탓으로 돌리는 책임 회피까지 보여줍니다. 사실 그건 회피가 아니라 에이해브의 진짜 생각이겠죠. 보는 이들을 화나게 하고 경악하게 하는 그 말들의 끝에는 패배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에이해브의 패배 이후 이스마엘은 완전히 자신을 잃고 맙니다. 사람이라면 응당 있는 마음속 불안의 틈, 그것을 파고든 고래와 에이해브 때문에 ‘나’란 사람이 누구인지 완전히 있고 인어가 되어갑니다. 인어가 되어가는 이스마엘을 구한 것은 목적을 얻기 위해 달려오는 동안 이스마엘이 완전히 잊고 있던 ‘주변’이었습니다. 이제는 동료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수감자 히스클리프가 달려와 이스마엘을 구해줍니다. 하지만, 자신을 잊어버린지 너무 오래된 퀴퀘그는 하얀 점막에 덮여 스러집니다. 스러지기 전 노을색을 닮은 머리색을 좋아한다며 친구가 되기 위해 물었던 질문을 다시 던집니다.


“너. 이름. 뭐야?”

“나를…이스마엘이라고…불러줘…(Call me Ishmael)”


<모비 딕>의 이 대사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소개하는 말이라면 <림버스 컴퍼니>의 이 대사는 묻혔던 관계의 끈을 다시 잇고, 이스마엘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는 말입니다. 이제 조금씩 정체성을 되찾아가는 이스마엘은 여전히 자신의 복수를 잊지는 않았습니다. 배에서 내내 갈고 또 갈았던 작살을 들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여전히 복수로 불타는 눈을 한 이스마엘을 단테가 가로막고 말을 건넵니다.


“이스마엘, 우리는 저마다 자기 마음의 선장일거야. 어쩌다 같은 곳을 항해하다 보니 함께하고 누군가에게 선장의 역할을 잠시 맡기기도 하겠지만…마지막의 마지막에는 자신의 배의 키를 잡고 움직여야 하는 선장은 자신일 거야…그러니까 항해가 끝날 때까지…나도…이스마엘, 너도… 자기 배의 키를 스스로 놓아버리지는 말자.”


멈췄던 걸음은 다시 천천히 움직입니다. 아니 사실 무엇을 하고 싶은 지도,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던 어렸을 적부터 걸음은 멈춰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사실 현실의 많은 이도 그럴 겁니다. 그러다가 누군가에게 이끌려 이리 걷고, 누군가에게 속아 저리 걸을 지도 모릅니다. 허나 마지막의 마지막에 걸음을 걸어야 하는 것은 자신이기에 ‘나’라는 사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제 이스마엘은 이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수가 전부인 작살이 아닌 미래를 향한 작살을 던집니다. 앞의 에이해브가 아닌 옆의 고래 심장을 향해서.


이스마엘은 늘 선원이었습니다. 에이해브의 선원이었기에 자신의 배를 몰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길을 보지도 못했습니다. 이제야 자신의 나침반을 갖고 자신의 배를 탄 채 세상을 모험할 나만의 항해 방식을 찾아 나아가고자 합니다. 그 항해엔 웃음 가득한 현재와 희망찬 미래말고도 피로 얼룩진 과거도 담겨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안고 나아가고자 하는 이스마엘은 에이해브를 죽이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토록 원했던 에이해브의 모든 것을 자신의 손으로 부숴버리죠. 가장 통쾌한 복수입니다.


고래의 심장은 터졌지만, 출구는 열리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창백한 고래의 피부는 뚫을 수 없다는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한 남자가 나타납니다. 쪽빛노인이 고래에 구멍을 뚫고 버스팀을 모두 구출합니다. 쪽빛노인도 버스팀도 모두 목표를 이룬 성공적인 항해 후 돌아가는 배 안에서 이스마엘은 웃음을 되찾았습니다. 이제 자신만의 항해 방식을 찾은 이스마엘은 흔들리더라도 엇나가지는 않을 겁니다. 단테의 항해에 늘 함께하겠지만,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 고민하고, 의심하는 것도 멈추지 않을 겁니다. 파도가 몰려옵니다. 긴장은 되지만, 걱정되지는 않습니다. 파도가 몰려오고, 폭풍이 치고, 재앙이 몰려와도 나침반이 멀쩡한 한 길을 잃지는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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