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상실 그리고 분노

<림버스 컴퍼니 6장 마음이 어긋나는> 6-34까지

by baekja

※림버스 컴퍼니 게임의 다량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토리 분석글이라기 보다는 스토리에 대한 감상문에 가깝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림버스 스토리 이전 감상문과 이어집니다. 먼저 보고 오시기를 추천합니다.


T사의 뒷골목을 지나 T사 둥지로 들어옵니다. 여전히 색은 바래 눈에 보이는 세상은 칙칙함이 뒤덮여 있습니다. T사의 겉모습을 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꺼내는 수감자들과 달리 단 한 명만은 잔뜩 긴장한 채 조용히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시비를 걸고 화를 내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생각에 잠겨있는 그 모습이 무척 어색합니다.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은 지금 가고 있는 곳, T사의 '워더링하이츠'라는 저택입니다. 그의 과거와 현재를 결정짓고 있는 장소로 가는 길에서 그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모든 것들을 부수고 싶다고 생각하고 그를 말로 내뱉습니다.


벌써 6번째 수감자의 여행이다보니 그런 파괴적인 행위만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5장에서 미래를 모두 버리고 누군가의 파멸만을 바랐던 이스마엘은 그것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6번째 여행이 되면서 생겨난 수감자 간의 신뢰 또한 히스클리프에게 있기에 히스클리프는 그가 폭주하더라도 수감자들이 막아줄 것이라 생각한다는 말을 꺼냅니다. 말다툼이 생기면 일단 폭력적으로 해결하고 누구의 말도 제대로 듣지 않으려던 히스클리프에게는 무척 큰 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히스클리프가 오랜 기간 살아온 T사는 시간을 사고 팝니다. 시간 자체가 고유의 재화가 됩니다. 시간은 사람의 삶에서 전부는 아니나 삶이 있기 위한 필요조건입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의 삶을 볼 때 그 사람이 겪어온 경험과 사건들을 토대로 평가하고는 합니다. 그리고 그 경험과 사건은 만지지도 잡을 수도 없지만, 전세계를 지배하는 하나의 개념인 시간을 통해 우리에게 인식됩니다. 어느 시점, 어느 순간, 시간의 한 지점에 있다고 말해야만 우리는 '나'라는 사람의 경험과 사건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나'라는 사람의 삶을 시간 위에서 인식하고 있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겠죠. 시간을 재화로 삼는다는 것은 이러한 인식의 범위가 사람마다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구에게든 인식되는 삶의 범위가 상대적이 아니라 절대적 척도로 정해진다는 의미이지요. 이는 나의 정체성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시간이 많은 이는 더 깊은 자아를 만들어낼 확률이 높아지고, 시간이 적은 이는 그 반대일 겁니다. 이는 시간을 많이 가진 사람이 재화를 통해 바랜 색을 되찾을 수 있다는 T사의 정책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색은 꽤 상대적인 척도입니다. 물체가 반사한 빛을 우리의 세포가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색을 다르게 인식하게 됩니다. 하지만, 상대적인 척도일지라도 우리가 인식하고 판단하는 하나의 요소가 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남을 판단할 때 상대적인 기준을 가지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사실 그 사람을 판단할 때 가장 쉽게 사용하는 기준은 첫인상, 특히 시각적인 인상입니다. 그리고 그 시각적인 인상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색입니다. 이처럼 색은 시간처럼 한 사람의 삶을 보고 인식하는데 중요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T사의 재화인 시간으로 사람들은 색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꼭 와야 해, 히스. 기다리고 있을게. 캐시가"


히스클리프의 마음을 움직인 초대장에는 딱 이 한 줄만이 적혀 있을 뿐입니다. 그 한 줄은 히스클리프라는 사람의 모든 것을 격하게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초대장에 한 줄만 적었던 캐시는 저 한 줄만으로도 히스클리프가 모든 것을 제쳐두고 자신을 향해 달려올 것이라 믿었을 것이고, 알고 있었을 것이며, 확신했을 겁니다. 겪어온 시간과 색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현대 사회와 다를 바 없을지 모르는 워더링 하이츠에서 캐시는 히스클리프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저런 초대장을 보낼 수 있었을까요? 그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은 알 수 없기에 히스클리프의 여정을 슬그머니 따라가 볼 뿐입니다.


캐시가 히스클리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다면, 히스클리프가 캐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훤히 눈에 보입니다. 다 해진 옷에 방망이나 들고다니던 히스클리프는 번개가 치고, 폭풍이 부는 워더링하이츠 앞에 도착하자 눈에 띄게 동요하기 시작합니다. 이대로는 이 저택에 들어갈 수 없다면서요. 누군가의 비웃음을 피하기 위해서 그리고 캐시와 어울리는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잘 차려입고 들어가기를 희망합니다. 평소의 나를 다른 나로 만드는 사람, 떠올리고 생각하기만 해도 나를 동요하게 만드는 사람, 나를 기대로 하늘 끝까지 올려보냈다가 실망으로 무저갱으로 떨어뜨리는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을 보통 세간의 언어로 사랑하는 사람, 연모하는 사람 등으로 부릅니다. 거칠고, 단순해 보이는 한 사람을 부드럽고 복잡하게 만드는 그 마법 같은 마음을 보통 사랑이라고 표현합니다. 히스클리프가 그렇게 사랑하는 캐시를 만나기 위해 수감자들은 워더링 하이츠로 향합니다.


워더링하이츠의 대문은 무척 컸고 그 안의 정원은 무척 넓었습니다. 크기와는 별개로 저택에서 아름다움을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저택에는 강한 벼락이 곳곳에 치고 있었으니까요. 그 벼락은 어떤 생명체도 저택 안으로 들어오게 하지 않았습니다. 작은 참새와 다람쥐도 정원 안으로 들어오면 벼락을 맞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조금의 기다림 끝에 정원으로 들어온 관리자 단테와 수감자들은 모든 색이 바랜 정원에서 단 하나의 꽃만이 색을 가지고 있음으로 발견합니다. 보랏빛의 그 꽃을 보고 수감자들은 주인이 꽃을 무척 좋아했을 것이라 추측하지만, 히스클리프는 이에 부정합니다. 마음에 꽃이 들어갈 정도로 넓고 따뜻하지는 않았다면서요. 그러면서도 그 꽃의 이름만은 계속 숨깁니다.


정원을 걸어가던 도중 넬리란 사람이 저택에서 나와 일행을 저택 안으로 안내합니다. 저택 내에는 색을 조금이나마 찾아주는 랜턴들이 곳곳에 걸려 있어 이 저택을 가진 자가 재력이 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저택을 슥 둘러본 뒤 이제 넬리와 히스클리프의 관계를 묻습니다. 넬리는 자신을 보모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히스클리프는 그것보다는 조금 복잡한 관계라고 표현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같이 놀았던 친구라고도 부를 수 있는 관계라고요. <폭풍의 언덕>의 넬리 또한 이러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폭풍의 언덕>의 넬리는 사건의 본격적인 참여자라기보다는 관찰자적인 느낌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림버스 컴퍼니>의 넬리는 여전히 사건에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연회장에 들어서자 모두가 히스클리프에게 적개심을 드러냅니다. 워더링하이츠의 집사장인 조세핀부터 에드가 가문의 린튼과, 언쇼 가문의 힌들리까지 모두 히스클리프에게 증오심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증오심을 바탕으로 힌들리는 자신이 데리고 온 이들로 수감자 일행을 공격합니다. 힌들리의 수하로 보이는 이들을 물리치자 그 수하들을 이끄는 수장이 나타나 상황을 정리합니다. 수장은 예전에 히스클리프가 몸담았던 갱단의 수장으로 매튜라는 자였습니다. 예전의 인연으로 급박한 상황은 정리되었으나 힌들리와 히스클리프가 쌓아올린 과거 속에 만들어진 악연이라는 관계는 해소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 관계는 지금 히스클리프에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초대장을 보낸 한 사람, 단 한 사람만이 히스클리프를 안달나게 하고 미치게 합니다.


히스클리프는 그 사람을 찾습니다. 캐서린이란 이름을 가지고, 캐시란 애칭으로 불리는 히스클리프가 사랑하고 연모하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의 이름이 나오자 분위기는 급격하게 어두워지고 무거워집니다. 이미 색이 바래고 어두운 저택이지만, 그 이름이 튀어나오자 그 어둠이 더욱 짙어지는 느낌이 납니다. 간신히 입을 연 넬리는 '미안'이라는 단어를 꺼냅니다. 뒤이어 린튼이 꺼낸 한 마디는 지금까지 히스클리프를 삶을 끌어온 단 하나의 이유를 없앱니다. 그의 시간은 그 순간 바스러져 없어지고 색은 흑백의 무정함 그 너머로 사라집니다.


"캐서린은... 죽었다."


이 말 이후로 린튼은 한 가지 더 충격적인 말을 합니다. 자신은 캐서린과 결혼했고, 하루하루 행복한 나날들을 보냈다고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충격에 더해 자신에 대한 사랑이 린튼에게로 넘어갔다는 사실을 들은 히스클리프는 이 상황을 부정하기로 합니다. 아니 사실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히스클리프에게는 이 상황을 부정할 근거도 있습니다.


"난 이 저택에 발걸음을 한 순간부터... 캐서린이 날 부르는 소리를 들었어. 그녀가 이 저택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단 말이야. 그런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미친 사람의 말처럼 보일 뿐이지만, 글쎄요. <폭풍의 언덕>에서도 캐서린의 유령을 찾아 그리 헤맸던 히스클리프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분노하여 날뛰기 직전의 히스클리프는 이성을 잃고 이상한 소리를 하며 캐서린의 유언장 집행을 방해하려는 사람으로 보일 뿐입니다. 유언장을 집행하려는 해결사들이 무력으로 히스클리프를 제압하려는 그 순간, 넬리가 꿈밤(잠들게 만드는 꿀밤 한 방)을 먹여 히스클리프를 쓰러트리고, 상황을 진정시킵니다. 가문의 해결사인 버틀러 중 가장 높은 치프 버틀러로 일하는 넬리의 무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일어난 히스클리프의 얼굴에는 우울함이 가득한 음영이 드리워져 있으나 분노는 가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캐서린의 죽음을 확인합니다. 그 죽음의 확인 후 따라오는 침묵 속에서 유언장은 읽힙니다. 모두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지도록 눈물을 흘려달라는 말에서 캐서린이 모두의 관심을 받기를 원하는, 자신이 늘 주인공이기를 원하는 성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유언장의 내용에서 린튼은 저택을 받았고, 힌들리는 술과 도박 중독 치료를 위해 교정소 예약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히스클리프에게는 일곱 번의 벼락 후에 황금가지가 주어질 것이라는 말을 써두었습니다. 믿을 수 없지만, 캐서린 개인이 황금가지를 소유하고 있던 것이죠. 단테는 그 말 이후로 또렷이 느껴지는 기운에 이 저택에 황금가지가 2개 있음을 깨닫습니다.


황금가지는 히스클리프에게는 지금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히스클리프는 절규합니다. 아직 캐시에게 못다한 말이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절규의 끝에 벼락이 치고, 과거의 이야기가 눈앞에 선명히 드러납니다. 캐서린의 아버지가 동정으로 데려온 히스클리프는 첫만남부터 환대받지 못했습니다. 특히, 힌들리는 볼 때부터 히스클리프를 미워했죠. 캐서린 또한, 히스클리프를 좋아한 것이 아니라 힌들리가 가지지 않겠다는 말에 대한 호기심으로 관심이 생긴 것에 가까웠습니다. 히스클리프가 나간 후 캐서린은 어렸을 때부터 보던 유령을 여전히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알았다는 듯이 이제는 더이상 유령이 무섭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 말들 속에 여전히 히스클리프에 대한 그리움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회상 이후 정전이 돌아오고 저택의 구조가 바뀌었습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모두가 당황하고 있을 때 넬리가 히스클리프에게 한줄기 희망이 될 이야기를 건넵니다. 캐서린의 시신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말은 히스클리프가 다시 캐서린을 찾아갈 원동력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방향 또한 제시하죠. 캐서린의 수수께끼일지도 모를 이 상황에서 단서를 찾기 위해 캐서린의 방을 찾아가야 한다고요. 찾아가는 과정에서 조세핀의 공격을 받아내고, 데드래빗츠들과 싸웁니다. 그리고 데드래빗츠 단원들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죠. T사에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무조건 가지고 있어야 할 시계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의문점을 뒤로 하고, 히스클리프는 넬리에게 캐서린이 어떻게 지냈는지를 묻습니다.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의 얘기를 꺼내지는 않았지만, 히스클리프가 떠난 후로 무척 아팠고 조금 나은 후로는 저택의 개조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히스클리프가 편지를 계속 보냈던 것에 대해 물었으나 고집이 세서 편지 같은 건 하나도 뜯어보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주었습니다. 과거의 삶, 시간에서 우리는 캐서린이란 사람을 조금씩 유추해내가고 있습니다. 자신이 모두에게 사랑받길 원하고, 고집이 센 전형적인 부잣집 아가씨의 상이 그려지기 시작합니다. 또한, 캐서린이 히스클리프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으나 그것이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을 향한 것처럼 무엇보다 격렬한 사랑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현재의 변형된 통로와 과거의 통로를 지나 더 깊은 과거를 알고 알 수 없는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 일행은 캐서린의 방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는 린튼의 명으로 일기장을 찾고 있는 버틀러들을 만나 그들을 물리치고, 이미 데드래빗츠가 궤멸당했다는 정보까지 얻게 됩니다. 소동이 일단락 된 후 방에서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이 과거에 자기에게 해준 말을 떠올립니다.


"새들은 새장을 벗어나서 하늘을 날도록 태어난 존재니까. 그래서 나는 이 깃털들을 전부 빼낼 거야. 대신 그 빈 속엔 내 비밀을 채우는 거지. 언제든지 내 머리맡에서 펴볼 수 있도록."


캐서린은 존재의 운명이란 것을 믿었던 모양입니다. 새들이 그냥 태어난 것이 아니라 새장을 벗어나 하늘을 나는 명확한 이유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말했으니까요. 그리고 그 존재들이 타고난 이유에 맞게 사는 것을 추구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캐서린은 도대체 왜 지금 히스클리프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있는 것일까요? 캐서린이 생각한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라는 존재의 운명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둘이 어떤 존재라고 생각했기에 이처럼 미스터리한 일이 저택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을 알기 위해 히스클리프는 베개에서 일기장을 꺼내 펼칩니다. 얼룩이 가득한 일기장은 저절로 넘어가 글자가 있는 페이지에 멈춰 섰습니다.


그 일기장에는 히스클리프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캐서린이 히스클리프를 보내고 써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히스클리프가 저택을 떠나간 이후로 느낀 상실감, 그리고 돌아오지 않음에 대한 분노. 그 모든 감정이 씻겨나간 후 드러난 진심.


"너에게는 이 저택과 나뿐이잖아. 아니면 너의 전부를 기어코 버리겠다는 거니?"


이 말은 네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건네는 협박으로 읽힐 수도 있지만, 이 내용이 자신만이 읽는 일기장에 적힌 것을 생각하면 히스클리프를 그리워하는 절절한 말로도 읽힙니다. 캐서린을 자신의 전부로 생각해주는 히스클리프가 돌아오지 않으면 자신이 버려진다고 생각하는 이 말에는 캐서린이 히스클리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넘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아마 뒤에는 이런 말이 붙어야 하겠죠. "제발 돌아와줘." 서로가 서로를 나의 전부로 생각하는데 그들은 왜 헤어져야만 했고, 이렇게 고통받아야 했을까요? 이 또한 의문을 더할 뿐입니다.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일기장은 하나의 단서를 제공합니다. 저택에 손님이 찾아왔고, '거울'을 보았으며 지하실로 '우리'가 내려가야 한다는 문장이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일행은 이제 지하실로 향합니다. 가던 중 일기장의 얼룩이 사라지며 새로운 내용이 드러납니다. 지하실의 입구가 히스클리프와 담소를 나누던 식당의 벽난로 앞에 있다는 것이 적혀 있었습니다. 히스클리프와 함께했던 순간이 적혀 있는 일기장. 자신의 깊은 비밀을 적어둔 그 일기장에는 곳곳에 히스클리프와의 추억이 있었습니다. 그 추억이 무엇보다 소중했다는 것처럼요.


식당의 벽난로 앞에 도착하자 그 앞에는 린튼이 길을 막고 서있었습니다. 린튼은 히스클리프가 매질당하고, 학대받았던 과거를 꺼내들고, 히스클리프의 편지를 태운 것을 보다며 히스클리프와의 싸움을 피하지 않습니다. 싸움이 끝나고 린튼은 자신은 저택의 개조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고 자기 대부분의 재산을 털어 황금가지를 샀음을 털어 놓습니다.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이 상황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지는 않은 듯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캐서린과 부부였다는 점을 들어 히스클리프의 마음을 뒤집어 놓죠. 하지만, 캐서린의 과거에서 느껴지는 린튼에 대한 사랑은 조금 달라보입니다.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에게는 그 존재 자체를 원하지만, 린튼에게는 존재보다는 자신에게 어디까지 해줄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캐서린이 린튼에게 원하는 사랑은 사실 현재 많은 이들이 하고 있는 사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에게 상대방이 해줄 수 있는 능력을 확인하고, 자신의 조건에 맞춰줄 사람을 찾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결혼정보회사를 들 수 있습니다. 능력과 조건을 찾아내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고 자신이 원하는 등급의 사람을 만나보는, 자본주의의 성격을 여실히 드러내는 사랑을 합니다. 마치 쇼핑과도 같죠. 캐서린이 린튼에게 하는 사랑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나에게 맞는 능력을 제공해주는 사람, 그 사람의 육신, 영혼을 전부 사랑하지는 않지만, 그 사람이 보내주는 사랑이라는 이름을 단 호의에 딸려오는 능력이 좋은 것이죠. 무척 충실한 관계였다는 린튼의 말과 크게 상충하는 부분입니다.


린튼도 이를 모르지는 않았습니다. 자기 손에서 아무런 반응도 없던 일기장이 히스클리프에게서만 얼룩이 사라지자 캐시가 정말로 사랑했던 사람이 누군지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체념한 채로 지하실로 향하는 입구를 엽니다. 지하실로 향하는 통로에는 죄종들이 가득했습니다. 죄종들의 발생 원인이라는 새로운 의문점만 더해진 채 지하실로 계속 향합니다. 그리고 그 지하실에는 인간을 가지고 실험하는 거대한 실험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실험실의 중앙에는 캐서린의 시신이 담긴 관과 황금가지가 함께 있었습니다. 이 실험실을 보고 이상과 파우스트는 바로 모종의 인간을 만들어내는 실험이라는 것을 눈치 챕니다. 또한, 이것이 이상이 개발한 장치와도 관련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는 이전 구인회의 동료가 이 실험에 가담하고 있음을 추측하게 하는 것이었죠. 이에 옛 동료인 아세아가 나타나 자신이 이 실험의 담당자임을 밝히고, 그를 도와주는 이들과 전투를 벌입니다.


전투를 끝내고 한발짝 앞으로 다가가자 이번엔 데드래빗츠의 수장과 힌들리가 이 앞을 막습니다. 히스클리프가 저택에 들어오면서 자기가 마땅히 가져야할 것들을 빼앗겼다고 느꼈던 힌들리는 점점 엇나갔고, 그런 힌들리의 엇나감을 보면서 힌들리의 아버지 또한 크게 실망했습니다. 히스클리프를 더 아꼈을 정도였죠. 이는 힌들리의 열등감을 더욱 크게 만들었고, 히스클리프를 학대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분명 히스클리프에게 큰 고통이었을 것이나 히스클리프가 저택을 떠나게 만든 가장 큰 이유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열등감이라는 거대한 부정적 감정이 힌들리의 인생을 평생 좀먹게 만들었죠. 이 부정적 감정은 히스클리프 앞에서 극대화되어 힌들리의 마음을 완전히 무너뜨립니다. 그리고 완전히 열등감에 사로잡히 힌들리는 황금가지의 영향으 뒤틀리고 맙니다.


<폭풍의 언덕>에서도 힌들리는 오만한 부잣집 아들로 그려집니다. 처음부터 히스클리프를 괴롭히고 못되게 굴죠. 히스클리프는 이에 영악하게 굴며 힌들리의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힌들리는 아버지에게 미움을 받게 만듭니다. <림버스 컴퍼니>에 이런 자세한 내용은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 힌들리의 아버지가 자신보다 히스클리프를 사랑했던 것이 무척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생긴 열등감은 히스클리프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아가리라 믿게 했습니다. 이것이 술과 도박에 찌든 지금의 힌들리를 만든 것이겠죠.


뒤틀린 힌들리를 뒤로 하고, 힌들리를 뒤틀리게 부추긴 데드래빗츠 보스와 수감자들이 마주합니다. 데드래빗츠 보스는 히스클리프가 알던 그 매튜가 아니었고, 다른 거울 세계에서 넘어온 히스클리프의 인격이었습니다. 사실 <폭풍의 언덕>에서 히스클리프는 워더링하이츠를 뛰쳐나갔다가 돌아와 자신의 힘으로 복수를 성공시킵니다. 힌들리를 도박에 빠뜨려 파산시키고, 린튼의 여동생 이사벨라와 결혼하여 학대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원더링하이츠 주변을 완전히 망쳐놓죠. 하지만, <림버스 컴퍼니>의 히스클리프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분노하고 이성을 잃긴 해도 자기 과거를 망친 이들에 대해 피의 복수에 목마른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런 히스클리프와는 다른 인격의 히스클리프,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와 비슷한 성격의 히스클리프가 등장합니다. 그는 자기를 괴롭힌 이들에게 전부 복수하고, 캐시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이들을 모두 죽이겠다 말합니다.


<림버스 컴퍼니>의 수감자 히스클리프 또한, 캐시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이들을 복수하겠다는데는 동의하며 누구냐고 묻습니다. 그 질문에 다른 세계의 히스클리프는 캐시를 죽인 것은 '우리'라고 답합니다. 우리의 잘못으로 캐시가 죽었다는 그는 이미 죽어버린 캐시를 외치며 자신을 용서하지 말라고, 산산조각내라고 말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분노로 물든 전투는 히스클리프의 모든 감정을 담은 절규와 함께 끝납니다.


"너를... 나를 짓밟아 기어코 캐시와 떼어놓은 그 모든 것들을 이 (넝마)자루 안에 담아서... 어디든, 지옥 끝까지 끌고 다니며 있는 힘껏 내려칠 거다."


이에 다른 세계의 히스클리프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며 히스클리프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이끕니다.


"모든... 캐서린은... 반드시 불행해지기 마련이었다. 히스클리프로 인해서. 그러니 나는... 모든 히스클리프를 죽여야 해. 너라도... 그랬을 테지."


많은 이들이 사랑을 정의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너무 넓고 복잡하여 그를 나타낸 완벽한 정의가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사랑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이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이 순간 나에게로 깊게 체감할 때 우리는 그제야 사랑을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사랑을 말할 때 그 순간과 상황을 말합니다. 걷다가 새파란 하늘에 구름이 떠가는 모습을 보며 그 사람이 보고 싶을 때, 파도소리 들리는 바닷가에 가만히 앉아 그 사람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할 때, 그 사람의 웃는 얼굴에 모든 걱정이 씻은 듯이 날아가 나도 조용히 미소를 띄울 때 등 우리는 사랑이라 불려야 할 순간과 상황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늘 보고 싶고, 그 사람을 위해 생전 안하던 일도 하고, 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었으며, 그 사람이 내 삶의 전부라 말하는 히스클리프는 사랑에 빠져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을 줄 대상은 이제 세상에서 사라졌습니다. 캐시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내 모든 것을 주어야 했던 대상은 사라졌기에 히스클리프는 크나큰 절망에 빠집니다. 그리고 그는 캐시의 죽음을 둘러싼 이해할 수 없는 이 순간에 분노합니다. 사랑 이후에 찾아온 우울, 그 우울 끝에 찾아온 분노는 사랑이 내 삶의 전부였던 것처럼 현재의 내 모든 것을 휘감습니다.


그 분노 속에서 히스클리프는 캐시의 죽음을 맞이하는 다른 세계의 히스클리프를 보고, 캐시를 떠나는 과거의 자신도 톺아봅니다. 모든 조롱과 학대에도 워더링하이츠를 떠나지 않았던 히스클리프가 워더링하이츠를 떠난 이유, 캐서린이 린튼과 결혼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히스클리프와 결혼하면 품위가 떨어지고 만다는 말을 붙이면서요. 그래서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깨닫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품위를 높이고 자기를 돌아보게하려고 히스클리프는 떠난 것이었죠. 하지만, 이 모든 과거는 쓸모없어졌습니다. 삶의 목표이자 전부였던 그녀가 이제 사라졌으니까. 그것도 자신 때문에. 생각이 이에 다다른 히스클리프의 분노는 이제 오롯이 자신을 향합니다.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이 감정에 몸을 맡깁니다. 그 분노는 인간으로 존재하는 자기를 혐오하게 만들고, 주인에게 버려진 울부짖으며 날뛰는 슬픈 사냥개로 변하게 합니다. 뒤틀린 그에게는 캐시의 한 마디만이 들릴 뿐입니다.


"집으로 온 걸 환영해. 히스클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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